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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하나 드리고 싶군요. 누구 없나요?"
"…(정적)…"
"아무도 없나요?"
"…(정적)…"

<EBS 우리는 왜 대학을 가는가 - 5부 말문을 터라>에 나온 오바마 대통령에 질문하지 못하는 한국 기자 영상
 <EBS 우리는 왜 대학을 가는가 - 5부 말문을 터라>에 나온 오바마 대통령에 질문하지 못하는 한국 기자 영상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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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상에서 회자되고 있는 '오바마에게 아무 질문 못하는 한국기자들'이란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2010년 서울에서 열렸던 G20 폐막식장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주최국인 한국 기자들에게 마지막 질문 기회를 줬다. 그러나 질문하겠다고 손드는 기자들은 없었다. 한 중국 기자가 한국 기자를 대표해 질문하겠다며 나서기까지 했지만, 한국 기자들은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이런 '애완견'들의 뉴스에 "지겹다"며 팀킬(team kill : 같은 편 동료를 공격하는 것)하고 나선 기자가 있다. 지난해 12월 <뉴스가 지겨운 기자>(펴낸 곳 삼인)를 써낸 안수찬 한겨레 기자다.

그는 한겨레21 사회팀장 시절, '노동OTL'이라는 기자의 위장 취업기를 기획 연재해 '제41회 한국기자상'을 받기도 헸다. 그가 생각하는 지겨운 뉴스의 원인과 '노동OTL' 탄생 후일담이 책 <뉴스가 지겨운 기자>에 담겨 있다.

질문하지 못하는 기자, 문제는 출입처에 있다

안수찬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들은 청와대, 국회 등 공공기관과 각 지역 경찰서를 구역별로 나눠 기자를 배치한다. 기자들은 해당 구역(취재처)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전담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을 최고의 임무로 여긴다.

타 매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빠르게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러니 정보를 주는 취재처와의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취재처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고, 취재처 안에 빠지기 쉽다.

문제는 기자가 취재처에 빠져 있다보면 진정 대중이 궁금해하는 진실은 간과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느 정치인이 어떤 말을 했다더라'는 식의 정치뉴스가 대표적이다. 취재처 내부와 기자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겠지만, 정치에 관심없는 대중은 정치인의 어떤 발언에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를 거칠게 돌아보자면 대중은 언론이 격분할 때 함께 격노하지 않았다. 주로 진절머리만 냈다. 특히 정치보도의 '야마 전략'은 대중의 정치 참여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혐오 관념을(각자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강화하기만 했다. 누구는 박정희를 계속 미워하고 누구는 김대중을 계속 미워하고 있다. 공론의 계기는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46쪽)

이렇게 대중과 유리된 뉴스가 바로 '지겨운 뉴스'다.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지겨운 뉴스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뉴스에 관심을 끊는다.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잃는다는 것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위기나 다름없는 셈이다.

"언론이 필부의 고민을 정치의 영역으로 밀어 넣어야 권력자들이 쟁투의 에너지를 정책으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필부는 정치 효능감(및 언론효능감)을 축적해갈 것이다. 일단 정치와 삶의 거리가 좁혀지면 대중은 정치 영역에서 벌어지는 독재, 불법, 부패를 향해 비로소 온몸으로 맞선다." (47쪽)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독자가 공감하는 뉴스가 필요하다. 안수찬 기자는 속보가 아닌 탐사보도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모두가 충격 받는 사실이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모르고 있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수찬 지음, 펴낸 곳 삼인>
 <안수찬 지음, 펴낸 곳 삼인>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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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라는 옷을 입은 기사, 내러티브 저널리즘

이 진실과 이야기가 만난 것이 '내러티브 저널리즘'이고, 이렇게 쓰여진 기사가 노동 OTL이다.

"나이는 존중하되, 연공서열을 무시하는 호칭이 '형님'이었다. 연공서열을 타파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마트 노동자에겐 타파할 연공서열이 없었다. 나는 '형님'이라 불릴 때마다 씁쓸했다. 일한 시간만큼 존중 받아야 할 기술·지식 따위가 마트엔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 <4천원 인생>(한겨레출판사) 95쪽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위 기사처럼 기자의 시점이 제시돼 독자가 몰입하며 읽게 된다. 이 기사체만 보고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단순히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을 맥락과 배경 안에서 해석하는 부분이 없다면 내러티브 저널리즘이라 할 수 없다.

안 기자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진실의 전모를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기사체보다는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깊이 취재하고, 배경과 맥락 안에서 그 의미를 지적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마트 노동자들끼리는 나이를 존중하는 호칭을 쓴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렇게 쓰는 이유(경력에서 나오는 기술이 따로 없다는 배경), 진실을 추리해 알려주는 것이 내러티브의 요체인 셈이다.

책에서는 미국의 유명한 기자 월터 리프먼의 정의도 소개한다. 리프먼은 "뉴스와 진실은 같은 것이 아니다. 뉴스의 기능은 사건을 두드러지게 한다"고 말했다. 사실을 전하는 뉴스는 사건의 발생 신호를 나타내고, 진실은 가려져 있는 사실을 서로 연관시켜 묶어 놓은 것, 사람들의 행동 근거가 될 수 있는 현실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내러티브 저널리즘에서 이야기체는 이 진실을 더 친절히 알려주기 위해 문학을 도입한 방식일 뿐이다.

독자는 뉴스가 아니라 관점을 원한다

문학이라는 방식과 진실이라는 알맹이를 가진 내러티브 저널리즘에 독자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독자는 뉴스가 아니라 관점을 원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아마 지금도 그럴텐데) 기사보다 칼럼에 더 몰입하여 환호했다. 주변의 동료, 선배 기자들은 존경하는 기자로 송건호, 리영희, 정운영 등을 꼽았다. 이름 높은 그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특종 기사가 아니라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관점을 담은 칼럼을 통해 명성과 권위를 쌓았다. 대중이 기억하는 그들의 성취도 기사가 아니라 칼럼에 있었다." (75쪽)

"사람들은 결국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저 높은 곳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이들보다는 살고 죽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주변의 이웃에 더 관심이 있다. 필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그런 인식 과정은 전쟁이 없어도 재난이 발생하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우리가 수다를 나누고 드라마에 중독되고 SNS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7쪽)

그래서 안수찬 기자는 한국언론의 위기는 기자들이 뉴스 전달자가 아니라 '뉴스 해석자'가 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전하기 위해 속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나 사실을 해석하고 비평해 담론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 타파는 경쟁보다 공유로, '젤라틴 언론의 꿈'

책이 말하는 바는 소박하다. 안수찬 기자의 경험에서 나온 문제의식과 그 대안으로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구현해나갔던 과정, 바람직한 언론 환경에 대한 바람이 담담하게 적혀있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이나 대안이 한국 언론과 미국 언론의 역사에 기초해 있다는 점은 이 책이 단순히 자서전식 자기자랑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책의 말미에 안 기자는 버지니아 울프가 신문을 정의했던 대로 "젤라틴처럼 사람들의 두뇌와 가슴에 녹아 붙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같은 꿈을 가진 한국의 기자들끼리 취재방식과 기사작성에 대한 공유를 통해 서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흔히들 문제를 인식하는 데서 해법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책 <뉴스가 지겨운 기자>는 우리 언론 조직의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는 책이다. 동시에 그 환경의 제약에만 머물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여러 기자들과 연대하려는 책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뉴스가 지겨운 기자 - 내러티브 탐사보도로 세상을 만나다>, 안수찬 지음, 삼인 펴냄, 2013.12, 1만3천원



뉴스가 지겨운 기자 - 내러티브 탐사보도로 세상을 만나다

안수찬 지음, 삼인(2013)


태그:#안수찬, #한겨레, #뉴스가 지겨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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