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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기분 나쁜 전화를 받았다. ○○신용정보회사라고 소개한 곳이었다. 그 이틀 전에도 똑같은 목소리로부터 빚 독촉 전화를 받은 기억이 나서 통화 내내 정말 자존심도 상하고, 분했다.

돈을 대출 받아 썼으니 갚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한 달 이상 연체한 번 한 적 없이 잘 갚아왔다. 그런데 대출 받은 돈을 갚을 마음이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전화 통화가 이어지자 정말 속상했다. 신용정보회사 직원은 마치 내가 빚 얻어 쓰고 갚지 않겠다고 벌렁 나자빠진 사람처럼 취급을 했다.

"지금 돈이 없어서 갚지 못한다. 이번 주 안으로 해결하겠다고 이틀 전에 말했다. 그런데도 남은 대출금을 모두 상환해 달라고 이렇게 재촉하는 것은 나더러 강도짓이라도 해서 갚으라는 말로 들린다. 이래서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자살하는가 보다."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두 딸과 함께 추억만들기 중
 두 딸과 함께 추억만들기 중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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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 전액을 당장 상환하라니

이틀 전 저녁이었다. 전화를 받자 대뜸 "이종득씨 맞죠?"라고 물었다.

"네."
"○○신용정보회사인데요. 정○○씨 대출 관련 상환이 연체 중이라 전화했습니다."

정○○씨는 아내이고, 2년 전 아내가 하는 학원을 이전 확장해야 해서 여기저기서 급하게 대출을 받았다. 그때 농협에서 사업운영자금 대출을 받으며 남편인 내가 보증인으로 등록을 했다.

"아, 네. 알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에 학교가 방학하면서 설 연휴까지 이어져 학원 사정이 어려운가 봅니다. 이번 주 안으로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어려운 점은 이해하지만 그럼 이번 주 안에 꼭 좀 해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날은 그런 정도로 대화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어제는 신용정보회사 직원이 남은 대출금 모두를 상환해 주면 좋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금 돈이 없어서 한 달 낼 돈도 못 내고 있는데, 모두 상환하라면 죽으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런 마음으로 전화한 거 맞아요?"
"아닙니다. 다만 연체가 지속되니까 회사 운영상 갚아달라고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여보시오. 갚을 돈이 없어서 연체하는 거 맞죠? 그리고 이 대출은 나라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보증을 서줄 테니 우선 대출을 받아쓰라고 해준 대출이죠. 때문에 ○○신용정보회사가 보증을 서준 거잖아요. 그런데 한 달 연체했다고 다 갚으라면 결국에는 나라가 국민에게 돈 없으면 차라리 죽어 버리라는 소리잖아요. 기다려 주면 갚겠다는데, 당장 다 갚으라면 돈이 없는데, 무슨 수로 갚을 수가 있겠어요. 죽든가, 강도짓을 해야지, 안 그래요?"

아무튼 나는 그 정도의 통화를 하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더 통화를 하다가는 전화기를 내던지든가 당장 쫓아가서 '돈 없으니까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버럭버럭 소리라도 지를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귀농 13년 만에 빚쟁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전화를 끊었다고 통화한 내용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답답했다. 지난달부터 내가 낼 이자도 여기저기에서 연체되고 있었고, 이번 달 초순 신용카드 결제도 연체됐다. 게다가 이용하는 두 곳의 신용카드사에서 사흘 전부터 신용정보 변동 내용을 확인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주기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어쨌거나 쓴 돈이니까 갚아야겠지만, 지난해부터 돈벌이가 쉽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 서민 경기가 지독하게 나쁘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 줄 몰랐다면 내가 무능한 것이요. 그런 줄 알면서도 여기저기에서 대출을 받아 썼다면 내가 헤픈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두 딸을 키우면서 살다 보니 부족한 생활자금 또는 사업장 운영자금으로 야금야금 대출을 받아 쓴 돈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쉰이 넘은 나이의 내가 빚쟁이가 되어 빚 독촉을 받게 된 것을 생각하니 솔직히 살아갈 날이 암담하다. 마흔 살까지만 해도 사실 나는 카드도 쓰지 않았고, 정말 빚 한 푼 없이 살았다. 그만큼 넉넉했다는 것이 아니고, 결혼 전이었던 점과 돈 쓸 일이 많지 않아서 돈을 모아가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마흔 살에 하던 사업을 접고 귀농을 결심하여 실행했다. 정착할 수 있는 여유 자금도 넉넉하다고 생각했다. 농사지을 밭도 사고, 결혼하여 아내와 같이 살 집도 지었다. 아내가 운영할 영어학원도 차렸다.

두 딸과 형님 딸
 두 딸과 형님 딸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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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아 키우면서 5년 만에 통장에 잔고는 0이 되었고, 야금야금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내년에는 잘 되겠지 싶었다. 아내와 함께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지역 경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앞집 뒷집 건너 집 할 것 없이 다들 죽겠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농한 지 어느덧 13년이 지났다. 어제 현재 내가 진 빚을 정리해 보니 1억2000만 원 정도가 되었다. 농협의 마이너스 통장에는 2000만 원. 보험회사 신용대출 2500만 원. 산림조합 담보대출 1700만 원. 신용협동조합 담보대출 3500만 원.

아내 이름으로 받은 농협대출 2000만 원 중에 400만 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 카드 회사 두 곳에 각각 500만 원씩 1000만 원 정도였다. 이 빚 중에 사업장 운영자금으로 받은 대출이 5000만 원이고, 마이너스통장과 보험회사 대출, 그리고 카드 금액은 모두 야금야금 받아 쓴 생활자금이었다.

어머님과 장모님, 두 딸 어떻게 하나...

나는 지금까지 1억5000만 원을 주고 산 1000평의 밭에서 수년째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순수한 수입을 단 한 번도 얻지 못했다. 내 품삯조차 마땅하게 계산되지 못하는 농사일이었다. 풋고추도 심어보고, 옥수수도 심어보고, 곤드레 나물도 심어보고, 콩도 심어봤지만 일 년에 매출이 200만 원 정도 나왔다.

아내의 학원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인구 3만 명 정도가 사는 군소도시에서, 더군다나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의 사업은 사실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았다. 지역에서 줄곧 살아온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하여 이해관계가 되는 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들이 하는 일과 생각에 무조건 동의해야 함이 그 중에 가장 큰 난제였다. 그런 거 상관없이 나만 잘하면 되겠지 생각했던 것은 정말 큰 오산이었다.

귀농, 그래서 어려운 것이었다.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경제활동의 질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귀농을 결심한다면 성공적으로 정착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나는 정말 몰랐었다. 나만 정직하고 잘하면 되겠지 싶었던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나, 지금은 알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휴대전화에서는 카드사에서 보낸 신용정보 변동이 발생했으니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보나마나 신용등급이 낮아졌으니 한도가 줄었다는 메시지이고, 그것은 하루 빨리 연체된 대출금 이자를 납부하라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나는 젊은 시절 아껴 쓰며 번 돈으로 어렵게 장만한 집도 2년 전에 팔아 어머님과 장모님 노후자금으로 4000만 원씩 드렸다. 그리고도 혼자 사시는 어머님 병원비(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매월 50여 만 원씩 보내드려야 한다. 두 딸은 이제 초등학생이고, 앞으로 들어갈 돈은 많은데, 정말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끝으로 5년 전쯤에 친구가 급하다고 해서 빌려준 돈 2000만 원을 지금도 받지 못하면서 그 돈을 달라고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한 내가 참 잘했다는 마음이 든다. 그 친구가 그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마음을 단 한 번도 갖지 않고 지금도 가끔 통화하며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아내의 학원에서 공부한 학생 부모가 몇 달치 학원비를 내지 못하고 그만두었어도 그 돈을 받겠다고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것도 참 잘한 것 같다. 내가 당해보니 더욱 절실하게 알 것 같다.


태그:#자살, #빚 독촉, #연체, #카드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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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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