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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체육 선생님한테 선물 받는다."

아이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왜 선물을 주시는 걸까?

"선물은 왜?"
"운동 열심히 했다고 주시는 거지. 오늘,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나오라고 해서 혼나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아니었어."

둘째는 며칠 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식에선 체육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표창장까지 받았다. 학생이 졸업식 때 선생님에게 선물을 받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작년 한 해를 돌이켜 보니 둘째는 진짜 다양한 종목의 운동을 했다.

첫 번째 종목은 축구였다. 지난 3월 아이는 학교대표 축구선수로 선발되었다. 축구 연습하는 동안 얼굴은 까맣게 탔고 목은 항상 쉬어 있었다. 한 달 뒤, 지역 축구대회에 나갔다. 아이 학교는 그전까지 축구대회에서 1승은커녕 무승부를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둘째가 첫 골을 넣은 것이다. 그 골 덕분에 경기에서 승리했다면 좋았겠지만. 그 골로 1무의 기록을 세운 것에 만족해야 했다.

축구부가 해산되고 연습 공을 반납하던 날, 둘째는 축구공을 선물로 받았다. 축구팀 주장과 골을 넣은 둘째 이렇게 둘이서 선생님에게 공 선물을 받았단다. 그 날, 축구공을 들고 집에 온 아이 얼굴은 정말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어떤 친구는 6000원에 축구공을 사겠다며 둘째를 유혹(?)했단다. 하지만 둘째는 그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고 공을 집에 가져왔다. 아이는 "엄마, 이 공은 안 쓰고 가보로 물려 줄 거야" 하며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4월부터는 농구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 달간은 아침 7시 10분에 나가 한 시간씩 훈련했다. 초등학생인 둘째가 고등학생인 첫째보다 더 빨리 집을 나섰다. 아이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났다.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 내는 아이가 기특했다. 점심시간에도 밥을 빨리 먹고 선생님과 학교에서 훈련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방과 후에도 아이들은 한두 시간씩 남아서 훈련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주말에도 모여 훈련을 한다고 했다.

"쉬는 날인데 훈련을 해? 선생님도 가정이 있는데 쉬는 날은 쉬셔야지. 너희가 훈련하자고 한 거 아니야?"
"아니거든 선생님이 나오라고 하신 거거든."

사실 쉬는 날까지 훈련을 하러 일찍 나가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체육 선생님은 결혼도 하셨다는데. 남편이 쉬는 날까지 출근하는 걸 좋아할 부인이 어디 있겠나? 선생님께도 부인께도 죄송스러웠다.

학교에서 농구 훈련을 하는 동안은 동네 풍경도 바뀌었다. 농구 대표 선수들에게는 학교에서 농구공을 하나씩 지급했다. 아이들은 농구공을 튀기면서 등하교를 했다. 선수가 아닌 남자아이들도 농구공을 튀기면서 등하교를 했다. 어디서 농구공을 "탕탕" 튀기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둘째가 오나 싶어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길 정도였다. 한동안은 동네 아이들이 너나없이 농구선수였다.

언젠가 둘째 아이에게 급하게 전할 말이 있어 학교로 찾아간 적이 있다. 점심시간에 맞추어서 운동장 농구대로 갔다. 체육 선생님이 열댓 명의 아이들에게 공을 던져 주면서 골을 넣는 훈련을 시키고 계셨다. 옆에는 고학년 여자아이들이 농구를 했다. 그리고 주변에는 농구훈련을 지켜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스탠드에서 신발을 갈아 신는 둘째에게 할 말을 전하고 운동장을 보는데, 체육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어떤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에게 훈련을 받는 아이들은 열댓 명뿐이었지만 선생님 옆에서 농구하는 여자아이들 그리고 농구 훈련을 지켜보는 아이들까지 운동장 안에서 농구에 대한 아이들의 열망,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농구 대회가 열리는 날, 나는 경기장에 갔다. 훈련하느라 고생했는데 좋은 성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 들다가도 몸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이기는 것은 필요 없으니 제발 다치지만 말아라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은 경기 도중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작전 지시를 했다. 아이들이 지치지 않도록 다섯 명씩 두 팀을 꾸려서 팀별로 선수교체 하도록 선생님이 지시했다. 누가 보더라도 아이들은 조직적으로 훈련을 잘 받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결과는 3위 성적이었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잘했다 싶었다. 사실 성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면서 운동도 배우고 행복했으면 되는 거다. 게다가 건강은 덤으로 얻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1학기의 지역 스포츠 대회가 끝나고 체육 시간에 반 대항 배드민턴 대회가 열렸다. 아이들은 배드민턴 채를 들고 학교에 갔고 저녁만 되면 동네 공원에서 모여서 배드민턴을 했다. 그리고 2학기가 되고는 다시 농구 대회가 열렸다. 아이들은 1학기 때처럼 훈련을 했다. 대회 결과는 4위안에 들었던 거 같다.

집에 쌓인 스포츠용품만 한보따리... 건강은 '덤'으로

야구, 축구, 탁구 배드민턴 용품들
▲ 둘째 스포츠용품들 야구, 축구, 탁구 배드민턴 용품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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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농구공을 튀기면서 가는 둘째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운동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볼 때마다 공을 가지고 다녀요"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생각해 보니 아저씨가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일 년 내내 둘째는 농구 축구 배드민턴 배구 야구 탁구 등의 스포츠에 빠져 지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무슨 스포츠 꿈나무를 키우는 부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쌓여 있는 스포츠용품들만 해도 한 보따리다.

농구 대회가 끝나고는 반 대항 발야구 대회, 주먹야구 대회, 배구대회, 티볼 대회를 했다. 가을엔 탁구 대회를 했다. 아이는 좋은 탁구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고는 학교 갈 때마다 탁구채를 가방에 넣어갔다. 동네에서 이제 탁구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겨울 방학이 되고 아이는 놀러 나갈 때 탁구채를 들고 간다. 탁구는 아이가 체육 선생님에게 배운 마지막 스포츠다.

이제 아이는 중학생이 된다.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교 때처럼 이렇게 여러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아이들이 다양한 스포츠 직접 배우기는 쉽지 않다. 배우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그런데 체육 선생님은 이런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부모로서 무척 고맙다. 아이는 여전히 빼빼 말랐지만, 많이 건강해졌다. 감기에 걸려도 하루 이틀 앓고 나면 약 없이도 좋아진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골골해서 결석도 많이 하던 녀석인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본인이 바깥 활동을 열심히 한 덕도 있지만,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게 도움 주신 체육 선생님의 공이 크다. 아마 우리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면 살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학기 말에 아이들에게 사진 선물을 주신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말이다. 담당하는 모든 아이에게 사진 선물을 주시려니 사진인화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게다가 졸업선물까지. 부모로서 고맙고 죄송스럽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번에 둘째 다니던 초등학교 입학하는 막내 녀석은 벌써부터 자기가 학교 농구팀 축구팀의 대표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게다가 "엄마, 체육선생님이 나한테는 무슨 선물 줄까? 나는 레고 받고 싶은데......." 하면서 졸업 선물을 뭘 받을지 고민을 하고 있다. 김치국은 제발 그만 마시길.

"선생님, 우리 둘째 현이 선생님 덕분에 지난 이 년간 정말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둘째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 역시 행복했고요. 올 한해 선생님과 가족분들 염원하는 일 이루시길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 현이 엄마. 2014년 2월 18일 -


태그:#체육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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