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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동남아시아로 빠져나간 탓입니다. 한국 제조업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요? <오마이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아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현장과 강소기업들을 찾아갑니다. 이번에 소개할 기업은 전기악기 브랜드인 '물론'입니다. [편집자말]
국내에서 전자기타와 이펙터를 수제작하는 기타리스트 출신 박영준 '물론' 대표.
▲ 전자기타 수제작하는 박영준 대표 국내에서 전자기타와 이펙터를 수제작하는 기타리스트 출신 박영준 '물론' 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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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대표가 제작한  전자기타에 사용되는 이펙터는 'Made in Korea'가 찍힌다.
 박영준 대표가 제작한 전자기타에 사용되는 이펙터는 'Made in Korea'가 찍힌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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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많이 변했어요. 한국 기업에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을 물어오던 사람들이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몰려갔잖아요. 그나마 한국이 OEM이라도 받을 수 있었던 건 2005년 쯤이 막바지였던 것 같아요. 이젠 한국에서 뭘 만들려고 하면 기술 없이는 어려워요."

여러 개의 연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새겨진 손바닥만한 크기의 금속 상자를 집어들고 가격을 물었더니 "300달러"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왠만한 시중 제품보다 2~3배 높은 가격이다. '가격이 높은데 사람들이 많이 사느냐'는 질문에는 제이슨 므라즈나 락밴드 '본 조비'의 기타리스트인 리치 샘보라 같은 사람들이 사간다"는 대답이 나왔다.

전기악기 브랜드인 '물론(Moollom)'의 박영준 대표는 국내 악기업계에서 다소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가 생산하는 제품은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이펙터(일렉트릭 기타의 전기 신호를 가공해 다른 음으로 바꿔주는 장치)의 세 종류. 국내 대중들은 잘 모르지만 국내외 프로 연주자들에겐 '명품' 취급을 받는다.

"'좋은 소리'에 대한 관심이 대박으로 이어졌죠"

지난 2003년 설립된 '물론'은 사실상 박영준 대표의 1인 기업이나 다름없다. 제품의 연구·개발부터 생산, 판매까지 그가 전부 도맡아 하기 때문. 그는 이 업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로 '좋은 소리에 대한 관심'을 꼽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어요. 대학은 미대 조소과를 갔는데 음악활동은 좋아하니까 계속 했지요. 계속 기타를 치다보니 어느날 '이걸 한 번 만들어볼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기가 만들면 애착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더 좋게 하는 법을 연구하게 됐죠."

기타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 기타에서 좋은 소리가 나게끔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처음으로 그를 괴롭혔던 대상은 스무 살 무렵 낙원상가에서 중고로 구입한 1963년형 '펜더' 전기기타였다. 박 대표의 취향에 딱 맞는 소리였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기타를 만들 수가 없었던 것. 부품을 구하러 청계천을 뒤지고 독학으로 10년 여를 헤매면서 그는 1960년대 미국 일렉트릭 기타 특유의 톤(소리의 질감과 음색)에 더욱 빠져들었다. 본업이었던 기타 연주도 접었다.

박 대표는 "그렇게 하다보니까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고 사업으로 손대기는 이펙터가 만만한 측면이 있어서 먼저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년 여 동안 50여 개의 이펙터를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하며 첫 제품을 만들었다. 락기타의 기본적인 소리를 만들어주는 '오버드라이브' 이펙터였다.

'대박'은 미국에서 터졌다. 세계 최대 악기 박람회인 '남쇼(NAMM Show,National Association of Music Merchants)에서 유명 뮤지션들의 눈도장을 받은 것.

"존 생크스라고 왕년에 기타 좀 쳤던 유명한 프로듀서가 있어요. 남쇼에 있는 우리 부스에서 소리를 들어보더니 사고 싶다고 해서 연락을 하게 됐죠. 그때가 셀린 디온 프로듀서 할 때였는데 자기들끼리 들어보고 하더니 좋다고 연락을 주더군요."

사업에 대한 불안 때문에 '물론 잘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브랜드 이름을 '물론'으로 정했던 것은 기우에 가까웠다. 입소문이 나자 락그룹 본조비의 기타리스트인 리치 삼보라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셰릴크로우에게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오버드라이브 이펙터와 트레몰로(음을 떨리게 하는 효과) 이펙터, 코러스(음을 겹쳐서 풍부한 느낌을 주는 효과) 이펙터가 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펙터 사업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지난 2007년부터는 정말 하고 싶었던 기타 제작에도 손을 댔다. 목표는 일렉트릭 기타 1세대였던 미국 1950~60년대 기타 소리의 재현. 이를 위해 기타의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픽업'도 직접 만든다.

전기 기타는 픽업 속에 어떤 자석을 넣고 그 위에 어떤 굵기의 코일을 몇 번 감느냐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로 변한다. 즉석에서 박 대표에게 기타 연주를 부탁해 들어본 물론 기타의 소리에는 미국 빈티지 기타 특유의 따뜻함과 묵직한 질감이 묻어났다.

그는 "'펜더'사의 1957년형 스트라토캐스터와 1955년형 텔레캐스터 소리를 모델로 만들고 있다"면서 "세계 어느 곳에서 만드는 레플리카(유명한 모델을 본떠서 만든 제품)보다 품질 면에서는 자신있다"고 강조했다. 차이가 나는 것은 당시 쓰였던 나무 재질과 금속 가공방법 정도라는 것이다.

디자인·소리 모두 인정..."대량생산 하면 지금 품질 유지 안 되요"

박영준 대표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전자기타의 부품을 손보고 있다.
 박영준 대표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전자기타의 부품을 손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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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대표의 기타제작 및 수리를 위한 작업실이 어수선 해보이지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정리 정돈이 되어 있다.
 박영준 대표의 기타제작 및 수리를 위한 작업실이 어수선 해보이지만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정리 정돈이 되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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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물론의 제품은 경쟁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이다. 물론 일렉트릭 기타의 경우 기본형 가격이 한 대에 179만 원이다. 대신 생산량도 적다. 현재 물론의 생산 직원은 박 대표를 포함해 2명에 불과하다.

이펙터는 내부 부품을 조립하고 금속 겉면에 한국을 상징하는 연꽃이나 치우 그림을 넣고 파내야 완성된다. 하루 종일 만들어도 10대가 한계다. 일렉트릭 기타도 업계 평균에 비해 제조기간이 오래 걸리기는 비슷하다. 박 대표는 "나무를 깎아 만드는 기타 바디 부분을 제외한 모든 제작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쉬지않고 일하면 1~2일에 한 대 정도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하는 현대의 대규모 공장 시스템과는 정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왜 직원을 보충해서 생산량을 늘리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표는 "그럴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 물론의 월 매출은 약 1500만 원. 그는 "저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고 어차피 저희가 제공하는 소리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량 생산을 하면 지금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그는 '중국에서 만들면 더 싸지 않겠느냐'고 묻자 "한국에서 만들어서 중국에 비싸게 파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남쇼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이 디자인도 좋고, 소리도 좋다면서 일본에서 왔냐고 물어봤어요. 일본 아니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OEM 제의를 해요. 미국 바이어들이 '한국은 당연히 OEM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우리 브랜드로 팔려고 온 건데. 기분이 나쁘더군요."

박 대표는 "우리 같은 업체들이 많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리다매' 콘셉트가 아닌 소품종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승부하는 작은 기업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그는 문화 산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이제는 좀 변했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악기 기업이 잘 되려면 우선 음악들이 다양해져야 해요. 그래야 고부가가치 제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시장도 커지고요. 단순히 목공이나 전기기기 기술만 가지고 좋은 기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저희가 잘 되니까 가끔 '정부에 뭐 바라는 것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데요. 개별 기업에 대한 지원보다는 그런 환경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영준 물론 대표.
 박영준 물론 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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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물론, #메이드인 코리아, #이펙터, #일렉트릭 기타, #박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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