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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별명은 '창돌이'다. 어릴 적 별명이 아니다. 마흔하고도 셋인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불리는 별명이란다.

지난 18일 만난 (사)한국수예공예기능인협회 평생문화센터 안성지부(안성평생문화센터, http://cafe.daum.net/519cko, 아래 센터) 김창숙 센터장의 별명이 바로 '창돌이'다. 이름에 '창'자를 따고, 성격이 남성 같다고 해 '돌이'가 따라 붙었다.

초창기 타향살이, '어둠'으로 점철돼

지금은 센터에 온 사람들과 함께 수공예를 하는 중이다. 하루가 금방 가는 건 이때문이다.
▲ 김창숙 센터장과 센터사람들 지금은 센터에 온 사람들과 함께 수공예를 하는 중이다. 하루가 금방 가는 건 이때문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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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고향은 대구, 안성에 온 지 6년이 됐다. 순전히 남편의 업종 따라 안성에 온 그녀. 초창기 그녀는 외식업을 하는 남편을 도왔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누구의 아내로 살던 그 시절을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 시절엔 너무 힘들었어요. 대구에 살 때는, 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뭔가를 하며 자신만만하게 살았었는데…. 안성에 와서는 나 자신을 발휘할 게 없더라고요. 가뜩이나 낯설고 물설어 적응 하느라 더욱 힘들었죠. 그 시절은 '우울, 어두움, 외로움', 뭐 이런 것들로 온통 점철됐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다. 그 시절의 아픔이 그녀의 맘을 살짝 건드린 듯하다. 그 시절, '1년 있다 고향 돌아가야지, 2년 있다 고향 돌아가야지'라는 생각들로 세월을 보냈단다. 원래 정신력이 강한 그녀였지만, 그때만큼은 무척이나 힘들었던 걸로 보인다. 

그랬던 그녀에게 찾아온 센터. 센터는 그녀에게 삶의 빛을 보여준 곳이다. 원래 배우기를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이곳을 놓치지 않았다. 돌파구가 간절한 그녀에게 이 센터는 돌파구이면서, 자신을 펼칠 수 있는 판타스틱한 마당이었다.

"고향 떠나 홀로 서니 내가 보이더라"

안성평생문화센터 벽면에 이런 작품들로 가득하다. 지나온 그들의 흔적이다.
▲ 작품들 1 안성평생문화센터 벽면에 이런 작품들로 가득하다. 지나온 그들의 흔적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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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림이 아니라 만든 그림이다.
▲ 작품들 3 그냥 그림이 아니라 만든 그림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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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게 건네준 명함에 자신에 대한 소개 글에는 '동화구연, 종이접기, 아동발표력지도사, 풍선장식가, 우드아트 지도사' 등이 적혀 있다. 지난 4년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달려왔는지를 잘 말해준다.

"사람이 고향을 떠나와서 홀로 서보니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고향에서 고향사람들과 잇대어 살 때는 자신감이 넘쳤죠. 안성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요. 아픈 만큼 성숙하게 만드는 곳이에요. 인생 공부를 하게 되는 거죠."

누구나 그렇듯,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살면서 적응하느라 수많은 에너지를 썼던 그녀다. 이젠 고통이나 난관을 즐기려고 한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단순한 문구를 실천하려 하는 거다. 그렇게 맘먹으면 실제로 자신 앞에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렇게 하기까지 자신의 자녀에게 '앞치마보다 강단이 어울리는 여자, 밥 해주는 엄마보다 열심히 일하는 엄마'가 더 친근하게 됐단다. 가끔 "내가 가정살림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오히려 어색해 한다"라며 미소 짓는다.

그녀의 성격은 화끈하다. 대충하는 법이 없다. 게으른 사람은 싫다. 그녀는 수박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보다는 토마토처럼 속과 겉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하나를 해도 확실하게 한다. 호불호가 강하다. 뒤끝도 없다. 한 번 시작하면 해낸다. 어쩌면 주변 지인들이 "창돌이, 창돌이"라고 하는 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이젠 그만 일 좀 저질러라, 일 너무 많이 하지 마라"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을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녀는 그냥 웃는다.

그녀의 지역사회 디자인은 아직 진화 중

벽면에 걸려 있는 작품들이 모두 훌륭한 수준이다.
▲ 작품들 2 벽면에 걸려 있는 작품들이 모두 훌륭한 수준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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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센터 벽면을 어디를 봐도 작품 투성이다.
▲ 작품들 4 이 센터 벽면을 어디를 봐도 작품 투성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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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녀는 배고프다. 안성에서 할 일이 있다. 바로 '동화구연'을 활성화 하는 거다. 어렸을 적 아이들이 영어교육에만 몰입하는 것보다 국어교육도 되면서 정서적으로도 좋은 동화구연의 세상을 열어주는 것을 꿈꾼다. 안성에서 해당 강사를 많이 양성시켜 동화구연을 보편화하는 것이다. 벌써 하겠다는 곳도, 함께 하겠다는 곳도 물색해놨다. 이미 해당 동아리를 형성해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녀다운 일 추진 방식이다.

그녀는 개인적으로는 글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예컨대 시 창작이나 수필창작 같은 글쓰기 교육을 받고 싶다는 것. 물론 혼자서만 아니라 센터에 오는 분들과 함께 말이다. 취재를 간 기자에게 "강사로 수고 해줄 수 없느냐"고 문의해오는 그녀는 일처리도 화끈 신속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약 하루 11시간을 센터와 보내는 그녀. 센터에 온 수강생들(20대부터 60대 여성까지)과 공예를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하루가 짧다. 공예뿐만 아니라 평생학습에 관한 것이라면 강사를 섭외하고, 강사를 양성하고, 강사를 모집하여 강의에 이르도록 연결한다. 요즘은 신학기라 외부 출강(경로당·어린이집·학교 등)을 나가니 더 바쁘다.

그녀는 6년 전 초창기 안성생활에선 안성에 치어서 살다가, 지금은 적응하는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안성을 디자인해가고 있다.

그녀는 6년 전에 대구에서 안성에 올라와 적응하느라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지금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타향이 아닌 제2의 고향을 디자인해 나가는데 바쁘다.
▲ 김창숙 센터장 그녀는 6년 전에 대구에서 안성에 올라와 적응하느라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지금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타향이 아닌 제2의 고향을 디자인해 나가는데 바쁘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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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자신과 만나는 시간, 조용히 혼자서 수공예를 하는 시간 등이 좋다는 그녀. 혼자만 살겠다고 대한민국 아줌마 파워를 발휘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살겠다고, 자신이 사는 지역을 디자인 하는데 쓰겠다고 발휘하는 그녀는 오늘도 바쁘다 바빠.


태그:#평생문화센터, #평생학습, #타향살이, #김창숙,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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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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