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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박살 낼까? '악마의 게임'에 중독된 아들'

지난 16일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보도된 내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는 요즘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아래 '롤')를 소재로 이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며 왜 중독성이 강한지 분석했다.

특히 롤 게임 한 판에 최소 20분에서 기본 40분이 넘어가며, 과반수 팀원이 항복하지 않으면 중간에 게임을 임의로 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심한 경우엔 어떤 중학교 학급은 반 아이들 전체가 롤 게임을 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케이블채널을 통해 프로게임단 정기리그까지 방송하는 마당에 청소년들의 롤 열광은 이미 통제 불능 상황이다.

실제로 기사의 의도도 아이들에게는 이미 부모가 자식을 못 잡아 안달난 존재로 비치는 당연한 현실에서, 부모의 반대에도 왜 아이들이 롤에 열광하는지 속내라도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롤' 분석기사, 댓글 집중포화... 나는 '기레기'가 됐다

어차피 아이들은 '셧다운제'(일정 나이 이하의 청소년에게 밤 늦은 시간의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제도)나 '쿨링오프제'(청소년 사용자가 일정 시간 게임 후 자동으로 종료되는 방식) 등 정책이 어떻게 바뀌든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해낸다.

프로 게이머가 장래희망이라는 아이들도 적지 않은 현실에서 무조건 게임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고 지양하는 방향으로 접근하자는 내용이었다. 게임이 자라나는 자녀들의 정신건강과 일상생활에 피해를 끼칠 정도라면 이제는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반향은 컸다. 최초의 반응은 포털 뉴스 IT분야 머리기사로 오른 기사의 댓글에서 나타났다. 부모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불을 지핀 롤 분석기사는 수백 개의 댓글로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후 각종 게임 관련 사이트 게시판과 롤 공식카페, '루리O', '인O' 등 젊은 게임 이용자들이 이용하는 각종 커뮤니티에 링크되어 올려진 기사에도 댓글의 여론은 비난 일색이었다.

이쯤 되자 청소년들의 학업에 대한 고충과 항의를 포함한 모든 화살이 다 내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평생 먹을 욕을 하루에 다 먹었다. 커뮤니티 이용자 대부분이 게임을 직접 하고 있는 이용자라는 점을 참작하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만 바라본 편향적 기사"라는 항의는 이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난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쭙잖은 분석으로 롤을 중독성 게임으로 규정하지 말고,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청소년들의 길을 막지 말라는 내용도 많았다. 특히 그 가운데 롤을 '악마의 게임'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며 쉬는 시간을 뺏어간 어른들이 악마라는 주장은 의미심장했다.

항상 게임 하는 아이들 탓 먼저, 부끄러운 부모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기사를 통해 롤에 빠진 아이들을 이해하고, 편견의 딱지를 떼어내는 데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을까. 나름 청소년들의 게임문화를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이미 기본 전제에 '아이들의 반감을 최소화하면서 게임을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이기적 접근은 깔리지 않았는지 반문해 본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여가를 활용하고 함께 놀아주는 자상한 아빠였나. 그들과 함께 여행 한 번 대화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고작 한다는 말이 "게임 좀 그만해"라는 말은 아니었나. 항상 게임을 하는 아이들 탓 먼저 한 부끄러운 부모는 아니었나?'

'항상 아이들은 방에서 공부해야 하고, 부모는 거실에서 TV보는 모습이 우리 집의 일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나. 부모가 권하는 취미생활은 무조건 건전한 것이고,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불건전한 행위로 규정하지는 않았나?'

'두 아들이 집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며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자체가 보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나. 공부하다가 컴퓨터 전원을 켠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궁금해서 슬며시 지켜보지는 않았나?'

'게임 앞에서 '당근'과 '채찍' 전략을 함께 펼치는 이중적 모순적 행동을 취하고 있지는 않았나. 아이들이 귀찮을 때는 게임을 '당근'으로 써먹고, 가만히 지켜보니 '롤'이라는 게임 자체가 시간 오래 걸리고 중지할 수 없으니 원천봉쇄하려 이제는 '채찍'을 들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 게임용어 몇 개 검색해서 어쭙잖게 아는 척하기보다는 진정성있게 아이들과 대화해 보고 이해해 보려고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부모가 게임을 '악'으로 바라보는 인식하에서 아이들은 언제나 힘없는 통제대상일 뿐이다.

'롤' 게임 직접 해보니... 마음대로 조작 안 되고 침은 '바싹바싹'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직접 게임을 접해보는 것이었다. 체험하고 느껴본 후 아이들을 공감하며 접근하는 것이 게임에 대한 대화의 창구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롤 게임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기사가 나가고 이틀 후였다. 평소 게임 문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아들과의 대화를 위해 직접 게임을 체험하고자 발벗고 나섰다.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기 위해 직접 롤 게임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성인인증을 거친후 회원가입을 하여 아이디를 'ohmyOOOOO'로 만들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기 위해 직접 롤 게임을 체험해 보기로 했다. 성인인증을 거친후 회원가입을 하여 아이디를 'ohmyOOOOO'로 만들었다.
ⓒ 'LOL' 공식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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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롤 공식누리집에 접속하여 성인인증 절차를 밟고 'ohmyOOOOO'라는 아이디로 회원 가입부터 했다. 아무리 '학습차원'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경험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설렌다. 나, 지금 떨고 있나? '정의의 전장에서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즐길 수 있다'는 게임정보란의 친절한 소개를 보고 있노라니 어른인 나도 괜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고 게임화면에 아이디를 입력하자 까만 바탕에 "본 게임물은 12세 이용가 게임으로서 해당 연령 미만의 어린이나 청소년이 이용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반드시 보호자의 지도감독이 필요한 게임입니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경고의 의미로 글귀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자 휘황찬란한 창으로 바뀐다.

게임화면에 로그인 하자마자 경고문이 나온다.
 게임화면에 로그인 하자마자 경고문이 나온다.
ⓒ 'LOL' 공식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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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해 본 '롤'게임참여. 하지만 어려운 게임용어에 독특한 게임방식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결코 하루 이틀에 습득할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니었다.
 난생 처음 해 본 '롤'게임참여. 하지만 어려운 게임용어에 독특한 게임방식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결코 하루 이틀에 습득할 수 있는 노하우가 아니었다.
ⓒ 'LOL' 공식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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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바뀔 때마다 깔끔한 배경에 박진감 넘치는 색감은 나도 모르게 게임 시작 화면의 경고문을 금세 잊게 했다. 또, 한결같이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왕초보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인터페이스 또한 크게 어렵지 않아 '튜토리얼'(일종의 게임 방법 지침이나 연습게임 프로그램) 몇 번이면 기본적인 게임조작법을 쉽게 익힐 수 있게 만들어졌다.

우선 100여 명이 넘는 챔피언(영웅 캐릭터) 중에서 취향에 맞는 하나의 챔피언을 선택했다. 이젠 '게임 시작'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이다. 나와 한 팀을 이룬 다섯 명과 함께 상대방이 택한 다섯 명의 영웅과 겨뤄 상대방 '넥서스(본부)'를 먼저 파괴해야 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갈 길은 멀고도 험했다. 게임 속 세 갈래 길은 물론, 각 게이머의 역할 군(탑, 미드, 정글, 원딜, 서포트)이나 맵에 있는 몬스터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단축키 사용법도 모르니 마우스로만 이리저리 이동을 시켜보지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거나 공격을 할 수가 없다.
 단축키 사용법도 모르니 마우스로만 이리저리 이동을 시켜보지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거나 공격을 할 수가 없다.
ⓒ 'LOL' 공식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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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내가 '롤'에 빠지는 건 아닌가?'라고 시작했던 그 조마조마했던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전투게임. 연습 게임까지 서너 번 거쳤건만 마음만큼 손이 움직이질 않고 입안의 침은 바싹바싹 마른다. 단축키 사용법도 모르니 마우스로만 이리저리 이동을 시켜본다. 하지만 게임 시작 20분이 지났건만 도무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가 없다.

컴퓨터 게임, '무조건 금지'보다는 '공감'이 우선

하는 수 없이 게임은 포기하고, 대신 채팅창을 통해 게임 참여자들과의 실시간 대화를 시도했다. "어떤 게임인지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들어왔다"는 나의 솔직한 대화에 아이들은 별로 거부감이 없다. 나와 대화를 이어가던 2명의 참가자는 각각 초등학교 2학년(9세)과 중학교 2학년(14세)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중학생이라는 참가자는 반 아이들 전체가 거의 다 롤을 한다고 답했다. 처음이라 얼마나 집중했던지 팔이 저리고 머릿속이 혼란스럽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신고하지 않을 테니 그냥 나가도 된다고 덧붙인다(롤은 플레이어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지 않았는데 게임을 그만두면 신고 당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틀 동안 이리저리 들락날락 거리며 게임에 참여해봤지만 어려운 게임 용어에 자신이 고른 영웅의 조작에만 '올인'하는 독특한 게임방식은 도무지 배우기 힘들었다.

하지만 얻은것도 많았다. 이런 시도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부모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신선한 접근 방식이었다. 오히려 옆에서 게임 방법을 지도하는 아들은 상기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아니, 아빠와 함께 롤을 한다는 사실에 이미 흥분돼 있었다. 마치 게임 초보친구에게 다정하게 지도하는 것처럼 두 눈은 반짝거렸다.

역시 게임을 직접 해보고 난 후 두 아들과의 대화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또 수월해졌다. 이틀간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아이들과 더욱 가까워지니 눈높이 대화가 이뤄졌다. 게임을 놓고 벌인 1년여에 걸친 두 아들과의 지루한 힘겨루기가 단 사흘 만에 타협점에 실마리가 보이는 순간이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그리 고민하며 지냈을까.

게임에 대해 '절대 금지'라는 부정적인 명령보다는 왜 중독이 되면 안 되는지에 대해 대화를 이어가니, 아이들도 앞으로는 자제한다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대화가 이어지니 타협은 생각보다 쉬웠고, 아이들을 마음도 한결 이해할 수 있었다. 결론은 앞으로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을 때에만 일 주일에 세 번의 컴퓨터 게임 기회를 주기로 했다.

롤 게임 한 판이 최소 20분에서 40분이고 때에 따라서는 1시간이 넘는 시간제한과 무관한 게임임을 고려, 시간 단위가 아닌 횟수로 허락하기로 했다. 케이블TV나 스마트 폰으로 게임 중계방송이나 게임녹화 동영상을 보는 것도 하지 않기로 했음은 물론이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막을 방법은 결코 없다. 하지만 자녀들의 정신건강 그리고 학교생활에 피해를 끼칠 정도라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지켜야 할 선을 긋는 게 옳다. 게임에 대한 이해 없이 그냥 '게임을 하지 말라'는 조건없는 명령보다 왜 절제해야 하는지 서로 공감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화의 시발점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국적불명 영웅의 얼굴 뒤에 감춰진 게임속의 친구들보다는, 진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뛰어노는 시간이 더 많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태그:#롤, #리그오브레전드
댓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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