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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강원 강릉 송정동, 작은 마을에서는 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투표장에서 지역 후보들 단일화를 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해, 단일 후보를 선출했다. 사진은 개표 장면
▲ 지역 후보 단일화를 위한 개표장면 지난 27일 강원 강릉 송정동, 작은 마을에서는 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투표장에서 지역 후보들 단일화를 하기 위한 투표를 실시해, 단일 후보를 선출했다. 사진은 개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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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결과 무소속 A 후보가 마을 단일 후보로 결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무소속 예비후보가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한 두명의 후보를 제치고 지역의 대표 후보로 결정된 순간이었다.

27일 강원 강릉의 한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이 모여, 오는 6.4지방선거에서 지역을 대표해 시의원에 출마할 후보를 선출하는 이른바 '단일후보선출'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다.

이 마을은 강릉 시의원 바-선거구(초당, 경포, 송정)에 속한 '송정동'으로, 2명의 시의원을 선출하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초당동과 경포동에 밀려 마을을 대표할 시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4년동안 의원 없는 동네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은 송정동 주민들은 이번 선거에서는 반드시 지역출신 시의원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송정동에서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나선 것은 모두 3명으로, 새누리당 후보 2명과 무소속 후보 1명이다. 지역 주민들의 몰표를 받아야 당선 가능성이 있는 송정동으로서는 후보 단일화 작업이 필수였다.

마을 주민들의 결집, 세 후보를 경선에 참여시키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전직 시의원을 지낸 경력있는 후보와, 공천을 받을 것이 유력하다고 알려진 새누리당 후보들이 당의 공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 투표에서 패하게 된다면 공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후보 사퇴를 해야 할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결집된 힘(?)으로 이 세후보들을 단일후보 경선에 참여시키는데 성공했다. 아무리 특정당의 유력 후보라고 하더라도 마을 주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선거를 치르면서 단합된 주민들의 뜻을 거스르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마을에서는 새누리당 두 후보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무소속 후보에 대해서는 경쟁 상대로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새누리당 한 후보는 한 때 주민투표를 반대하며 "공당의 후보가 어떻게 무소속 후보와 경선을 벌여 출마 여부를 결정하느냐"며 "말도 안된다"고 반발도 했다. 이들은 주민투표에서 무소속 후보가 이길 경우 사전 약속에 따라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한 두 후보들은 모두 사퇴 해야하고, 새누리당은 이 지역에서 후보를 낼 수 없는 최악의 상황도 연출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드디어 주민 선거일인 27일, 개표 결과 새누리당 후보들이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드러났다. 지역 주민들조차도 '끝까지 완주하지 않고, 선출된 새누리당 후보와 적당히 조율하여 중도 사퇴할 것'이라고 여겼던 무소속 후보가 1위로 결정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새누리당 두 후보의 선택만 남았다. 승복하고 사퇴 할 것이냐, 불복하고 새누리당 공천 심사결과를 기다릴 것이냐.

투표에서 패한 새누리당 후보 중 A 후보는 개표 결과를 받아본 즉시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주민투표 결과에 승복하고 새누리당 후보에서 사퇴한다"고 밝히고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B 후보는 충격이 상당한 듯 아직도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패배한 새누리당 한 후보 사퇴 선언... 다른 후보는 입장 표명 유보

강릉 송정동 지역 후보단일화를 위해 선발된 선거인단 56명은 27일 송정동 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기표를 한 후 용지를 투표함에 넣고있다.  총 투표인단 56명중 75%인 42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 강릉 송정동 주민 투표 강릉 송정동 지역 후보단일화를 위해 선발된 선거인단 56명은 27일 송정동 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기표를 한 후 용지를 투표함에 넣고있다. 총 투표인단 56명중 75%인 42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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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후보 사퇴를 선언하지 않고 있는 B 후보 역시 새누리당 공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의 결정을 무시하고 불복이라는 멍에를 쓴 채 선거운동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새누리당 강원도당 역시 A 후보의 사퇴로 단독 후보가 된 B 후보에 대해 공천권을 주기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대다수 '지역 주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 공천을 한다고 해도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사표시로 새누리당 후보들은 당의 공천 결과를 받아보지도 못한 채 사퇴하거나 출마를 고민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시 되는 강릉에서 지역 주민들의 투표로 인해 막강한 공천권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지역 주민들이 단결하면 무소불위의 공천권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다.

지난 27일은 이 작은 마을 주민들에게 있어서 만큼은 공천제도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었으며, 중앙 정치의 공천 굴레에서 벗어나는 기념일이었다. 주민들 스스로 후보들에게 공천권을 행사함으로써 송정동은 강원도 내에서 유일하게 중앙 정치권으로부터 공천권을 스스로 되찾아 온 유일한 마을이 됐다.

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투표는 앞으로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들의 의식을 바꿔버리는 계기가 됐다. 특정 정당 공천보다는 지역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교감을 통해 민심을 얻지 못하고서는 공천을 받아도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태그:#강릉시, #6.4지방선거, #하이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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