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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크라치에 도착하고서도 먼지는 계속 이어진다.
▲ 건기의 도로 서 크라치에 도착하고서도 먼지는 계속 이어진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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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륜구동이 뿜어내는 황토먼지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이들이 이고 가는 물통 위로 사정없이 쏟아진다. 여행자로서 여기 온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나는 KOICA 보건전문관으로 지난 1월 서아프리카 가나의 식수위생사업장 영향력 평가를 위해 현지조사를 왔다. 개인적으로는 가나에서 사업을 마치고 떠난 지 2년 반 만의 방문이었다.

지금 방문하는 곳은 가나 동서 크라치군으로, KOICA의 용역사업으로 월드비전이 식수위생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특별히 우리나라 원조사업이 어떤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대상 사업으로 선정됐다. 이번 방문은 현지에서 중간평가를 진행하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한국인인 강도욱 PM(project manager)이 서크라치 군에 머무르며 사업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동 크라치를 떠나 판툰(나룻배)은 서크라치로 갑니다.
▲ 판툰 동 크라치를 떠나 판툰(나룻배)은 서크라치로 갑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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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툰은 이렇게 동 크라치와 서 크라치로 오가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 판툰 도착 판툰은 이렇게 동 크라치와 서 크라치로 오가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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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욱 PM이 거주하는 서크라치로 가려면 동크라치 군에 있는 담바에라는 부둣가에 가서 판툰이라 불리는 대형 배를 타고 볼타 호수를 건너야 한다. 우리는 가나 수도 아크라를 떠나 얼마 전까지 세계 최대 인공 호수였고 지금은 중국에 그 자리를 내준 볼타호수 근처가 보이는 아코솜보에서 하루를 보내고, 바로 서크라치로 향했다.

1년 반 만에 가나에서 강도욱 PM을 만나, 담바에 부둣가에서 판툰을 타고 맞은 편 서크라치로 들어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옆에 앉은 강도욱 PM이 한 마디 건넨다.

"호수가 운치 있죠?"
"다시 봐도 진짜 멋있다! 평화롭고."

이렇게 답했지만, 호수의 풍광을 묻는 게 아니란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이런 광경이 아직 제 눈에 안 들어와요. 조금 지나면 들어오기 시작하겠죠?"

사업관리자로 있는 동안은 모든 상황이 정말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온 신경이 사업으로 집중되어 있어 아름다운 광경이 잘 들어오지가 않는다. 누구보다도 그 심정을 충분히 공감한다.

지금 이 식수 위생 사업은 우물을 파고, 화장실을 건축하고, 수도 파이프를 연결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위생 교육을 시키고, 캠페인을 벌이고, 구충제를 투약하는 등 정말 다양한 사업을 200개가 넘는 마을에서 실시하고 있다. 사업의 지속성을 고려하여 구성요소가 매우 다양하고, 많은 현지 관계자들을 개입 시키고, 넓은 지역에 걸쳐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사업관리자인 강도욱 PM이 신경 써야 하고 관리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고 복잡하다는 뜻이다.

그동안 우여곡절들이 많았지만 모든 사업이 정상궤도에 잘 진입했고, 이제는 마을 주민들이 사업의 열매를 여기저기서 맛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조금만 더 지나면 이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들어올 것이라는 상투적인 답변으로만 강 PM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9-2011년 월드비전 후원자들과 함께 여러 번 이곳을 찾았었다. 한비야 작가가 ,TV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나와 이야기 했던 '사람 몸 속에 살다가 피부를 뚫고 나오는, 길이가 1미터도 넘는 긴 벌레'인 기니아 충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곳은 기니아 충이 창궐했던 바로 그 지역이다. 기니아 충 감염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박멸이 되어가는 질병인데 아직도 가나를 포함해서 5개 국가에서 이 충에 감염된 이들이 발견된다.

예전에 월드비전 후원자들과 이 곳을 방문했을 때, 기니아 충에 감염되었다 충이 빠져나간 상처가 가득한 한 마을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기니아 충 감염은 이 충이 살고 있는 더러운 물을 마셔서 감염된다.

가나에서 기니아 충은 1980년 이후로 급속도로 줄어들었는데, 거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 중 한 명이 전 미국 대통령인 지미 카터다. 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가나 수도 아크라 인근 마을을 방문했는데 그 마을에서, 한비야 작가가 방송에서 말한 바로 그 장면과 똑같은 장면을 여럿 목격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다리에서 무언가를 빼내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실을 묶고 그 벌레를 빼내는데 그게 순식간에 빠져나오는 게 아니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주면서 조금씩 빠져나온다고 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 광경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아 미국으로 돌아가서 재단을 만들고 가나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식수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기나아 충은 지금은 가나 전역에서 거의 사라져서 보고되는 건수가 채 수십 건밖에 되지 않는다. 원래 가나 정부는 볼타지역에 여전히 기니아 충이 발견되어 식수사업을 KOICA에 요청했다.

KOICA는 사업목적을 기니아 충 제거보다는 이 지역 주민들, 특히 아동에게서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설사 발생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 식수뿐만 아니라 위생사업과 주민 위생 인식 증대 등을 모두 포함한 통합적 사업을 하여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해법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월드비전이 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되어 2013년부터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2011년 한 해에만 690만 명의 아이들이 다섯 살 생일을 맞지 못한 채 죽었다. 그 중에 110만 명은 폐렴으로 목숨을 잃었고, 70만 명이 설사로 목숨을 잃었다. 5살 미만의 아이가 설사로 죽는 일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설사가 아동사망의 주범이다.

식수위생 사업 중 하나로 손 씻기 교육을 진행하며, 이렇게 생긴 물통을 학교마다 지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방글라데시에서는 비누로 손 씻는 교육 하나로 설사발생을 70% 이상 줄인 사례가 있습니다.
▲ 손 씻기 교육 및 물통 식수위생 사업 중 하나로 손 씻기 교육을 진행하며, 이렇게 생긴 물통을 학교마다 지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방글라데시에서는 비누로 손 씻는 교육 하나로 설사발생을 70% 이상 줄인 사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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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아이의 영양상태를 튼튼하게 해주는 방법도 있고, 설사에 감염될 위험을 줄이는 방법도 있고, 설사에 걸렸을 때 빠르게 치료해주는 방법이 있다. 이 사업은 이 중에서 설사에 감염될 위험을 줄이는 데 주안점을 둔다. 마을마다 우물을 갖게 되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화장실이 있어서 대소변을 아무데서나 보지 않아 감염의 위험이 줄어든다. 또 밥 먹기 전이나, 용변을 본 이후에 비누로 손을 씻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질병 전파도 더 줄어든다.

원조를 향한 따가운 시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는 더 많은 원조에 대한 호소를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을 평소에 늘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원조를 향한 비판도, 더 많은 원조를 향한 호소도 모두 지금보다는 더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에 두고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어디에서 무슨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이번 방문 기간 동안에는 가나 현지의 조사 전문업체가 사업현장에서 몇 주에 걸쳐서 방문조사를 실시한다. 이 방문 조사를 통해 KOICA가 지원하고 월드비전이 수행한 식수위생사업을 통해 지역 내 질병발생율 등 기타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관찰한다.

판툰에서 내려 한 시간 반을 내달리니 서크라치 중심 마을인 케테 크라치가 나온다. 이게 정말 얼마만인가?

(* 다음 이야기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차승만 기자는 KOICA 소속으로 이 글은 지난 1월 서아프리카 가나 식수위생사업장 영향력 평가를 위해 현지조사를 다녀온 방문기입니다.



태그:#가나, #원조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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