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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후 사고 해역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의 시신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안치소로 운구되고 있다. 정부와 실종자 가족들은 합의하에 180구 규모의 임시 시신안치소를 설치했다.
▲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시신안치소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후 사고 해역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의 시신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마련된 임시 안치소로 운구되고 있다. 정부와 실종자 가족들은 합의하에 180구 규모의 임시 시신안치소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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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이 놓인 임시영안실 흰 천막 틈으로 오열이 터져 나온다. 사실 오열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했다. 고함치고, 숨이 넘어가고,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다.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경찰이 천막 주변 통행을 통제한다. 소리만 들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어머니의 절규에 아버지의 낮은 흐느낌이 뒤섞였다. '쿵쿵' 누군가 발을 구르며 운다. 어쩌면 손으로 땅을 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우두커니 서 있던 경찰들도 고개를 떨어뜨렸다. 30분 넘게 통곡하던 어머니는 결국 거의 실신한 상태로 구급차를 탔다.

"제발 알아볼 수 있을 때 꺼내주세요"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해역에서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수색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 사고해역 수색구조 8일째...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해역에서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수색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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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는 밤사이 수습된 희생자들의 시신 21구가 도착했다. 오전 9시부터 인양된 순서대로 129번부터 150번까지 번호가 매겨졌다.

시신확인소에서는 주검을 정리하고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인상착의와 특징을 정리했다. 신분증이나 학생증을 소지한 희생자는 간단히 이름과 생년월일만 적었다. 곧 시신확인소에서 200미터 가량 떨어진 천막에 신원확인 정보가 담긴 A4 종이가 여러 장 붙었다.

'160cm, 긴 생머리, 위쪽에 덧니 두 개, 왼쪽 손목에 OOO손목시계, 후드티에 추리닝'

"내 새끼… 어떡하니…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해…."

일주일 만에 찾은 딸이었다. 자신의 딸과 같은 인상착의를 확인한 실종자 가족들은 종이를 붙들고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맞아… 맞는 거 같아… 진짜였어… 정말 우리 딸이야."

엄마는 146번 종이를 때어내 가슴에 품었다. 그녀는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땅에 주저앉았다. 아빠가 가까스로 붙잡았지만 힘에 겨웠다. 대기하던 응급의료진이 그녀를 부축했다.

"우리 OO이 볼 때까지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아빠가 말했다. 의료진 천막에서 나온 그들은 딸이 도착할 선착장으로 향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 기다림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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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 남은 실종자 가족들은 딸을 찾아 떠난 가족들을 말없이 쳐다봤다. 몇 개의 간이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지친 표정이었다. 가족들은 몇 번을 보고 또 봤을 신원정보가 적힌 칠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남성이 안경을 올리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없는 거 같아… 응. 내가 여기 있을게…."

이날 오전 11시까지 이름이 '미상'으로 기록된 희생자는 29명이었다. 아직 가족을 찾지 못한 이들이다. 37번, 63번, 78번, 87번 희생자는 시신이 수습된 지 2~3일이 지나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정부가 구성한 재난대책본부와 실종자 가족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류가 가장 약해진다는 소조기에 들어가면서 구조작업이 원활해질 것이라고 했지만, 가족들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여전히 130여 명의 실종자가 남았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일부 가족은 민간인 잠수부와 함께 사고해역으로 나가려 했지만, 해경(해양경찰)이 이를 막으면서 한때 소란이 일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 중 한 명은 "제발 알아볼 수 있을 때 꺼내 달라"라고 애원하듯 소리쳤다.

떠나는 이와 남아 있는 이의 미안함

'세월호 침몰사고' 1주일째인 22일 오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군 실내체육관 대형모니터에 신원 미확인 인양 시신의 인상착의가 안내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1주일째인 22일 오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군 실내체육관 대형모니터에 신원 미확인 인양 시신의 인상착의가 안내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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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진도체육관에는 빈자리가 늘었다. 가족의 주검을 찾은 이들이 떠난 자리다. 실종자 가족은 최초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시신이 인양됐다는 뉴스가 화면을 통해 나왔지만 큰 동요는 없었다.

가족들은 슬퍼할 힘도 없어 보였다. 자리에 눕거나 의료진이 마련한 침상에서 링거를 맞기도 했다. 종종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도 있었다. 그들은 아들이자, 형이자, 조카인 실종자를 기억했다. 그렇게 서로 위로하며 잔인한 그 시간을 버텨냈다.

이날부터 가족들은 실종자 가족과 일반인들을 구분하기 위해 파란색 조끼를 착용했다. 이전까지는 실종자 이름이 적힌 명찰을 목에 걸고 다녔다. 조끼를 받기 위한 줄이 체육관 가운데로 길게 늘어섰다. 실종자 명단과 가족 인원을 확인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자 가족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준비된 조끼가 약간 모자라 몇몇 가족들은 체육관 정문에 마련된 가족지원반에서 조끼를 받기 위해 기다렸다. 그 옆을 지나가던 한 가족은 "우리가 기다리는 건 조끼가 아닌데…"라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군실내체육관 주변에 22일 쪽지와 대자보가 나붙었다. 실종자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쪽지부터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대자보까지 진도군실내체육관 입구와 한 봉사단체 천막이 이번 사고를 반추하는 글로 채워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군실내체육관 주변에 22일 쪽지와 대자보가 나붙었다. 실종자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쪽지부터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는 대자보까지 진도군실내체육관 입구와 한 봉사단체 천막이 이번 사고를 반추하는 글로 채워지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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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앞에도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종이가 붙어있다. 그 앞에서 한 남성이 통화 중이다.

"오늘은 안 올라온 거 같아, 내일은 나오겠지."

구조소식을 궁금해하는 지인에게 전하는 말에는 희망보다 무력감이 묻어 나왔다.

"포기했어. 괜찮아. 집사람이 걱정이야."

이제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자녀의 사망 사실을 확인한 한 가족은 팽목항으로 떠나는 버스에 오르면서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배웅하던 이들은 "아니야… 어서 가봐… 미안해"라고 말했다.

더 기다려야 하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들은 서로 미안해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잘못한 건 없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기다림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편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 실종자 가족 위로하는 편지 행렬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기다림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편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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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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