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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학생들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고 적힌 김창인씨의 대자보를 읽고 있다.
 중앙대 학생들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고 적힌 김창인씨의 대자보를 읽고 있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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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한 징계이력으로 장학금 수혜자격과 학생회장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중앙대생이 자퇴를 선언했다. 중앙대 철학과 09학번 김창인씨는 지난 7일 오후 중앙대 영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라며 "마지막 저항으로 대학을 그만 둔다"고 밝혔다.

2008년 5월 두산그룹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한 이후 대학 기업화와 학과 구조조정 사태 등으로 자퇴를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2010년 4월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현수막을 들고 한강대교에서 고공시위를 벌여 중앙대로부터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김씨는 이날 "나는 두산대학 1세대다"로 시작하는 자퇴 선언문을 학교 곳곳에 게재하고, 자퇴신청서를 제출했다. 자퇴선언문에서 김씨는 "정권에 비판한 교수는 해임되었고, 총장을 비판한 교지는 수거되었다"며 "비용 절감을 이유로 교양 과목은 축소되었고, 학과들은 통폐합되었으며, 건물이 지어지고 강의실은 늘어났지만, 강의 당 학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어 "(이런) 대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 대가는 참혹했다"며 "5차례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3차례의 징계조치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징계이력은 낙인찍기였다"며 "받았던 장학금은 환수요청 받았으며,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고 덧붙였다.

8일 오전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에 따르면 김창인씨의 자퇴선언을 담은 대자보는 하루만에 철거됐다. 철거된 대자보는 미화원실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학교에서 지시한 것임, 치우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중앙대는 지난 1월 7일에도 청소노동자 천막농성을 응원하는 대자보 수십장을 허가 받지 않은 게시물이고, 미관상 좋지 않다며 전부 철거한 바 있다.

징계 때문에 장학금 못 받고, 선거도 못나가

2010년 4월 8일 오전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2010년 4월 8일 오전 중앙대학교 학생 2명이 한강대교 남단 첫번째 아치에 올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1시간 가량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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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한강대교 고공시위에 나섰던 때는 2010년 4월. 당시 중앙대는 18개 대학 77개 학과를 10개 대학 46개 학과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안을 확정했다. 이후 현재까지 가정교육과를 폐과하고, 청소년학·아동복지학·비교민속학 3개 전공을 폐지했다. 반면 경영경제계열의 입학정원은 늘었다.

김씨가 받은 무기정학 징계는 소송과 징계위원회 재소집을 거쳐 이듬해 유기정학 1년 6개월로 변경됐다. 이후 2011년 10월 김씨는 다시 구조조정 문제를 제기했다. 중앙대 정문 잔디밭에서 학과 구조조정 사태와 관련한 '원탁 토론회'를 기획했다. 학교 측은 시험기간 소음 문제와 잔디밭 훼손을 우려해 불허한 집회를 개최했다며 김씨에게 근신처분을 내렸다.

징계이력은 김씨의 대학생활에 큰 장애물로 돌아왔다. 2012년 중앙대는 장학금 지급 제한 대상에 '학칙 또는 관련 규정에 의해 징계를 받은 자'를 포함하도록 학칙을 개정했다. 해당 징계 수준이나 제한 기간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에 따라 김씨는 2012년 1학기에 받은 학내 복지장학금 환수통보를 받기도 했다. 결국 김씨는 복학 이후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에는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에 단독후보로 출마했다가 학교당국에 제지를 당했다. 학칙상 김씨의 학점과 징계이력이 후보자격에 미달되기 때문에 선거를 계속할 시, 학생자치단체인 인문대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원에게 징계할 수도 있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에 선거는 연기됐고, 인문대 학생회는 '선거 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올해 3월로 연기된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에 재출마했다. 단독후보였다. 선관위에 대한 압박도 여전했다. 학칙상 선관위 구성원들에게 징계할 수 있음이 재차 통보된 후, 공고문으로도 게시되면서 선거는 무산됐다.

결국 학칙 때문에 장학금도 받지 못하고, 학생회장 선거도 치르지 못하게 된 셈이다. 김씨는 자퇴선언문에서 "내가 이 대학에서 배운 것은 정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적기도 했다.

중앙대 법학관 지하1층 벽. 김창인씨 대자보 옆에 붙은 독어독문학과 학생의 대자보.
 중앙대 법학관 지하1층 벽. 김창인씨 대자보 옆에 붙은 독어독문학과 학생의 대자보.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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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중앙대 법학관 지하1층 벽에 붙여진 김창인씨의 자퇴선언문 옆에 독어독문학과 한 학생이 적은 하늘색 대자보가 붙었다. 이 대자보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이 친구를 반드시 기억해 주십시오. 학교가 규정한 징계 대상자, 자퇴생이 아닌 우리의 친구이자 동료로 기억해주십시오. 그 또한 우리처럼 행복한 대학생활을 꿈꾸는 청년이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학교로부터 고개를 돌릴 때, 당당히 마주했을 뿐입니다."

아래는 김창인씨의 자퇴선언문 전문이다.

[전문]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 정의(正義)가 없는 대학(大學)은 대학이 아니기에.
나는 두산대학 1세대다. 2008년, 두산은 야심차게 중앙대를 인수했다. 명문의 반열에 올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수험생이었던 나는 중앙대 학생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 기업의 말처럼 나는 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하지만 두산재단과 함께 시작한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박용성 이사장은 대학이 교육이 아닌 산업이라 말했다. 대학도 기업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중앙대라는 이름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5년 만에 그의 말은 실현되었다. 정권에 비판한 교수는 해임되었고, 총장을 비판한 교지는 수거되었다. 회계를 의무적으로 배우면서, 성공한 명사들의 특강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교양 과목은 축소되었고, 이수 학점은 줄어들었다. 학과들은 통폐합되었다. 건물이 지어지고 강의실은 늘어났지만, 강의 당 학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대자보는 금지되었다. 정치적이라고 불허됐고, 입시 행사가 있다고 떼어졌다. 잔디밭에서 진행한 구조조정 토론회는 잔디를 훼손하는 불법 행사로 탄압받았다. 학생회가 진행하는 새터와 농활도 탄압받았으며, 지키는 일이 투쟁이 되었다. 중앙대는 표백되어 갔다.

대학은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학문을 돈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싸웠다. 2010년 고대의 한 학우가 대학을 거부하고 자퇴라는 선택을 했을 때, 나는 무기정학을 받았다. 한강대교 아치위에 올라 기업식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분투한 대가였다. 대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순진하게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기업을 등에 업은 대학은 괴물이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5차례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3차례의 징계조치를 받았다. 무기정학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자 대신 유기정학 18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유기정학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조조정 토론회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근신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징계이력은 낙인찍기였다. 받았던 장학금은 환수요청을 받았으며,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학교본부는 나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해, 각 과 학생회장들을 징계처분, 학군단과 교환학생 자격박탈, 학생회비 지원중단 등 갖가지 방법으로 협박하였다.

그렇게 난 블랙리스트 대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날 종북좌파라, 어느 교수는 나를 불구덩이에 타죽으러 가는 사람이라 했다. 그렇게 나는 절벽 앞으로, 불구덩이로 내몰렸다.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였을까.

대학에 더 이상 정의는 없다. 이제 학생회는 대의기구가 아니라 서비스 센터다. 간식은 열심히 나눠주지만, 축제는 화려하게 진행하지만, 학생들의 권리 침해에는 입을 닫았다. 학과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폐과되고, 청소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학생회는 움직이지 않는다.

교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시국선언을 했던 교수들이 학내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탄압의 선봉을 자처하게 된 교수들도 있다. 대학의 본질을 찾는 학생들에게 교수들은 다치지 않으려면 조심하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자기 몸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 모두가 비겁했다.

내가 이 대학에서 배운 것은 정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벽은 너무나 거대하고 완고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그저 포기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고민하고, 경쟁을 통한 생존을 요구했다. 그렇게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 난 결코 그들이 원하는 인간형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저항을 해보려한다.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중앙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중앙대를 사랑하고, 중앙대가 명문대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대학은 대학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진리와 정의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비록 중앙대를 자퇴하지만, 나의 자퇴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대학을 복원하기 위해 모두에게 지금보다 한걸음씩의 용기를 요구하는 재촉이기도 하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중앙대의 교훈이다.
떠나더라도 이 교훈은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 대학엔 정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중앙대학교 철학과 김창인




태그:#대학자퇴선언, #대학거부선언, #김창인, #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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