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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박세웅(50)씨는 방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을 충실히 따랐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더 이상 기다리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기자는 지난 2일 제주도의 한 병원에서 박씨를 만났다. 자동화물 기사였던 박씨의 방은 세월호 3층 후미 오른쪽 뒤에서 세 번째(DR-6)로, 그는 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 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방에는 그를 포함해 3명이 있었다.

안내방송에 따라 그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신발도 신고, 방에서 가만히 대기했다. 문도 미리 열어놨다. 객실 문은 안쪽으로 열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배가 좌측으로 기울었을 때 우측 객실은 좌측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을 열기가 어렵다. 박씨는 "문이 무거웠다"며 "기울어진 초기 문을 열고 닫히지 않도록 발로 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상태로 꽤 오래 있었다고 한다. 헬기 소리도 들렸다.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니 구조대가 오든지, 아니면 다른 방송이 나오겠지... 하지만 배만 점점 기울 뿐이었다.

"안되겠다, 나가자!"

3명은 바로 앞 화장실 문을 피해 조심조심 복도로 나갔다. 나가보니 복도에 있는 사람은 2명 뿐이었다. 이 증언은 당시 같은 위치에 여러명이 있었다는 옆 방 생존자(강봉길)의 증언과 비교할 때 박씨 일행이 꽤 오랫동안 방에 머물렀다는 점을 뒷받침해준다.

5명은 후미 갑판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본능적으로 높은 쪽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왼쪽을 쳐다봤지만 도저히 올라갈 수 있는 기울기가 아니었다. 반대 방향인 오른쪽을 쳐다봤다. 시퍼런 바닷물 위에 어선이 세월호에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어선을 통해 구출됐다.

박씨의 탈출 경로는 단순했다. 사고 당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방 안이었다. 그는 "어선에 올랐을 때 세월호는 이미 거의 옆으로 일자였다"면서 "방송도 나오고 배도 크니까 그렇게 빨리 기울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도 조금 더 늦었으면 죽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늦게 움직였지만, 일단 밖으로 나오자,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태그:#세월호, #생존자,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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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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