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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립다> 책 표지
 <그가 그립다> 책 표지
ⓒ 생각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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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무현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노풍'이 거세게 불며 전 국민의 관심이 모인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수업시간에 시사이슈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시던 영어선생님의 입에서 처음으로 '노풍'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정치에 관심도 없고 공부 때문에 정신적인 여유가 없던 고3인 나에게도 그 바람소리는 꽤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이후의 그는 좀 특이해 보였다. 제 성질에 못 이겨 연설 중 화를 내는 감정적인 사람인 것 같기도 했고 너무 솔직한 표현이 가끔 막말하는 모습처럼 비춰져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당시 나에게 노무현은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관심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를 유명하게 했던 5공 청문회나 3당 합당에서의 용기 있는 모습은 그의 사후에나 알게 되었던 사실들이었다.

그런데 군생활 시절 검찰조사가 한창이던 때에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듣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국민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장례식 동안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당시 얼마나 그를 두려워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죽음 이후에야 그가 다른 정치인, 대통령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단 걸 알게 되었다. 더불어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정의롭지 않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단면 역시도 그를 통해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늦은 이십대 후반에야 역사에 대한 사춘기를 겪고 서른 살이 되었다. 그런데 늦게 떠진 눈으로 세상을 똑바로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몇 년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모습은 상식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고객이었던 그가 없다... 그가 그립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5주기를 맞이해 그를 그리워한 사람들이 엮어낸 책 <그가 그립다>는 아직도 민주주의 공황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 초인을 회상하며 우리가 꿈꾸는 정의의 판타지를 그리게 한다. 그의 전속 이발사, 요리사에서부터 정치적 동반자, 평론가, 소설가까지 그의 과정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22명의 사람들이 담은 글귀를 느낄 때 왠지 모를 먹먹함에 마음이 시려진다.

꽃 피는 봄날 봉하에 가족들과 함께 다녀가라 하셨던 대통령 말씀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던 나의 약속, 우리의 약속,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대통령은 홀연히 우리의 곁을 떠났다. 지금도 '신 부장, 신 부장' 하시던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봄은 오고 5월은 또 오는데 지금 그분은 없다.

내 인생 최고의 고객이었던 그가 없다. 그분이 지금 내 곁에 없다. 그가 그립다. – 본문 중에서

국가 기관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버젓이 저지르는 지금의 작태를 볼 때마다 나는 그가 그립다. 정의에 대해 순수했고 그 길을 위해 걸음 걸음을 내딛다 결국 죽음을 택한 그가 그립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의 죽음은 수많은 정의의 씨앗을 뿌렸다. 세상 속에서 정의에 대해 정말로 순수했던 한 사람이 있었고 죽음을 통해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그를 보며 우리는 이 세상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그 희망으로 인해 작은 정의의 씨앗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그립다>의 22명의 저자들은 각자가 추억하고 있는 그를 그리고 있지만 결국 끝은 희망으로 귀결한다. 어떤 면에서 '그가 그립다' 라는 말은 '희망 한다'의 다른 말로 들린다. 이제 그 희망이 우리가 되어야 한다.

모범생 고등학생은 이제 30살이 되었다. '그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은 수 천, 수 만개의 사건이 기록된 교과서보다도 더 큰 진실의 메아리를 울렸다. 이제는 그 사건을 기준점 삼아 과거의 배움을 다시 돌아본다.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의 안경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희망'이라는 말로, '정의'라는 잣대로 우리의 역사를 다시 공부한다.

그리고 다시 희망한다. 더 이상 그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정의롭고 희망찬 세상이 어서 빨리 오기를.

용기를 내본다. 나의 행동이 작게나마 그 세상이 더 가까이 오는 데에 보탬이 되기를.

덧붙이는 글 | <그가 그립다> (유시민 외 지음, 생각의길 펴냄, 2014년 5월, 265쪽, 1만5000원)



그가 그립다 -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 생각의길(2014)


태그:#노무현, #박원순, #세월호, #문재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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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회에 평범한 신입아빠, 직장인인 연응찬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바라보는 사회가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공감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평범한 눈과 자세로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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