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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의 본질은 폭력이 아니라 무기력이다. 공권력이 그저 무지막지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힘을 만들어 맞서 싸우면 된다. 그러나 공권력은 국가의 폭력이다. 공권력에 맞서는 것은 곧 국가와 맞서는 것이 되고, 국가와 맞서는 것은 어느 국가든 가장 큰 죄로 못 박아 두고 있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두 눈 시퍼렇게 뜬 채로 공권력에 당할 수밖에 없다. 국가란 너무나도 크고 넓은 벽이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피곤해진 사람들은 하나둘 싸우기를 그만둔다. 공권력은 그렇게 사람들이 스스로 무기력해지게끔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그런 무기력을 거부하고 정말 미련하게 보일 만큼 공권력과 정면으로 맞선 사람들을 나는 지금까지 숱하게 봤다. 지난 18일 낮부터 밤까지 내가 지켜본 사람들도 그랬다.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꼭 기록해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5월 17일, 내가 다니는 일터에서 회원들과 함께 전라도 광주에 내려갔다. 해마다 이맘때 벌이는 '광주순례' 행사 때문이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지금 광화문 쪽에 3만 명이 모여 있다'는 뉴스를 봤다. 서울에 다다르니 오후 10시 반이었다. 아직도 안국동 쪽에서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이 경찰과 맞서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몹시 안타까웠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 푹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11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경찰에 끌려갔다는 뉴스를 봤다.

5월 18일 늦은 3시부터 청계광장에서 '2차 만민공동회'를 연다고 했다. 어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잡혀 갔으니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청계광장에 닿으니 3만 명은커녕 30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어제 너무 많은 힘을 빼서 그런가 싶었다. 만민공동회는 송경동 시인이 <오월 출정가>를 목놓아 부르는 것으로 끝났다.

만민공동회에 온 사람들은 광화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 동아일보사 앞쪽으로 나갔지만, 그곳에는 이미 경찰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어떻게든 길을 뚫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어 밀어 봤지만 경찰은 어린아이 하나 빠져나갈 틈조차 만들어주지 않았다. 잔뜩 화가 난 사람들은 경찰에게 거친 말을 마구 퍼부었다.

"인도를 왜 막아! 나도 시민인데!"

동아일보사 앞을 막아 선 경찰들
 동아일보사 앞을 막아 선 경찰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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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경찰 차량에서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일반 시민이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주최자는 어서 중지 선언하시고 다들 귀가하세요.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일반 시민의 통행권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저 광화문으로 가려는 것뿐이었던 사람들은 졸지에 '일반 시민'이 아닌, 어떤 이름 모를 존재가 됐다. 더구나 일반 시민의 통행권마저 빼앗고 있는 '범법자'가 돼 버렸다. 공권력이 휘두르는 폭력 가운데 사람의 몸이 아닌 마음에 상처를 내는 폭력이 바로 '이름 짓기'다. 공권력은 멋대로 이름을 지어 사람들에게 덮어씌울 수 있는 권리와 힘을 갖고 있다.

공권력은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도 쉽게 범죄자로 만들 수 있고 누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것을 불법으로 몰아갈 수 있다. '불법' '범죄' '불순 세력' '일반 시민' 등 공권력이 잘 써먹는 낱말은 몇 개 되지 않지만 그들은 낱말의 뜻을 독점하고 있다.

"한 명 한 명 샅샅이 채증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얼굴 한 명도 놓치지 말고 다 찍으세요!"

사복 차림을 한 채증 경찰들이 큼지막한 사진기를 들고 쉴 새 없이 찰칵거렸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경찰들도 있었다. 사진기든 캠코더든 하나같이 너무나 많이 보였고, 종로서 경비과장은 여기 모인 이들 모두를 샅샅이 채증하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난 사람들이 경찰들과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벌였다.

'광화문까지 가는 길은 많으니 저마다 흩어져서 움직이자'고 누군가가 외쳤다. 사람들이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아일보사 쪽에서는 회색 반소매 웃옷을 입은 웬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사람들과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허리에 두 손을 척 얹고 둥그스름한 배를 쑥 내밀고 있는 모습이 무척 당당해 보여서 처음에는 경찰이 아닌 줄 알았다.

"어서 집에 가세요! 불법 집회에 참여하면서 무슨 말이 그리 많습니까? 인도로 가는 것도 안 됩니다!"

그 사람은 경찰이었다. 늦은 밤까지 지겹도록 보게 될 경찰 간부들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놀랐던 점은 그 간부의 태도가 마치 독재자라도 쏘아 죽인 사람처럼 당당했다는 것이다. 강파른 눈길로 사람들을 쳐다보는 그 눈빛도, 허리에 얹은 두 손과 앞으로 쑥 내민 배도, 사람들을 범죄자 대하듯 하는 표정도 무척 거슬렸다. 저런 당당함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흩어지자 경찰들이 길을 열었다. 동아일보사 앞은 그만 막고 바삐 광화문 앞으로 가야 했을 것이다. 나도 열린 길목을 지나 일민 미술관을 거쳐 횡단보도를 건넜다. 교보생명 앞에서 보니 미 대사관 가는 길목은 이미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순신 동상 쪽 분수대를 지나 세종대왕상 쪽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이 경찰들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왜 인도를 막느냐고! 나도 시민인데! 대한민국 국민인데! 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못 가게 막는 거야!"

경찰에 에워싸인 백기완 선생

코오롱 노동자 앞을 막아 선 경찰들
 코오롱 노동자 앞을 막아 선 경찰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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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코오롱'이라 적힌 조끼를 보니 2005년부터 지금까지 10년째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코오롱 노동자인 듯했다. 경찰들은 코오롱 노동자가 인도로 가려고 하면 인도를 막았고 차도로 가려면 차도를 막았다.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미디어 단체 '칼라TV'의 아는 형님도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 그 광경들을 촬영했다. 몇몇 경찰들은 등에 '채증'이라는 딱지가 붙은 조끼를 입고서 열심히 사람들을 찍어 대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키 훤칠한 남자가 경찰들에게 목소리 높여 따졌다.

"구호도 외치지 않고 피켓도 없는데 길을 왜 막는 겁니까! (간부인 듯한 경찰에게) 아저씨! 경찰 행정 공부해 보셨어요? 공부해 보셨다면 지금 이거 불법이라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대체 왜 길을 막습니까! 왜!"

그러나 경찰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방패를 든 경찰들은 코오롱 노동자를 순식간에 에워쌌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경찰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갑자기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키 큰 중년 아저씨가 나타나더니 경찰들에게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손짓하기 시작했다. 칼라TV 형님도 '꼭지'가 돌았는지 파란 트레이닝복에게 가서 욕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당신 경찰이야? 경찰인데 경찰복도 없어? 당신이 경찰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당신 어디 누구야? 신분증 보여줘! 너 경찰 아니지? 용역이지? 경찰이면 경찰인 걸 증명해 보라고! (그 뒤로는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욕설들)"

파란 트레이닝복은 욕하지 말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칼라TV 형님을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다른 사람들도 삿대질을 하며 거친 말들을 퍼붓자 파란 트레이닝복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젊은 경찰들 뒤로 숨었다. 경찰들은 세종대왕상 양 옆에 벽처럼 버티고 섰고, 코오롱 노동자는 그 앞에서 대체 길을 왜 막느냐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나중에 듣기로는 멀찍이 돌아서 끝끝내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고 했다).

정부청사 쪽을 보니 그곳에도 경찰들이 바글바글했다. 나는 어서 광화문 앞으로 가야겠다 싶어 칼라TV 형님을 데리고 미 대사관을 지났다. 경찰들 한 무리가 고함을 지르며 광화문 앞으로 달려갔다. 멀리서 보이는 광화문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기자회견을 시작하는가 보다. 어디를 둘러봐도 달리고 있는, 또는 서 있는 경찰들이 보였다.

광화문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방패를 든 경찰들이 몇몇 사람들을 에워싸고 있어서 그쪽으로 가 봤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왜 막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고개를 더 들이밀어 보니 저쪽 한구석에 앉아 있는 백기완 선생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렇게 슬프고 원통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백기완 선생은 처음 봤다. 아까 코오롱 노동자가 경찰들에게 에워싸여 있을 때 간부한테 목이 쉬도록 따져 물었던 키 큰 대학생이 다시 나타나 목소리를 높였다.

"전두환과 맞서 싸운 백기완 선생님이 5·18에 저 안에 갇혀 있는 게 말이 됩니까! 어서 풀어 드리세요! 이게 말이 돼요? 오늘이 5·18인데! 전두환 군사독재와 맞서 싸운 분을!"

"이게 다 너희를 위해 싸우는 건데!"

경찰들이 만든 벽에 갇힌 백기완 선생
 경찰들이 만든 벽에 갇힌 백기완 선생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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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 앞에서 보았던 반소매 웃옷의 경찰이 무전기를 들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반소매 웃옷의 표정은 분명 티끌만큼도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마치 공권력의 당당함을 표정 하나로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도대체 저런 떳떳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다시금 궁금해졌다. 옆에서 칼라TV 형님이 말했다.

"그 능글능글한 남대문 경찰서 경비과장이 승진하고 나니까 다들 승진하고 싶어서 눈이 뒤집힌 거지. X만도 못한 놈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운동가들 잡아다가 때리고 고문하고 했을 놈들이야."

어느 틈에 광화문 앞에 가 있는 경찰 차량에서 종로서 경비과장의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불법 집회를 열고 있으니 어서 해산하라는 얘기를 지겹도록 늘어놓았다. 사람들이 백기완 선생이 갇힌 곳으로 자꾸만 모여들자 경찰들은 에워싼 것을 풀고 광화문 앞으로 가는 횡단보도 쪽을 막았다. 백기완 선생이 아까 경찰들에게 용감히 따지던 키 큰 대학생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대학생도 함께 울었다. 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백기완 선생은 미 대사관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선생을 따라가던 한 여성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경찰들에게 외쳤다.

"이 나쁜 놈들! 이게 다 너희들 위해서 싸우는 건데! 나쁜 놈들!"

정부청사 앞에서는 어떤 사람이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경찰들에게 따지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때마다 그쪽으로 새로운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가 그 사람을 방패로 에워쌌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뒤를 돌아보니 백기완 선생은 가던 길을 멈춰 서서는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채증이 '짜증'으로 보이던 순간

광화문 앞은 경찰 버스로 꽁꽁 막혀 있었다.
 광화문 앞은 경찰 버스로 꽁꽁 막혀 있었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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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에 다다르니 어느덧 오후 6시 반이었다. 경찰 버스들이 광화문 앞을 막아선 채 세워져 있었고 경찰들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사람들을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늙은 사복 경찰들이 무전기에 대고 끊임없이 뭔가를 중얼거렸고, 채증 경찰들은 계속 사진·영상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정부가 살인자다!"
"세월호 참사 책임져라!"
"진상조사 실시하라!"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들고 있던 손자보(피켓)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다 학살당하고 착취당하고 빼앗깁니다. 선을 넘고 저들의 공간에 갇히지 맙시다.'

경찰 차량에서는 종로서 경비과장이 거듭 미란다 원칙을 읊었다. 지금 해산하지 않으면 검거하겠다고 을러대며 3차 경고를 4차 경고로, 4차 경고를 5차 경고로 자꾸만 질질 끌었다. 여기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광화문 앞을 지나가려 했지만, 경찰들이 '잡혀갈지 모르니 그쪽으로는 가지 마시라'고 말했다.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겁을 잔뜩 주려는지 경찰 차량에서는 이런 말까지 흘러나왔다.

"불법시위 참여자로 간주될 수 있으니 일반 시민 분들과 기자분들은 어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검거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해산하지 않을 시 검거 시작하겠습니다."

화를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경찰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크고 작은 몸싸움이 일어났다. 앞이마가 벗겨진 중년 경찰이 사다리라도 밟고 올라섰는지 경찰들 사이로 쑥 솟아올라 마이크를 잡고, 욕설을 퍼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부터 검거해!"

칼라TV 형님이 그 경찰 간부에게 카메라를 바싹 들이밀자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윤리적으로 하셔야죠."

아까처럼 '꼭지'가 돈 칼라TV 형님이 또 욕을 퍼붓자 그 간부도 화가 났는지 무서운 눈매로 형님을 쳐다봤다. 그는 결국 다른 경찰들에 이끌려 저쪽으로 사라졌다.

채증 경찰들은 끈질기게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손가락질하며 욕해도, 왜 멋대로 채증하느냐고 따져 물어도, 채증 경찰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밥값을 다하고 있었다. 채증 경찰 등 뒤에 붙어 있는 '채증'이라는 딱지가 내 눈에는 '짜증'으로 보였다. 정말 짜증이 났다. 풍선 터트리듯 사진기와 캠코더를 초능력으로 뻥뻥 터트려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자유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누가 권리를 빼앗긴 채로 짓밟히고 있는지 조목조목 밝히는 발언들이 이어졌지만 경찰 버스와 경찰들은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꼼짝도 않은 채로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때때로 경찰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경고 방송이 사람들의 발언을 싹둑 잘라먹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5·18 만민공동회 결정 사항 및 실천 계획'을 입을 모아 선언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그때 시각은 오후 7시 40분이었다.

해가 지기 전 집에 닿을 줄 알았는데...

광화문 앞에서 진행된 '만민공동회' 기자회견
 광화문 앞에서 진행된 '만민공동회' 기자회견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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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 사항
-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박근혜 퇴진 운동을 확산시킨다.
- 세월호 참사의 해결은 대중의 힘으로 풀어야 한다.
- 우리는 평등하게 추모하고 평등하게 싸운다.

▲ 실천 계획
- '5·24 세월호 참사, 박근혜 퇴진을 위한 공동 행동의 날'에 참여한다.
- 책임자 고발 운동을 벌인다. (박근혜 대통령,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 각자가 진실 유포단이 되자.
- 온라인을 우리의 공간으로 만든다.

기자회견도 끝났으니 집에 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서 후우 한숨을 쉬었다. 칼라TV 형님은 서울의료원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지난 17일 삼성의 노조 탄압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센터 분회장의 시신을 경찰들이 빼앗아 갔다고 했다. 다른 날도 아닌 5·18에 왜 꼭 이런 소식들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다다를 수 있을 줄 알았다. 시청역으로 가기 위해 미 대사관을 지나 일민 미술관 앞 건널목을 건너던 나는 한 사람이 경찰에게 끌려와서 경찰차에 밀어 넣어지는 광경을 보게 됐다.

사람을 날름 집어삼킨 경찰차는 바삐 떠나 버렸고 몇몇 사람들이 울면서 고함을 질렀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건너편 동화면세점 앞에서부터 질질 끌려와 연행된 사람이라고 했다. 그쪽을 바라보니 경찰들 한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나는 욕을 하면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침묵시위 참여 학생들을 에워싼 경찰들의 뜨거운 채증 열기.
 침묵시위 참여 학생들을 에워싼 경찰들의 뜨거운 채증 열기.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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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 기자회견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채증 경찰들이 쉬지 않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경찰의 방패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마스크를 쓴 대학생들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글귀가 쓰인 손자보 하나씩을 손에 들고 있었다. 함께 온 칼라TV 형님에게 물어보니 지난달부터 침묵시위를 시작한 학생들이라고 했다. 용혜인이라는 이름이 그제야 떠올랐다. 안산에 사는 대학생 용혜인씨가 제안한 '가만히 있으라' 침묵시위는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지난 4월 30일 처음 시작됐다.

나중에 들어 알게 된 사실인데, 침묵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오후 3시부터 홍익대학교 쪽에서부터 행진을 시작해서 시청을 거쳐 청계광장 쪽으로 왔다고 했다. 만민공동회가 끝나고 광화문 앞에서 기자회견이 벌어질 무렵 침묵시위 참여자들은 청계광장을 떠나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화면세점으로 가는 건널목을 건너려 했고, 그때부터 갑자기 경찰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꽁꽁 에워싸 버렸단다. 그 바람에 모두 동화면세점 앞에서 발이 묶여 버린 것이다.

광화문 앞에 세워져 있던 경찰 차량이 어느새 여기 와 있었다. 우리 모두가 사법처리 대상자라는, 하나하나 얼굴을 정확히 채증하라는 경고 방송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거푸 흘러나왔다. 아까 기자회견 때 경찰들 사이에서 쑥 솟아올라 마이크 잡고 검거니 뭐니 떠들던 경찰 간부가 다시 나타나 경찰을 지휘했다.

"여러분들의 위법 행위를 샅샅이 채증하고 있습니다."

간부가 운을 띄우면 경찰 차량에서 마치 민요라도 부르듯 후렴을 되풀이했다.

"일반 차량과 시민들이 불법 시위자들의 불법 행위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국민입니까?"라는 물음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울음을 터트리는 침묵시위 참여자들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울음을 터트리는 침묵시위 참여자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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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의 벽에 갇힌 학생들은 얼굴이 발개지도록 엉엉 울면서 소리 질렀다.

"우리가 국민입니까? 유가족분들이 KBS 앞에서 밤을 새우며 길환영 사장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국민입니까? 왜 그분들이 그렇게 물어야 합니까? 왜 그분들이 경찰들에게 가로막혀야 합니까? 왜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가 국민이냐고 외쳐야 합니까?"

무슨 일인지 보러 온 사람들이 어느 틈에 점점 불어나 있었다. 곧 동화면세점 앞은 경찰들에게 쏟아지는 욕설과 고함들로 가득 찼다. 마이크를 쥔 간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경찰들에게 하나하나 철저히 채증하라고 재촉했다.

분명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경찰들의 저런 짓거리들이 금세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갈 텐데 간부들도 그 아래 경찰들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얼굴빛이 아니었다. 왜 저들은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죄라면 저도 잡혀가겠습니다!"

"이 나라는 자식을 잃은 유가족이 자기가 국민이냐고 물어야 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계속 가만히 있으라고만 말하지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영정사진 앞에서 피켓 들고 서 있는 유가족들에게 미안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죄라면 다 잡아가십시오! 300여 명의 죽음 앞에 떳떳하다면 다 잡아가십시오!"

학생들은 자꾸 울었고 울면서도 목이 쉬도록 외쳤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울기 시작했다.

오후 8시 반이 됐고, 해산을 명령하는 경고 방송은 4차까지 흘러나왔다. 종로서 경비과장이 미란다 원칙을 줄줄 읊자 정말 학생들을 잡아가려는지 빈 경찰 버스 한 대가 가까이에 멈춰 섰다. 그 와중에 <TV조선>에서 나온 기자들이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욕설을 못 이겨 카메라를 들고 꽁무니를 뺐다.

경찰 차량에서 나오는 방송의 본질

자유 발언을 진행하고 있는 침묵시위 참여자들.
 자유 발언을 진행하고 있는 침묵시위 참여자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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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자유 발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찰 차량에서는 검거 작전을 시작할 테니 일반 시민 분들과 기자분들은 빠져 달라는 방송을 했다. 그리고 오후 8시 44분, 검거가 시작됐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검거 작전에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고등학생들은 빨리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도와주세요!"
"저희와 함께해 주세요!"

동화면세점 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몰려오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일어나 온몸으로 방패에 맞섰다.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까지 달려들면서 거친 몸싸움이 일어났다. 채증 경찰들이 터뜨리는 사진기 플래시 때문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잡아가지 말라고 외치는 소리가 이쪽저쪽에서 들려 왔다. 마이크를 쥔 간부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공무집행 중인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즉시 체포하세요!"

국화꽃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무쇠 같은 방패를 들고 있는 경찰을 어떻게 때려눕힌단 말인가. 간부가 내뱉은 저 말은 우리 보고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멀리서 듣는 사람들은 폭력을 휘두르는 '폭도'들에 맞서 경찰들이 열심히 싸운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경찰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방송들의 본질이 사실 그랬다. 그들은 우리에게 경고하기 위해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립시키기 위해 방송한다. 불법과 폭력이라는 틀 안에 가둬 다른 사람들과 격리시키기 위해 방송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니 연행하냐!"

검거 작전을 지휘하는 경찰 간부와 수많은 채증 카메라들.
 검거 작전을 지휘하는 경찰 간부와 수많은 채증 카메라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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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 아무나 잡고 끌어당겨 벌써 몇 명을 연행해 갔다. 그러나 사람들이 워낙 거세게 맞서는 바람에 경찰들도 잠시 쉬며 다시 숨을 고르는 분위기였다. 용혜인씨가 인도 쪽으로 나오더니 무릎을 꺾으며 푹 쓰러졌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비닐봉지와 수건을 달라는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에 사람들이 저마다 가방을 뒤졌고 봉지와 수건이 금세 용혜인씨 쪽으로 건네졌다. 누군가는 물병을 건넸다. 사람들이 물러섰다. 용혜인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분노를 못 이긴 사람들이 주먹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니 연행하냐!"
"경찰은 해산하라!"
"시민들 잡아가지 마세요!"

사람들을 하나씩 끄집어내려는 경찰들과 버티려는 사람들이 맞서며 몸싸움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경찰 차량 안에서는 종로서 경비과장이 이래라저래라 경찰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연행되는 와중에 누군가가 옆에서 손뼉을 치며 "경찰들 잘한다"라고 외쳤다. 금세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따져 물었다. 그 사람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은 검거해야 한다"며 "지금 경찰이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경찰이 얼른 달려와 그 사람을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다.

오후 9시 10분이 됐다. 경찰들이 갑자기 청와대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화문 쪽으로 가는 길이 금세 뚫렸고 침묵시위 참여자들과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일단 뚫린 길을 지나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못 가서 알게 됐다. 이 모든 것이 검거를 위한 경찰들의 작전이었다는 사실을.

시작은 이순신 동상 앞이었다. 경찰들이 갑자기 쏜살같이 움직이며 누군가를 덮쳐 경찰 버스 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곳곳에서 함성을 지르며 경찰들이 뛰어다녔고, 광화문 한복판은 순식간에 구둣발 소리로 가득 찼다. 곳곳에서 다시 검거가 시작됐다. 길이 뚫린 줄 알고 방심하며 걷던 사람들이 계속해서 끌려갔다. 한데 모여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헤쳐 놓기 위해 경찰들이 벌인 작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비규환이었다.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들어찬 사람들이 경찰들 틈바구니에서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몸싸움을 벌였다. 가장 크게 고함을 지르는 사람일수록 가장 먼저 끌려갔다. 가장 거칠게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일수록 가장 많은 경찰들이 몰려와 팔다리를 붙잡았다. 아까 코오롱 노동자와 있을 때 봤던 파란 트레이닝복이 다시 나타나 몸소 사람 하나를 끌고 와서는 경찰들에게 넘겼다.

하나 둘 연행되는 사람들.
 하나 둘 연행되는 사람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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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시위 참여자들 가운데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남자 경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학생들의 몸에 손을 댔다. 여학생들은 겁먹은 기색도 없이 남자 경찰들을 온몸으로 들이받았다. 사람들이 "여경 어디 있냐"고, "왜 남자 경찰들이 여자 몸에 손을 대냐"고 소리치자 그제야 저쪽에서 여경들 한 무리가 나타났다. 여경들이 침착하게 여학생들 몇 명을 끌고 가 버렸고 금세 한 대를 다 채웠는지 경찰 버스 한 대가 자리를 떠났다.

이순신 동상 앞 광장과 차도 사이에 있는 화단을 경계로 사람들과 경찰들이 마주 섰다. 화단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여경들이 마구 끌어당기자 화단 아래로 몇 사람이 굴러떨어질 뻔했다. 사람들은 결국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늘어선 채로 앞뒤로 경찰들에게 에워싸였다. 길 건너편에는 차량에서 내린 종로서 경비과장이 마이크를 들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검거하겠습니다."

잊을 수 없다... 또박또박 읊던 미란다 원칙

광장 가장자리 화단을 사이에 두고 마주선 경찰들과 학생들.
 광장 가장자리 화단을 사이에 두고 마주선 경찰들과 학생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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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서 남녀 합쳐 30여 명이 잡혀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한동안 경찰들도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분위기가 됐다. 침묵시위 참여자들이 "연행자 16명을 즉각 석방하라"며 고함을 질렀다. 연행자들이 풀려날 때까지 이 자리에 있겠다고 했다. 대체 몇 사람이나 연행됐는지 소문만 듣고서는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었다. 그때가 오후 9시 50분쯤이었다.

뱃속이 꾸르륵거리느라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화장실에 다녀왔다. 다녀오니 이미 학생들은 하나씩 경찰 버스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가까이 가려고 했더니 경찰들이 공무집행 중이라며 가로막았다. 다른 곳으로 가서 발돋움을 했다. 경찰은 한 명씩 앉아 있던 학생의 팔다리를 들고 버스로 옮겨 태웠다. 경비과장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말했고, 학생들은 경찰에게 잡힌 채 온몸을 버둥거리며 울부짖었다.

계속해서 연행되는 사람들.
 계속해서 연행되는 사람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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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태워지던 버스 앞문 쪽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여자 한 명이 몸싸움에 밀려 뒤로 푹 주저앉는 바람에 허리 쪽을 다친 듯했다. 어떤 아저씨가 버스 앞에 팔짱을 낀 채로 벌렁 드러눕자 경찰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아저씨를 들어내려 했다. 또다시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이 차를 절대로 보내선 안 된다"고 외쳤다. 몸싸움을 하던 중에 몇몇 사람들이 아직 차들이 달리는 차도로 내동댕이쳐졌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버스가 출발하려 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앞을 가로막았다. 경찰들은 위험하니 어서 인도로 올라가라며 사람들을 밀었고, 버스는 그 틈을 타 어딘가로 떠나 버렸다.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아까 그 파란 트레이닝복이 아직도 남아 있다가 누군가와 몸싸움을 했다. 아까 봤던 반소매 웃옷도 여전히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버스 앞문에 태우느라 사람들과 몸싸움이 벌어진다고 생각했는지 새로 온 경찰 버스는 가운데 있는 문으로 학생들을 끌고 왔다. 그리고 그 양쪽으로 경찰들이 길게 늘어서서 길을 만들었다. 누구도 그 벽을 넘어 학생들을 구하러 가지 못했다. 학생들의 절규만이 경찰들의 벽 너머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종로서 경비과장은 건너편에서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했다.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지 마세요. 차분히 한 사람씩 검거하세요. 해산하지 않으면 불법 시위자로 간주하겠습니다."

아까부터 들려온 이상한 소리가 있었다. 여경들이 학생들을 질질 끌고 오며 입을 모아 뭔가를 계속해서 읊었는데, 좀 더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미란다 원칙이었다는 것이다. '당신은 집시법 몇 조 몇 항에 의거 검거되고 있다'는 소리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여경들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 잡아들이는 로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단조로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발음되던 미란다 원칙이, 그 참을 수 없었던 목소리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여학생들을 연행하는 여경들.
 여학생들을 연행하는 여경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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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주머니는 온몸을 떨며 한 마디 한 마디 쥐어짜 내는 듯 학생들을 향해 힘겹게 고함을 질렀다.

"얘들아! 엄마 왔어! 밥 하다가 너희들 보러 왔어! 어떡하니 진짜…. 미치겠다! 남자 경찰들은 여학생들 몸에 손대지 마!"

끌려가는 학생들을 보며 울면서 소리 지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거 작전이 끝났다. 오후 10시 40분이었다. 침묵시위에 참여한 모두가 끌려갔다. 경찰들은 함성을 지르며 하나둘 물러갔다. 그러나 아직 분노를 떨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연행된 사람은 모두 97명이고 그 가운데 37명이 여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디서 나온 정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SNS와 카카오톡을 통해 지금 퍼지고 있는 소식이라고 했다. 강남은 강남대로 시신을 빼앗아 간 경찰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담배 한 갑이 동났다. 자꾸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다른 날도 아닌 5·18이었다.



어느 기자 한 명이 남자 경찰들이 여학생들의 몸을 만지며 연행하는 광경을 영상으로 찍어뒀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가 본 것들을 이야기해줬다(관련 영상 : http://youtu.be/fYK6bpNkirE , http://youtu.be/no9QSgmBkXA , 신문고 뉴스 이계덕 기자).

"여학생들 성추행하지 말라고 말 한 마디 안 하고 경비과장이란 사람이 무조건 연행만 외쳤어."
"머리가 땅에 닿은 상태로 다리 잡고 질질 끌고 갔어요."
"여학생 웃옷이 말려 올라가서 허리 위까지 다 드러났어요."
"끌고 가다가 치마가 반쯤 벗겨지니 잠깐 멈춰서 다시 입히고 끌고 가더라고."
"처음엔 남자 경찰이 끌고 가는 거 보고 우리가 왜 여경이 없냐고 따지니까 그때서야 여경들이 왔어요."

아직 철수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찰들에게 사람들이 계속해서 고함을 지르고 욕을 퍼부었다. 오후 11시 5분, 또다시 경고 방송이 나왔다. 해산하지 않으면 검거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남은 사람들은 2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아직 잡혀가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여자 셋이 '가만히 있으라'고 적힌 손자보를 다시 꺼내 들고 경찰들 앞에 바짝 다가섰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다시 몰려드니 경찰들도 우르르 뛰어와 사람들을 에워쌌다. 여자 셋은 서럽게 울면서 경찰들을 향해 이야기를 쏟아냈다.

"여기 죽기 싫어 나왔습니다"

끝까지 남아 경찰 앞에 선 사람들.
 끝까지 남아 경찰 앞에 선 사람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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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기 죽기 싫어서 나왔습니다. 안전하지 못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안전하게 해달라고, 죽은 아이들 기억하자고 나왔는데 우리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방관자였습니다. 2008년 광우병 시위 때도 저걸 대체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방관자였습니다. 저는 정부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탓하러 나왔습니다. 저는 밥 잘 먹고 따뜻한 곳에서 잠자는 사람이라, 죽은 아이들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저 연행해 가실 건가요? 실은 저 살면서 한 번도 연행된 적이 없어서 지금 되게 무섭거든요. 근데 제가 나중에 엄마가 돼서 아이를 잃게 된다면 그게 훨씬 더 무서울 것 같아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우리가 언제 박근혜 퇴진을 외쳤나요? 설사 퇴진하라고 외쳤다 해도 그게 잘못입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대통령한테 내려오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울음소리가 어느덧 고즈넉해진 광화문 밤거리에 스며들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달리는 자동차들이 가끔씩 지나갈 뿐이었다.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있자 경찰들 한 무리가 저쪽에서 다시 몰려왔고, 여경들을 앞세워 사람들을 광장 귀퉁이로 조금씩 밀었다.

대체 왜 미느냐고 아무리 물어도 경찰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채증 경찰들이 또 캠코더를 들이대자 사람들이 물병을 던지려고 해서 다른 경찰들이 그 앞에 방패를 대줬다. 자기가 갖고 있던 손전화로 영상을 찍는 경찰도 있었다. 끝까지 남은 사람들 가운데는 전동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도 있었다. 경찰들이 그 사람에게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나라고 하니 그 장애인이 잔뜩 화가 치민 목소리로 맞받았다.

"이 세상에 경찰보다 위험한 것은 하나도 없다!"

자정이 다 됐다. 아직도 퇴근하지 않은 종로서 경비과장이 "어서들 해산하시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경찰에게는 광장 귀퉁이 쪽으로 사람들을 더 밀라고 거듭 지시를 내렸다. 이제는 악에 받친 사람들이 쉰 목소리로 항의하자 경찰 폭행하면 채증하고 검거하겠다면서 아까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경찰들은 버티기에 들어간 듯했다. 여기서 계속 시간을 끌다 보면 지친 사람들이 제풀에 꺾여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손자보를 든 사람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경찰들 앞에 붙어 서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침묵을 통해 우리들의 목소리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5월 19일 오전 1시 25분, 연행자가 100명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뒤로하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집에 들어가 아침까지 글을 쓰기로 했다. 5·18 광주항쟁 34돌이었던 날에 내가 보고들은 것들을 어떻게든 글로 옮기기로 했다.

5월 24일, 다시 만나자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경찰이 밀고 내려와 사람들이 광장 귀퉁이까지 밀려났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경찰이 밀고 내려와 사람들이 광장 귀퉁이까지 밀려났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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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람들은 새벽쯤에 한꺼번에 잡혀가거나, 아니면 아침까지 서 있다가 집에 돌아가거나 할 것이다. 잡혀가든 집에 가든 나는 그곳에 끝까지 남아 있으려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고마웠다. 누군가는 끝까지 있어야 했다. 누군가는 경찰들의 폭력에 해산되지 않고 남아 있어야 했다.

누군가는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깃발처럼 서 있어 줘야 했다. 나는 그 '누군가'가 되지 못한 것이 무척 부끄러웠다.

공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34년 전 광주에서는 환한 대낮에 공수부대원들이 대검으로 사람들의 배를 쑤시고 곤봉으로 머리통을 부수지 않았는가. 5년 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는 경찰특공대가 노동자들을 꽁꽁 묶어 놓고서 무자비하게 진압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폭력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공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은 언제나 새롭다. 똑같은 군홧발로, 똑같은 곤봉으로, 똑같은 방패로 내리 찍는 공권력이지만 당하는 사람들은 늘 달라지기 때문이다. 용산에서든 강정에서든 밀양에서든 공권력은 곳곳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찾아냈다. 폭력이 새로워질 때마다 분노도 새로워진다. 공권력이 누군가를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만드는 광경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진기와 캠코더를 들이대던 채증 경찰들. 거리를 누비던 사복 경찰들. 아무 거리낌 없이 여학생들을 번쩍 들어 경찰 버스에 밀어 넣던 여경들. 나는 이들의 눈빛과 표정에서 부끄러움이나 망설임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들은 떳떳하게 굴었고, 언제나 법과 규칙을 이야기했다.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지금에서야 알겠다. 그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을 후벼 팔 수 있는 이유를 말이다. 그들이 승진을 바리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원래 배짱 좋은 인간들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든든한 배후 세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배후 세력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국가, 정부, 법, 권력, 대통령, 국회, 국회의원, 경찰청, 군대, 학교, 언론, 자본, 대기업…. 이 모든 것들은 똑같은 것을 부르는 서로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통해 보호받고 있다. 그들은 거리에 나온 사람들을 때리든 말든, 잡아 가두든 말든 절대로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더 잘해낼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당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확신을 철저히 보장해주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이 물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안전하지 못한 나라에서 살고 있기도 하지만 내일이라도 당장 공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피투성이가 될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저 옳은 말을 했을 뿐이라도 말이다. 

범국민촛불행동이 예정된 5월 24일. 공권력은 또다시 모두를 잡아들이기 위해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경찰 버스 안으로 끌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한다. 촛불집회 한 번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해도 좋다. 우리는 직접 봐야 한다. 사람들이 흐느끼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봐야 한다.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사람들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공권력은 '정권의 사냥개'이자 '불쌍한 꼭두각시'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5월 24일. 거리에서, 많은 이들과 뜨겁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만민공동회, #침묵시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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