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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은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을 떨어뜨린다"는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발언을 계기로 다시 대학등록금이 쟁점이 되었다. 정몽준 후보와 같이 상위 1%를 자랑하는 '슈퍼 부자들'에게는 지금의 대학등록금이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서민은 물론 중산층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도 매우 큰 부담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안이 나왔다. 주로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하는 무상교육의 사례가 많이 소개되었다. 이때마다 유럽은 잘 사니까 그렇게 한다면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그러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예를 찾아보면 어떨까. 필리핀 같은 나라말이다.

반값 등록금, 돈 많아야 하는 것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필리핀에도 '사회적 등록금 재정 지원 프로그램'(STFAP)이 있다. 우리 정치인들과 교육행정가들이 반드시 공부해야 할 제도다. STFAP에 따르면 부모의 수입에 비례하여 등록금 구간을 나눠 경제적 취약 계층 학부생들은 낮은 등록금을 낸다. 이 제도는 필리핀이 피플파워 민주항쟁으로 민주정권을 수립한 직후인 1988년 국립필리핀대학교(UP,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총장 호세 아부에바 (Jose V. Abueva)가 제안해 이듬해부터 실시되었다.

국립필리핀대학교 입구에 있는 조각상. 이 대학교의 상징이다.
▲ UP oblation 국립필리핀대학교 입구에 있는 조각상. 이 대학교의 상징이다.
ⓒ 필리핀 인콰이어러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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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FAP는 등록금 지원, 성적장학금, 노동장학금으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것은 등록금 구간제 프로그램이다. 등록금 구간제의 목적은 등록금 및 각종 돈을 부담할 수 있느냐를 떠나 모든 학생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실제 교육비보다 훨씬 적은 돈을 내도록 한다. 더 매력적인 것은 이 제도로 등록금을 한 푼도 안 내는 학생들(전액 지원받는 학생들)이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학생들이 재학 기간 학비를 신경쓰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배려한다.

처음에 만들 때는 등록금 구간이 9개였다. 1그룹이 가장 낮은 소득 계층 출신이고 9그룹이 가장 높은 소득 계층이다. 9그룹은 당시 기준으로 연 소득 25만 페소 초과자들인데 이들은 전액 등록금을 낸다. 8그룹에서 6그룹은 등록금의 25%에서 75% 할인된 돈을 지불한다. 단 실험실습비나 기타 비용은 전액 지불한다.

5그룹은 등록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수업료는 물론 실험실습비와 기타 비용을 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4그룹에서 1그룹은 도대체 얼마를 낸다는 말인가?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그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교육비를 학교로부터 받고 다닌다. 용돈은 학기 중에만 지급되므로 연 10개월만 지급된다.

하지만 1그룹에서 4그룹에 해당하는 경제적 취약계층 출신 학생들은 또 다른 지원을 받는다. 먼저 매 학기 도서구입비로 500페소(1페소는 한국 돈으로 약 26원)를 받는다. 교통비도 받는데 이는 필리핀이 여러 섬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선박이용비, 장거리 버스비, 심지어 비행기 비용까지 포함된다. 숙박비도 받는데 기숙사 숙박 여부와 관계없이 받고 학기당 5개월씩 매월 받는다.

 STFAP 등록금 구간표 (단위: 페소)
ⓒ 이준호

시간이 지나면서 STFAP도 변했다. 내가 국립필리핀대학에 입학한 2009년 등록금 구간은 6개로 축소되었다. 물가상승으로 소득기준과 등록금 액수도 바뀌었다. 1그룹은 학점당 수업료를 1500 페소를 낸다. 이 비율은 점차 낮아져 4그룹은 학점당 300페소를 낸다. 5그룹은 수업료와 기타 비용이 면제되고 6그룹은 그와 더불어 학기당 12000페소를 생활비 명목으로 받는다. 

작년에 국립필리핀대학은 STFAP를 STS (사회적 등록금 시스템)으로 개명하고 변화된 상황에 맞게 여러 숫자들을 조정했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을 고려해 그룹의 가족 수입 기준을 높였고 그 결과 더 많은 학생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생활비 지급액도 월 2400페소에서 3500페소로 상향 조정하였다.

 국립필리핀대학교 인장
ⓒ 국립 필리핀 대학교
물론 사회적 등록금 지원 프로그램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일단 국립필리핀대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립필리핀대는 서울대처럼 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점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유피(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딜리만이 메트로 마닐라 내 퀘존시에 있고, 유피 마닐라·유피 로스바뇨스·유피 바기오·유피 비자야스·유피 세부·유피 민다나오 등 전국에 두루 퍼져 있다.

예전에 비해 경제적 취약계층에서 유피에 진학하는 비율이 낮아진 것도 아쉽다.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서 최상위권 대학에 자녀를 보내기가 쉽지 않아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유피는 1% 슈퍼 부자들보다는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 중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입학하고 있다. 슈퍼 부자들은 등록금이 몇 배 더 비싼 최고 사립대로 많이 진학한다.

모두를 위한 질 높은 교육

교육복지는 단지 돈이 많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못산다고 은근히 낮춰보던 필리핀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중산층과 서민에게 그들의 소득에 맞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장을 비롯해 책임있는 자리에 가고자 하는 정치인들에게, 그리고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나온 교육감 후보들에게 STFAP 안내문을 소개한다.

"국립필리핀대학교는 모두를 위한 질 높은 교육의 원칙을 지지한다. 만약 학생 여러분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국립 필리핀 대학교에서 학업에 제한을 받는다면 우리에게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 제발!"


태그:#반값등록금, #필리핀, #UP, #박원순, #STF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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