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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비정상의 정상화'와 '관피아 척결'을 가장 잘 해낼 인사로 발탁했던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받은 지 6일 만에 사퇴했다. 안 후보자의 낙마는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지난 2000년 이후 장상·장상환(김대중 정부)·김태호(이명박 정부)·김용준(박근혜 정부) 국무총리 후보자에 이어 다섯번째다.

특히 안대희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된 김용준 후보자처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사퇴해 청와대를 충격에 빠뜨렸다. 29일자 <한겨레>는 "안 후보자의 사퇴 기자회견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라고 침울한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1일 1000만 원 수임료로 '청빈검사' 이미지 훼손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후보직 사퇴 발표를 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 안대희 총리 후보 전격 사퇴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후보직 사퇴 발표를 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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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후보자는 28일 오후 5시 긴급기자회견에서 "늘 보이지 않은 힘이 됐던 가족들과 저를 믿고 사건을 의뢰한 의뢰인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는 것도 저로서는 너무 버겁다"라고 토로했다. 총리 후보직 사퇴의 요인으로 '가족'과 '의뢰인'을 지목한 것이다.

먼저 안 후보자가 공개기자회견에서 '의뢰인'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전관예우 수임료' 논란이 그에게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2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안 후보자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이후 5개월간 16억여 원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전관예수 수임료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가 받은 수임료 액수가 최소 20억 원 이상이라거나 27억 원에 이른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렇게 벌어들인 수임료로 서울 시내에 분양가 16억 원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산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로 인해 '청빈검사'나 '국민검사'로 불렸던 그의 이미지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는 그에게 '치욕'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안 후보자가 국무총리 후보자에 지명되기 직전(5월 19일)에 수임료의 일부(3억 원)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기부했고, 5억여 원에 이르는 수임료를 현금·수표로 찾아 의뢰인들에게 되돌려주려고 한 사실도 확인됐다. 야당에서는 "총리에 지명되기 위한 정치적 기부이고, 정치적 반환이다"라고 공세를 폈다.

이렇게 전관예우 고액 수임료 논란이 더욱 커지자 안 후보자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11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라고 발표했지만, 여론은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14억 원(기부 3억 원+사회환원 11억 원)으로 총리직을 사려 한다"는 치명적 비판에까지 직면했다. "신종 매관매직"이라는 야당의 비판은 잘 먹혀들었다. 보수언론들마저 '사퇴론'을 거론하며 등을 돌렸다. 새누리당의 분위기도 지명될 당시와 달랐다.    

야당의 칼날 검증이 부모-자녀에까지 미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자가 28일 전격 사퇴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28일 점심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임명동의안이 제출됐는데 무슨 사퇴냐? 표결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했다. 다만 이날 오전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인사청문사전검증팀 연석회의에서 "안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벽을 넘지 못할 것 같다"라며 낙마를 예상한 것처럼 발언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야당과 언론의 '칼날 검증'이 안 후보자 본인에서 '가족'으로까지 확대됐다. 안 후보자가 사퇴를 발표하기 전 장남의 병역 특혜 의혹이 나왔다. 의경으로 입대한 장남이 일선경찰서에서 본청 행정요원으로 발령난 과정에 당시 대법관이던 안 후보자가 '힘'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남의 병역 특혜 의혹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안 후보자는 이날 오후 5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사퇴를 발표했다. '의뢰인'과 함께 '가족'을 언급하며 "너무 버겁다"라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전관예우 수임료 등 본인에 한정돼 있던 칼날 검증이 장남 등 가족으로까지 번지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가족과 관련한 의혹들'까지 줄줄이 나올 경우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실제로 <오마이뉴스>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야당은 가족과 관련한 의혹들을 집중적으로 캐고 있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으로 내정된 배재정 의원은 '안 후보자가 사실상 부친으로부터 두 차례 주택을 증여받았지만 종합부동산세-증여세 납부를 회피했다'는 의혹이 담긴 보도자료(29일자)까지 준비해놓았다.

배재정 의원은 안 후보자가 25년 동안 살았다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소재 서강아파트 구입 비용도 부친으로부터 나왔다고 판단했다. 배 의원은 "이런 방식의 증여는 아마도 '청렴한 안대희'를 만들기 위한 부친과 본인의 치밀한 재산관리다"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부친의 주택 증여 의혹뿐만 아니라 ▲ 안 후보자의 위장전입(주민등록법 위반) 의혹 ▲ 아내와 자녀의 의문스러운 주소지 이전 의혹 ▲ 미성년자 자녀 증여 의혹 ▲ 20차례에 걸친 부모의 '이상 전입' 의혹 ▲ 88살 부친의 보유 재산 '0원' 의혹 ▲ 안 후보자의 보유 재산액을 줄이기 위한 모친의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 매매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었다. 그의 '위장된 청렴'에 중점을 둔 검증이었다.

왜 공적 경력으로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지려 하나?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끝내 낙마했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끝내 낙마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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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후보자의 전격 사퇴는 고시공부할 때 책상 앞에다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를 붙여뒀다는 '칼잡이'(특수통 검사를 이르는 은어)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퇴를 '칼잡이다운 선택'이라고만 평가하는 데 그치면 공허해진다.

안 후보자가 대법관에서 퇴임한 지 48일 만에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1일 1000만 원에 해당하는 수임료를 두고 "전관예우가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14억 원'을 주고라도 국무총리를 하겠다는 그의 모습은 한국 주류사회와 맞닿아 있다. 국민 세금으로 고위공직자의 경력을 쌓아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퇴임한 이후에는 그 공적인 경력을 이용해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지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난 26일 낸 논평에서 "국가가 입혀준  옷을 벗을 때에는 그 옷을 국가에 돌려주는 것이 공직자의 의무다"라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대법관까지 지낸 안 후보자에게 "그 옷을 국가에 돌려주는" 일이 1일 1000만 원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 개업은 아니였어야 했다.   


태그:#안대희, #국무총리, #전관예우 수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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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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