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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1일 오후 부산역광장에서 새누리당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눈물' 사진이 담긴 피켓을 100개 가까이 들고 나왔다. 이 피켓의 다른쪽은 서병수 후보 사진이 붙어 있다. 막판 총력 유세에 나선 서병수 후보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선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오후 부산역광장에서 새누리당 서병수 부산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눈물' 사진이 담긴 피켓을 100개 가까이 들고 나왔다. 이 피켓의 다른쪽은 서병수 후보 사진이 붙어 있다. 막판 총력 유세에 나선 서병수 후보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선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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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새누리당 쪽의 '박근혜 마케팅'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부산에서는 새누리당 선거운동원들이 서병수 후보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들고 선거운동에 나섰고, '박근혜 대통령 구하기'라는 문자 메시지가 카톡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대량으로 유포되고 있다.     

이에 뒤처질세라 정몽준 후보마저 '박근혜 마케팅'을 들고 나왔다. 그는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코엑스 피아노 분수광장에서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인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라며 "서울시장이 되면 박 대통령과 손잡고 서울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했던 정 후보의 선거유세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던 발언이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 '박심 논란'이 크게 일었다. 경선 동안 '박근혜 마케팅'에 의존했던 김황식 후보는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했다"라고까지 했다. 하도 '박심 논란'이 크게 일자 정 후보도 "대통령께서 국회에 오시기 전부터 일주일에 두어 번 테니스를 치고, 고깃집도 가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던 사이였다"라며 박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고 나서야 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껄끄러운 정 후보보다 무난한 김 후보를 선호한다"라는 얘기들이 많이 나돌았다. 그런 얘기들을 의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라고 말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 후보는 '박근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벌이지 않았다. 박심 논란이 일었던 경선 때도 그랬고,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박 대통령을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앞에 내세운 새누리당의 다른 후보들과는 퍽이나 다른 행보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후하게 평가하고..."

2012년 5월 15일 새누리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뒤편에 정몽준 전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2012년 5월 15일 새누리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뒤편에 정몽준 전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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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졌다시피 정 후보와 박 대통령은 장충초등학교 동창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서로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던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테니스'였다. 그는 지난 2011년 펴낸 자서전(<나의 도전 나의 열정>, 김영사)에서 "박 전 대표를 알게 된 것은 국회에 들어오기 전, 어느 테니스 모임에서였다"라며 "그 후로 여러 번 운동을 할 기회가 있었다, 테니스 모임 사람들과 여수 등지의 지방에 가기도 했고, 박 전 대표의 생일축하 자리에 초대받기도 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정 후보가 지난 2012년 대선출마를 염두에 두고 펴낸 그 자서전에는 두 사람의 '차가운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실려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얼굴을 붉힌 이유'라는 제목이 달린 장에서다. 당시 자신의 대권 경쟁자였던 박 대통령을 흠집내려는 의도가 엿보일 정도로 그 일화들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먼저 지난 2002년 9월 초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남북한 축구경기가 열렸을 때다. 박 대통령이 같은 해 5월 북한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한 축구팀의 남한 방문을 제안해 성사된 경기였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일'이 벌어졌다.

"상암동 경기장에 도착하니 (중략) 태극기를 든 사람들과 한반도기를 든 사람들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박 전 대표는 (중략) 나를 보더니 화난 얼굴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했다. (중략)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는 것이었다."(<나의 도전 나의 열정> 243쪽)

이날 박 대통령과 얼굴을 붉힌 일은 더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정 후보에게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느냐?"라고 항의했다. 축구를 시작하기 전 붉은 악마가 '대한민국'만을 외쳤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 후보는 자서전에 "훗날 박 전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약속을 잘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에 나는 약속을 잘 안지키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이 일화는 박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당시 강력한 대권경쟁자였던 박 대통령을 '색깔론'의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도가 언뜻 보인다.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또한 정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에도 '박 대통령과 얼굴을 붉힌 일'들이 일어났다. 그는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 박 대통령과 국회 커피숍에서 50분간 만났다. 회동을 끝내고 나오는데 기자들이 '박 전 대표가 10월 재보선을 도울 것인가?'를 물었다. 이에 "박 전 대표도 마음 속으로 우리 후보들이 잘 되기를 바라시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몇달 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적이 없다"라고 항의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나라당 당원이라면 누구든지 한나라당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더구나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라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따옴표를 붙여 본인의 말을 인용한 것도 아니고 나의 생각을 덧붙인 것인데 왜 화를 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를 내는 박 전 대표의 전화 속 목소리가 하도 커서, 같은 방에 있던 의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에 아주 민망했다."(241쪽)

박 대통령의 결벽증이 지나치다는 것을 꼬집는 일화로 읽힌다. 또한 박 대통령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정 후보의 또다른 발언을 걸고넘어졌다. 며칠 전 세종시 특위문제로 박 대통령과 통화한 뒤 한 회의석상에서 "박 전 대표가 제 특위 취지 설명에 '알았다'라고 말했다"라고 전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한 인사가 이를 언론에 전달했는데 박 대통령이 세종시 특위 구성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전후 사정을 따져보지도 않고 대뜸 '전화하기도 겁난다'면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오전 9시의 최고위원회의 직전인 데다 그만한 일로 싸울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좋게 넘어갔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통화 직후 이런 얘기를 본인이 직접 기자들에게 공개해버렸다. 졸지에 나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241쪽)

정몽준, 박근혜 정부 권력실세 김기춘과도 '악연'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근처에서 열린 거리유세에서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다.
▲ 미소 지은 정몽준 '기호 1번 입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근처에서 열린 거리유세에서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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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 후보와 박 대통령 사이에 이렇게 '차가운 강'이 흐른 데에는 정치적 이유도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당시 무소속이던 정 후보에게 동참을 요청했지만 그는 독자정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 그는 국민통합21 대표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박 대통령을 만났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만나는 내내 강신옥 변호사에 관해서만 얘기했다고 한다. 

정 후보는 국민통합21을 창당할 당시 강신옥 변호사를 창당기획단장으로 발탁했다. 그런데 강 변호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변론했던 인물이다. 그가 부친을 시해한 인물을 변론한 인사를 창당기획단장에 중용했으니 박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후 박 대통령은 그의 요청을 뿌리치고 한나라당에 복당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흥미롭게도 박근혜 정부의 '실세 중 실세'로 평가받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 후보도 악연이 있다. 지난 1992년 대선을 1주일 앞두고 부산의 초원복집에서 김기춘 당시 전 법무부 장관과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용 부산경찰청장 등이 모였다. 이날 회동에서는 "우리가 남이가", "다른 사람(김대중, 정주영)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부산·경남 사람들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등 불법 선거개입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이 나왔다.

정 후보의 부친이 창당한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이 전직 안전기획부 직원 등과 공모해 이를 도청한 뒤 언론에 폭로했다. 당시 통일국민당 소속 의원이었던 그는 초원복집사건을 불법도청한 실무자 3명에게 도피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그렇게 박 대통령과 악연인 정 후보가 선거 막바지에 '박근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일에 이어 2일 유세에서도 "이번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려는 사람과 박근혜 대통령을 망가뜨리려는 세력 간의 대결이다"라며 "우리가 열심히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고 서울을 지켜야 하겠죠?"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러한 변신은 기본적으로 정 후보의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전까지 10%p 안팎 차이로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뒤졌다. 그런데 박 후보 공격에만 몰두해온 그가 선거 막판에 '박근혜 카드'를 들고 나왔다. 물론 그렇게 위기감을 높여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려는 의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과연 '박근혜 마케팅'이 그를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을까?  


태그:#정몽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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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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