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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하는 이유로 흔히 동물·환경보호 등의 신념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요즘에는 건강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 고기 없는 월요일'(www.meatfreemonday.co.kr)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에는 채식을 하게 된 동기로 '건강상의 이유'를 선택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는 과거 '성인병'이라 불리던 생활습관병의 주요 원인이 동물성 식품으로 지목되고, 의료·영양학계가 채식에 동조하는 분위기로 변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변화에는 반동이 있게 마련이다. 한편에서는 채식의 이로움을 알리는 반면, 한편에서는 '채식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낸다. 채식주의를 '만병통치약'으로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채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정보를 접하면 채식을 계속해도 되는 건지 혼란스러워한다.

채식주의의 '방해자'들

채식주의 식품 피라미드
 채식주의 식품 피라미드
ⓒ Wanda Embar, Vega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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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배신>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쓴 리어 키스는 20년간의 채식으로 퇴행성 관절질환·저혈당증·위장기능 장애·구토증·우울증·척추손상 등의 병을 얻었다고 한다. 그녀는 "채식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건강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에는 키스가 채식을 하는 동안 무엇을 먹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독자는 아래 대목을 통해 그녀가 탄수화물에 치우친 식사를 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물론 다른 것은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니 그렇게 먹은 것은 모두 탄수화물이었고 (중략) 고기에 대한 금기가 너무 엄격해, 단백질을 먹고 싶은 감정마저도 거의 동족 살해와 맞먹는 끔찍한 범죄처럼 느껴졌다." (<채식의 배신>(리어 키스 지음·김희정 옮김·부키) 288쪽)

키스는 고기에 대한 금기가 지나친 나머지 단백질 섭취마저도 주저했다. 또한 죽음은 무조건 나쁘며, 채식주의자는 그 어떤 죽음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로서 식물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아가는 이른바 '호흡주의자'의 세계를 기웃거렸다.

이런 식으로는 몸이 버텨낼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고, 채식주의는 '무지에 근거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녀가 '무지'와 '신화'라고 부르는 것이 제대로 된 채식주의자는 납득하기 어려운 '극단주의'라는 것이다.

채식주의는 아무것도 죽이지 않는 경지가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실천'이다. 호흡주의자조차도 살생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다른 생명을 해치며 살아간다. 키스는 죽음을 무조건 거부하는 자신의 교조주의를 채식주의 전체의 논리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했다.

'육식만 안하면 채식주의'라는 논리대로라면 날마다 채식 라면만 먹고도 채식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채식을 한다며 하루에 과일 몇 쪽이나 샐러드만 먹다가 "기운이 없어서 채식을 관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채식주의는 극단적인 편식이나 절식이 아니다.

잘못된 식습관으로 생긴 문제의 원인을 채식주의로 돌리는 건 부당하다. 고기로 만든 정크 푸드(패스트푸드·인스턴트식품 등과 같이 열량은 높은데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식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를 주로 먹다가 건강이 나빠졌다고 해서 '육식 탓'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화면 갈무리
▲ "아기에게 채식강요하다 사망…부모는?"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화면 갈무리
ⓒ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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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의 책임을 채식주의로 돌리는 사례는 흔하다. 2011년 9월 13일자 <헤럴드경제>에는 "아기에게 채식강요하다 사망…부모는?"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어느 채식주의자 부부가 생후 6주 된 아들에게 두유와 사과주스만을 먹여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아기가 사망한 원인은 두유와 사과주스만 먹여 영양실조에 이르도록 방치한 부모의 무책임이다. 하지만 기사 제목은 원인을 채식주의로 돌렸다. 채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기사를 보고 채식주의가 건강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식단을 따르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기 쉽다. 아기에게 모유마저도 '동물성'이라는 이유로 먹이지 않는 부모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채식주의자를 가장한 광신도'일 뿐이다.

채식이 정말로 해롭다면 채식주의자는 전부 병에 걸려야 한다. 하지만 채식만으로도 아무 문제없이, 오히려 육식을 하는 사람들보다 건강하고 장수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이러한 산증인들을 무시한 채 채식주의가 건강에 해롭다고 주장하면 억울하다.

"햄버거 먹기 싫다"고 말했다가 소송까지?

오늘날 육식이 지닌 권력은 육식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곤 한다. 음식이 영양공급의 수단을 넘어 돈벌이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1996년 4월, 미국의 유명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 쇼>에 하워드 리먼이라는 사람이 출연했다. 전직 축산업자로서 공장식 축산이 동물·인간·환경에 미치는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육식을 그만둔 후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라는 책을 썼다. 그날 쇼에서 리먼은 광우병의 위험을 내포한 현대의 축산방식에 대해 이야기했고, 오프라 윈프리는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햄버거를 먹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어요!"라고 외쳤다.

미국의 쇠고기 업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수십만 달러 상당의 텔레비전 광고를 취소했다. 그리고 텍사스 주의 목축업자들은 윈프리와 리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윈프리와 리먼이 승리했지만, 이 사건은 대중매체에서 "고기를 먹지 말라"는 말을 듣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채식을 실천하는 의사들의 단체인 '베지닥터'는 올바른 채식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웹사이트 주소 www.vegedoctor.com
▲ '베지닥터' 채식을 실천하는 의사들의 단체인 '베지닥터'는 올바른 채식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웹사이트 주소 www.vegedoctor.com
ⓒ 베지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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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식을 다루는 방송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송은 육식과 채식 중 어느 한쪽의 우열을 가리는 이분법적인 구도에 갇혀있다. 이런 방식은 끝없는 논쟁을 야기할 뿐이다. 

비록 채식을 하고 있지만 나는 채식만이 만고의 진리,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건강이 오로지 먹는 것에만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채식주의자도 큰 병에 걸릴 수 있으며, 채식의 장점을 100가지 들 수 있다면 육식의 장점도 그만큼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물에게 평생 고통을 주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오늘날의 축산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고기를 주로 먹었던 구석기시대 인류가 건강했다는 사실을 들어 육식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비좁은 공간에서 곡물 사료·항생제·성장 호르몬으로 비정상적이고 고통스럽게 살찌워진 동물의 고기가 구석기시대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오늘날의 동물성 지방에는 각종 환경오염물질이 축적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과거의 고기와 같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송에서 이런 사실은 무시된다.

미국 최대 유기농·채식 전문 유통업체인 '홀푸드'의 최고경영자이자 채식주의자인 존 매케이는 채식주의를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육식은 동물을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육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채식만으로도 훨씬 건강해질 수 있다. 나는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그 어떤 주장으로도 논박할 수 없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채식전파의 메시지가 아닌가?


태그:#채식, #육식, #건강,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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