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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렸다. 6·4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혁신학교'로 상징되는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앵그리맘'의 표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혁신학교를 처음 도입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혁신학교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수도권 진보 교육감 당선자, 교육평론가, 혁신학교 교장, 혁신학교 졸업생 등에 대한 연쇄 인터뷰를 통해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할 교육 개혁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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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교사하던 시절은 양심을 일부 버려야만 승진이 가능했던 때라 아예 포기했어요. 결국 교장도 교감도 못 했는데, 이제와 교육감이 되고 보니 그만큼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진 것 같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학생·학부모·교사들을 모두 교육현장에서 직접 만났으니 잘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당선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은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현장에서 쌓은 경륜과 경험이 진정한 힘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지난번 선거에 1%p도 채 되지 않는 표차로 패배, 재도전 끝에 당선된 것 치고는 매우 차분하면서도 건조한 답변이었다.

12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한 식당에서 만난 이 당선인은 지난 2010년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당시 나근형 후보에게 0.3%p(3551표) 차이로 패했다. 낙선을 두고 그는 '와신상담(臥薪嘗膽: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딤)'이었다며 "아쉽게 패한 덕분에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 13개 시도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자 여당과 보수단체에서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 당선인은 이에 대해 "불순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일축했다. 그는 "진보건 보수건 유권자들에 의해 선택이 된 결과를 가지고 직선제 폐지 운운하는 것은 유권자들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의미"라고 평했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혁신학교 논란에 불을 붙였지만, 이 당선인은 오히려 "인천에는 혁신학교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에 내년부터 1년에 10개씩 혁신학교를 지정해 만들어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학교에서 추진하는 학력은 소수만 상위인 '사다리꼴'이 아니라, 뒤처지는 아이가 적은 '항아리형'"이라는 설명이다.

자율형 사립고에 대해서도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인과 생각이 좀 다르지만, 만나서 설득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사고가 공교육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 1%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99%를 위한 교육을 하는 게 왜 중요한지 등을 대화를 통해 풀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분하게 말을 잇던 이청연 당선인은 최근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으로 징계 압박을 받고 있는 교사들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울컥하기도 했다. 그는 "생각해보라, 한 학년 아이들이 물에 몽땅 빠져서 한 명도 구하지 못했는데 그걸 보고 울지 않는다면 그게 교사인가"라며 "교사 양심상 당연히 (정부가) 책임지라고 말할 수 있다, 저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아이들과 기타를 치며 놀곤 했다"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교육감이 되어 질문이 있는 교실, 교사들이 신나는 교실을 만들어가겠다"는 이청연 당선인. 이 당선인은 "공허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답을 찾아가며 구성원들과 함께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래는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과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은 유권자 우롱... 진보 교육감들도 잘 해야 한다"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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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0년 선거에서 안타깝게 낙선했다가 당선됐다. 당선 소감을 말해 달라.
"그때를 돌아보면 '와신상담'이라고 해야 하나.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하게 됐던 같다. 부족한 점 많은 제가 더 많은 준비 하라고 유권자들께서 통렬한 비판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 아닌가 싶다. 이번에 제가 뽑힌 건, 세월호 영향으로 변화의 요구가 커진 한편, 안타까운 차이로 떨어졌던 저에 대한 불쌍함도 있지 않았을까. (웃음)

사실 저는 평교사로 오래 근무했기 때문에 치열한 승진경쟁에 가까이 가보지 않은 사람이다. 당시엔 교사의 양심을 일정부분 버려야만 승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예 포기했었다. 그랬다가 이제 교육감이 되니, 남들이 볼 때는 마냥 기쁘게 보일지 모르지만 더 많은 책임이 주어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당히 무겁다. 하지만 30여 년의 교직생활 경험으로, 학생·학부모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들과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 인천지역은 10여 년 넘게 지속된 보수 교육감 시대를 마치고 최초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예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는 점은 뭘까.
"저는 일단 진보적 가치가 소중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이들 교육에 있어 보수·진보가 따로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가장 크게 바뀌는 것은 교직사회의 문화가 아닐까 싶다. 예전이 수직적이었다면 이제는 수평적으로, 교사들이 신나서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저는 학생들을 학교에 가둬놓고 늦게까지 공부만 시키는 게 해법은 아니라고 보고, 청소년 문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려 한다. 세월호가 남긴 교훈대로, '가만히 있으라'가 아니라 질문이 있는 교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해야하지?' 자꾸 궁금해 하고 답을 찾아내는 창의 교육을 만들어가겠다. 이 둘이 바뀌면 학력 신장과 인성 문제도 덩달아 함께 달라질 거다."

- 최근 새누리당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에서는 아예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교육감 직선제와 관련한 생각은 다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간 법으로 정해져서 이번이 두 번째로 시행한 것 아닌가. 부족한 게 있으면 보완하고 완성시키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감 선거가 관심이 적고, 유권자들이 잘 모르는 '깜깜이 선거'라는 게 큰 문제인데 이걸 더 널릴 알릴 방법을 정부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적절하지 않은 문제(직선제 폐지)를 제기하면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에는 오히려 불순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13개 지역에서 진보성향 교육감이 유권자들에 의해 선택이 됐는데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진보 교육감들도 앞으로 기대에 부응해 잘 해야겠지만, 이걸 그냥 폐지하자는 건 유권자를 무시하고 우롱하는 행위다."

"박근혜 정부, 누리과정 생색만... 중앙 정부가 재정 함께 부담해야"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
 이청연 인천교육감 당선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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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인은 초등학교까지 적용되는 무상급식을 단계별로 중·고등학교까지 확대하고, 의무교육도 확대해 수업비 부담을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상당히 많은 예산이 필요할 텐데.
"중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안 하는 곳은 인천과 대전뿐이다. 애들 밥 먹이는 문제는 보편적인 교육 복지를 시행하는 차원인 데도 그렇다.

현재 인천은 전체 교육재정인 2조 7천억 원 중에서 '경직성 경비'(지출이 미리 결정돼있어 정책수정 없이는 삭감이 어려운 경비)를 빼고는 가용재원이 3500억 정도뿐이다. 그래서 저는 인천 교육재정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회계를 명확히 분석해 사업을 통폐합할 건 하고, 버릴 것과 추진 할 것을 대략 나눠보니 총 440억 정도는 예산을 만들 수 있겠더라.

또 중앙 정부도 같이 부담을 해야 한다. 교육재정 중 예산 소요가 큰 게 박근혜 정부가 공약했던 3~5세 누리과정과 초등 돌봄교실이다. 정부는 하겠다고 생색만 낼뿐 나머지 예산은 다 지방정부가 부담하는데, 이걸 중앙에서 함께 부담해야 지방정부의 숨통이 좀 트인다. 법정기구인 전국 교육감협의회를 통해 교육부에 건의하고, 국회와도 협력을 하면 될 것이라 본다."

- 2015년부터 순차적으로 40여 개 초·중학교를 혁신학교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현재 인천시장으로 당선된 유정복 당선인과의 조율을 어떻게 해나갈지 말해달라.
"혁신학교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내는 새로운 공교육 모델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재 인천에는 하나도 없다. 혁신학교에서 추진하는 학력은 소수만 상위인 '사다리꼴'이 아니라, 뒤처지는 아이가 적은 '항아리형'이다. 올 하반기에 추진단을 구성, 내년부터 1년에 10개씩 혁신학교를 지정해 만들어가려 한다. 한 학교당 적게는 1억에서 많게는 2억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그리고 유 시장은 자율형 사립고에 대한 생각이 저와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만나서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자사고가 공교육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 1%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99%를 위한 교육을 하는 게 왜 중요한지 등을 대화를 통해 풀어갈 것이다. 인천 자사고는 개교 예정인 것까지 합쳐 총 2곳으로, 급격한 변화는 없겠지만 앞으로 엄격히 평가할 것이다."

- 세월호 관련해 시국선언을 한 교사들에 대해 교육부는 여전히 징계한다는 방침이다. 징계 압박과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해보라. 아이들이, 그것도 한 학년이 몽땅 물에 빠졌는데 정부나 해경이나 한 명도 건지지 못하고 죽었다. 그걸 보고 울지 않는다면 그게 제대로 된 교사인가. 교사는 당연히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하고, 교사의 양심상 당연히 그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할 수 있는 거다. 민주주의 시민의 소리고, 만약 제가 선생이었다면 저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들이 징계 운운하는 게 맞는가. 전 아니라고 본다."

- 지난달 30일 수도권 교육감들과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향후 이들과 어떤 식으로 연대할 것인가.
"(진보 교육감들이 당선된) 이번 선거 결과는 '한국 교육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전국민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져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진보 교육감들이 정말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도 정말 열심히 할 생각이다. 수도권 교육감들은 근접한 거리에 있으니 더 자주 소통해서 한국교육의 청사진을 만들어가도록 하겠다.

수도권 교육이 변하면 대한민국 교육도 변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교육정책, 국민들이 함께 손뼉치고 지지할 만한 한국 교육의 새로운 그림들을 설계해나가겠다. 저 또한 사심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인천교육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전력투구할 자세가 돼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전망이 밝다고 본다."


태그:#이청연, #인천교육감, #세월호 침몰사고, #인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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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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