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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교수와 시인학교 수강생들이 최명희 문학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음
▲ 최명희 문학관 앞에서 허형만 교수와 시인학교 수강생들이 최명희 문학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음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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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세월호 참사로 미뤄왔던 순천 시인학교 2014년 봄 문학기행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다. 전주 완산구 풍남동 한옥 마을 가운데 위치한 최명희 문학관과 부안 선은리에 위치한 신석정 문학관 두 곳을 하루 동안 둘러보는 다소 벅찬 일정이었지만 언제나 문학기행은 마음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을 잘못 안 일행으로 인해 당초 출발 시간 30분을 초과한 오전 9시 30분 무렵에서야 전주로 향했다. 전주 최명희 문학관은 몇 해 전 겨울에 갔던 곳으로 가는 내내 단발머리 최명희 작가의 얼굴과 사각 유리 상자 속 '혼불' 1만 2000여 장의 육필원고가 아른거렸다.

최명희의 단발머리가 인상적임
▲ 최명희의 사진들 최명희의 단발머리가 인상적임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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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30분 무렵, 전주 한옥집에 들려 전주비빔밥으로 시장기를 달랜 후 최명희 문학관으로 향했다. 잔디 사이로 군데군데 흙이 엿보이던 처음 방문 때와 달리 정원의 잔디와 나무들이 제법 자라 운치를 더했다.

문학관 실내인 독락재로 들어서니 최명희의 삶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는데 1981년 동아일보 장편 공모전 당선작인 <혼불> 제1부가 발간된 당시의 모습 그대로 다소곳하게 놓여 있고, 본인의 저작에 서명한 깔끔한 글귀와 생전에 쓰던 만년필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마치 최명희 작가를 직접 만난 듯 반가웠다.

<혼불>은 일제강점기인 1930~194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한 유서 깊은 가문 '매안 이씨' 문중에서 무너져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는 종부(宗婦)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로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켜나간 양반사회의 기품,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하소설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혼불을 쓰게 하는가'

유리 너머로 도드라져 보이는 글귀가 손가락으로 판각하듯 꼼꼼하게 <혼불>을 써 내려가야만 했던 최명희 작가의 혼신을 다한 열정이 전해와 가슴이 먹먹하였다.

'혼불'집필시 육필로 쓰던 만년필도 보인다.
▲ 최명희 작가의 생전의 애장품 '혼불'집필시 육필로 쓰던 만년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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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작가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우리말을 갈고 닦아 사용한 작가가 또 있을까?'

일생을 소설 <혼불>의 집필에 매달렸던, 수공(手工)의 작가 최명희를 떠올리며 최명희 문학관을 나서 풍남동 생가터를 걸었다. 문득 <혼불>의 작가 후기 중에 있는 글귀가 떠올랐다.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병마와 시달리면서도 손가락으로 바위에 글을 새기듯 1만2000장의 혼필 원고를 육필해야 하는 각고의 시간을 생각하니 가슴 언저리에 통증마저 느껴졌다.

오후 1시, 최명희 문학관을 나와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로 유명한 신석정 문학관으로 가기 위해 부안으로 향하는 동안 <혼불> 후기 구절이 뇌리를 맴돌며 쉬운 글쓰기에 익숙해진 나태를 질책하였다.

석정 문학관 앞에서 허형만 시인, 조세호 관장, 순천시인학교 수강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 석정문학관 앞에서 기념사진 석정 문학관 앞에서 허형만 시인, 조세호 관장, 순천시인학교 수강생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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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꽃이 연보라로 피어 그 내음을 흩뿌리며 목가적인 풍광을 전하는 산을 배경으로 한도로를 따라 오후 2시 30분에 도착한 부안 석정 문학관은 회색 자연 건출물로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세미나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은은한 갈색 조명이 켜진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은 석정의 문학세계, 시인의 지인 관계, 촛불을 비롯한 대표시집, 유고시집, 시인의 서재, 시 정신과 참여의 방향, 시인의 작품 연보, 생전 애장품 등이 문학관 벽면을 따라 전시되어 있었다.

신석정의 애장품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음
▲ 신석정의 애장품 신석정의 애장품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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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하고 있는 신석정 시인의 모습에서 차라리 푸른 대나무의 심장을 본다.
▲ 석정의 집필 모습 집필하고 있는 신석정 시인의 모습에서 차라리 푸른 대나무의 심장을 본다.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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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부안에서 태어난 신석정 시인은 1924년 11월 24일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했다는 것, 그리고 청구원에서 첫 시집 <촛불>(1939년)에 이어 <슬픈 목가>(1947년)를 펴낸 사실, 박용철, 정지용, 김영랑, 김기림 등과 교류를 가지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펼쳤다는 것 등을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장을 따라 돌다보니 한결 신석정 시인의 세계가 도드라져 다가왔다. 

특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통해 도가적 자연사상과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내보이는 한편 <방> 또는 <소년을 위한 목가> 등을 통해서는 일제를 겨냥해 시인이 단순한 목가시인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 등을 속속들이 전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저 의연한 산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의 마음을 배우자."

상설전시장 벽면에 쓰여진 시인의 좌우명이나 다름없는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 같은 마음가짐으로 자연과 시대적 아픔을 시로 담아낸 한국대표 민족시인 신석정은 일생을 오로지 시 창작에만 몰두하였다는 것과 창씨개명을 거부하기 위하여 생계를 꾸려야 할 교직도 버리고 군 징집의 위협에 한동안 잠적할 정도로 일제에 저항적이었다는 전해 들었다.

문학관을 나서려는데 달별로 수록한 '신석정, 시와 빛나는 세월'이라는 달력 시집이 눈에 띄어 기부형식으로 한 권 사서 펼쳐 보았다. 여러 시편 중 첫 장 1월에 수록된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의 마지막 단락이 한동안 내 시선을 붙들었다.

난(蘭)아
푸른 대가 무성한 이 언덕에 앉아서
너는 노래를 불러도 좋고 새 같이 지줄대도 좋다
지치도록 말이 없는 이 오랜 날을 지니고
벙어리처럼 목 놓아 울 수도 없는 너의 아버지 나는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내 심장을 삼으리라

신석정 시인이 문예지에 투고한 작품이 사상불온으로 검열에서 삭제되고 일문으로 시 쓰기를 청탁받았으나 '차라리 푸른 대로' 살기 위하여 아예 붓을 꺾을 정도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는 해설사의 설명대로 일제강점기의 문학 활동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4시 조금 넘어서야 석정 문학관을 나와 신석정의 목가적인 시의 모태가 된 채석강을 들려 그 감흥을 되새기려 했으나 밀물인 관계로 쌓인 절경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차창으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새만금 벌판이 눈에 들어왔다. 부안의 산을 다 퍼도 채울 수 없는 새만금에 새로이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신석정 시인 역시 슬픔이 끊이지 않는 어둠인 일제 압박 속에서도 저처럼 새로이 도래하는 생명을 노래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나태가 느껴져 부끄러웠다.

특히 이번 순천 시인학교 봄 문학기행은 최명희, 신석정 두 문학 기행을 하다 보니 천천히 훑어보며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되새기는 것보다 시간에 쫓기듯 문화해설사에 의존한 작가 엿보기에 그쳐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최명희 작가의 혼이 깃든 시공간 문학관에서는 바위에 새기듯 혼신을 다한 작품 쓰기를 가르쳐 주었고 석정 문학관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대나무 같은 역사와 자연을 품은 시인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귀한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순천투데이도 게재



태그:#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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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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