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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동계곡 함박꽃. 목란이라 부르기도 하며 북한의 국화다
 천불동계곡 함박꽃. 목란이라 부르기도 하며 북한의 국화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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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설악기행>에서 설악산을 "골짜기 속에 숨어 있는 절세미인"이라고 기록했다. 비선대를 지나니 과연 육당의 기행문에 어울리는 풍경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강산은 너무나 현로(顯露)하여서 마치 노방(路傍)에서 술 파는 색시같이 아무나 손을 잡게 아쉬움이 있음에 비하여 설악산은 절세의 미인이 그윽한 골속에 있으되 고운 양자(樣姿)는 물 속의 고기를 놀래고, 맑은 소리는 하늘의 구름을 멈추게 하는 듯한 뜻이 있어서 참으로 산수풍경의 지극한 취미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금강보다도 설악에서 그 구하는 바를 비로소 만족케 할 것입니다." (최남선, 조의 산수, 육당최남선 강연집(1) 중에서).

절세 미인이 그윽한 골속에 있는 듯 아름다운 설악산 천불동계곡
 절세 미인이 그윽한 골속에 있는 듯 아름다운 설악산 천불동계곡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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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한 기암계곡 속에 거울처럼 맑은 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푸르고 푸른 골짜기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처럼 청아하고 아름다운 함박꽃이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고 절세미인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에는 설악산은 금강산에 치여 그 빼어남을 미처 자랑할 수 없었다. 그 중에 가장 큰 요인이 지리적인 요인이었다. 그 당시 설악산은 첩첩산중에 가려 별로 찾는 이도 없고, 깊은 계곡과 암벽을 타고 가야만 하는 험한 길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천불동계곡의 기암괴석
 병풍처럼 둘러쳐진 천불동계곡의 기암괴석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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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8월 한국산악회 조사대가 설악산을 답사한 이후 일반인의 발길이 닫기 시작하여, 1956년 1월 슈타인만 클럽이 겨울 천불동을 스키로 등반했다. 그 후 1964년 병풍바위와 양폭 암벽에 나무사다리를 놓고, 천당폭포 밑에 출렁다리와 나무사다리를 설치하고서야 천불동계곡의 길이 일반인에게도 열렸다.

그러나 1969년 2월, 히말라야 원정대가 '죽음의 계곡'에서 등반 훈련 중 눈사태에 매몰되는 슬픈 '10동지 조난사고'가 발생했다. 죽음의 계곡 막영지에서 야영을 하며 취침을 하던 중 눈사태를 당해 10명 전원이 사망하는 조난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죽음의 계곡이 천불동계곡에 속하는 희운각 왼쪽에 있다.

천불동계곡 하늘을 찌르는 침봉. 천불동계곡은 1964년에 나무사다리와 구름다리를 놓고서야 일반인에게 길이 뚫렸다.
 천불동계곡 하늘을 찌르는 침봉. 천불동계곡은 1964년에 나무사다리와 구름다리를 놓고서야 일반인에게 길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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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계곡과 암벽 곳곳에 철 계단과 구름다리를 설치돼 수많은 사람이 무리없이 천불동계곡을 거쳐 대청봉을 오른다. 천불동계곡은 명실 공히 설악산을 대표하는 명승지다. 

설악산 국립공원에 의하면 매년 설악산을 찾는 사람은 약 335만 명이다. 그 중 천불동계곡으로 오르는 소공원 방향을 찾는 방문객이 217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2013년 기준)

설악산을 오르는 탐방객이라면 험한 계곡과 암벽에 길을 개척하다 희생된 이들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있다. 지정된 탐방로를 통해 오르고 자연을 훼손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무너진 병풍교 철계단
 무너진 병풍교 철계단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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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대를 넘어서자 무선 안테나 같은 뾰쪽한 기암괴석 침봉이 절경을 이루고, 면경처럼 맑고 푸른 담(潭)이 내 마음 속까지 훤히 비추어 주고 있다. 맑은 담 주변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처럼 함박꽃이 다소곳이 고개를 수그리고 수줍은 듯 피어 있다.

눈이 시리도록 말고 푸른 물빛
 눈이 시리도록 말고 푸른 물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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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저렇게도 고귀하고 아름답게 피어 있을까? 깊은 산골짜기, 무성한 숲 속, 휘휘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사이에서 희고 고운 꽃송이가 수줍은 산골처녀처럼 부끄러운 듯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지나가는 길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천불동계곡 함박꽃
 천불동계곡 함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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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바스락거리며 숨바꼭질 하듯 가렸다가 나타나곤 하는 순백의 함박꽃의 미소! 여섯 장 꽃잎 안에 있는 자줏빛 수술은 마치 립스틱을 바른 여인의 입술처럼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그 가운데 돌출한 연한 황색 암술은 최종 마침표가 되어 함박꽃의 매력을 더해 준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로 높이가 10미터를 채 넘지 않는다. 잔가지가 우산살처럼 아래로 늘어지는 유연성은 난초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목란이라고 부른다. 나무에 피는 난초라는 뜻이다.

함박꽃이 하얀 소복을 입은 듯 피어나 있다.
 함박꽃이 하얀 소복을 입은 듯 피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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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가지가 우산처럼 휘휘 늘어지는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해 목란이라고도 한다.
 잔가지가 우산처럼 휘휘 늘어지는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해 목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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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김일성이 북한의 국화(國花)를 진달래에서 목란으로 바꾸었을까. 목란이 북한에서 국화로 지정된 것은 김일성이 지난 1991년 4월 10일 "목란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롭고 생활력이 있기 때문에 꽃 가운데서 왕"이라며 국화로 삼을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함박꽃 사이사이에는 쪽동백 꽃이 눈꽃처럼 휘날리며 지고 있다. 다섯 개의 하얀 꽃잎 속에 노란 꽃술이 귀엽게 머리를 내밀고 있다. 때죽나무과의 쪽동백은 꽃이 무리지어 핀다. 꽃도 때죽나무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잎이 때죽나무에 비해 훨씬 넓적하다. 바람이 불자 쪽동백 꽃잎이 함박눈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천불동계곡 쪽동백
 천불동계곡 쪽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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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동계곡 쪽동백
 천불동계곡 쪽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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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동계곡 쪽동백. 때죽나뭇과 속하는 꽃으로 무리지어 피어난다.
 천불동계곡 쪽동백. 때죽나뭇과 속하는 꽃으로 무리지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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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담 물은 어찌 이리 맑을까? 문수담 속에 비추이는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른 문수담에 몸을 담그면 지혜의 샘이 솟아날까?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여기서 목욕했다고 하여 문수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정말, 풍덩~ 빠지고 싶은데…."
"속살이 훤히 비치는군."

설악산 문수담
 설악산 문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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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 꽃잎을 밟으며 함박꽃 미소에 홀려 계곡을 지쳐 올라가는데, 도깨비처럼 머리에 뿔이 난 무시무시하게 생긴 바위가 나타났다. 안내판을 보니 귀신바위란다.

"이크! 꼭 도깨비 모습 같아."
"정말 머리에 뿔이 났네!"

10여 년 전 금강산 만물상을 오를 때 귀면암을 본적이 있는데, 설악산 귀면암도 금강산 귀면암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모습 또한 금강산 귀면암을 닮았다. 이마에 불쑥 튀어나온 모습이 정말 도깨비 뿔처럼 보인다. 사찰 입구 일주문을 지키는 사대천왕같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귀면암. 이마에 뿔이 난 도깨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귀면암. 이마에 뿔이 난 도깨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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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동계곡 귀면암은 금강산 귀면암과 비슷하며, 그 이름도 금강산 귀면암에서 따왔다.
 천불동계곡 귀면암은 금강산 귀면암과 비슷하며, 그 이름도 금강산 귀면암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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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면암은 설악산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귀면암에 내려온 전설에 의하면 옛날 신선이 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산을 보고 그곳을 찾아 내려왔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이 절경을 이룬 천불동계곡에 도착한 신선은 설악산 풍경에 감탄하고는 천불동계곡 입구에 우뚝 서 있는 귀면암을 영원히 설악산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원래 귀면암은 천불동계곡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겉문다지' 또는 '겉문당'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금강산 귀면암과 비슷하다 하여 귀면암이라고 바꾸어 부른다고 한다.

"저 귀신바위님께 잘 보여야 오늘 무사히 대청봉에 오르겠는데."
"그럼 합장 배례를 하고 가야겠네?"

시루떡처럼 생긴 괴상한 바위
 시루떡처럼 생긴 괴상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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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천불동계곡 수문장인 귀면암에 합장배례하고 가파른 계곡을 올랐다. 계곡 좌우에 늘어 서 있는 바위의 모습은 참으로 기기묘묘하다. 시루떡을 엎어 놓은 것 같은 바위가 있는가 하면, 무소의 뿔처럼 생긴 바위도 있다. 

"아, 저 바위는 꼭 양파처럼 생겼네!"
"흐음, 내 눈엔 이슬람사원 지붕처럼 보이는군."

양파처럼 생긴 암봉
 양파처럼 생긴 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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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천불동계곡엔 일천 개의 불상이 모여 있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다. 양쪽에 늘어선 기기묘묘한 침봉들과 계곡 주변에 핀 야생화는 시종일관 정신을 아찔하게 한다. 

이윽고, 병풍교에 다다르니 오금이 저린다. 깎아지른 암벽에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곧 추락을 할 것처럼 위험천만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낙석위험>이란 표지판이 딱 맞는 말이다.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낙석위험>이란 표지판. 2007년 거대한 낙석이 떨어져 내려 병풍교가 박살이 났다.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낙석위험>이란 표지판. 2007년 거대한 낙석이 떨어져 내려 병풍교가 박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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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풍교는 2007년 2월 24일 대형 낙석으로 붕괴해 40여 일간의 복구공사 끝에 다시 재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병풍교 지역을 지날 때에는 주변을 잘 살피며 낙석을 조심해야 한다.

병풍교를 지나니 다시 소복을 입은 함박꽃이 고개를 수그린 채 슬픈 표정을 지으며 시들어 가고 있다. 죽음의 계곡에서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것일까?

10동지의 넋을 위로 하듯 피어난 천불동계곡 함박꽃 피고 지고 있다.
 10동지의 넋을 위로 하듯 피어난 천불동계곡 함박꽃 피고 지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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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을 채 피우지도 못하고 산화한 10동지의 영혼이 함박꽃으로 다시 피어났을까? 꽃이 피고 지듯 인생도 피고 진다. 히말라야를 트레킹을 해본 사람은 눈 속에 묻힌 산의 매력을 이해할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나 역시 히말라야의 매력에 끌려 몇 차례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오기도 했다.

거기에 산이 있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 나는 히말라야 원정을 위해 훈련을 하던 중 눈 속에 갇혀 산화한 10동지의 영혼을 위해 함박꽃 밑에서 고개를 수그린 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대청봉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태그:#설악산 귀면암 , #설악산 기행, #최남선 설악기행, #10동지 죽음, #천불동계곡 함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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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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