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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철 원주시 부시장. 37년간의 공직생활 소회를 말하고 있다.
 최광철 원주시 부시장. 37년간의 공직생활 소회를 말하고 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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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퇴임행사를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얼마 전 최광철 원주시 부시장으로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초청장을 한통 받았다. 37년간의 공직생활,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북 콘서트를 연다는 내용이다. 1부 연극관람, 2부 북 콘서트. 2시간 30여분 소요되는 행사다. 화천에서 원주까지 오가는 시간을 합하면 6시간여 걸린다. 섣불리 가겠다고 말한다는 건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참석여부에 대한 고민은 그리 오래하지 않았다. 말단인 나를 이토록 정중히 초청을 했는데, 참석하는 게 도리인 듯 했다.

카메오 등장, 당혹스러워 웃었다

카메오로 등장한 부시장
 카메오로 등장한 부시장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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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기막힌 꼼수'. 내용은 정리해고 당한 한 가장이 부인에게 그 사실을 감추고 돈을 벌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하는 내용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고, 영국의 복지병을 풍자한 이야기란다. 왜 이 연극을 퇴임행사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는지 몰랐다. 그저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 여겼다.

연극에 몰두하던 중 200여 명의 관객들은 일순 한꺼번에 환호를 질렀다. 느닷없이 부시장이 카메오로 등장한 거다. 엉뚱한 대사 몇 마디하고는 퇴장하는 그의 역할이 엉뚱하기도 했거니와 뜻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찬에 이어진 북콘서트는 오프닝 공연을 비롯해 축하공연,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됐다. 문학인, 방송인, 상인,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 등 참석자들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다.

순간 그 자리가 참 어색하다고 생각했던 건 내 머리에 잠재된 격식 때문이겠다. 공무원 관련 행사는 보통 식순에 의해 국민의례 등 사회자의 딱딱한 멘트로 진행된다. 참석자들 또한 시장, 의장, 각급 단체장들 일색이다. 권위 있는 사람들 참석에 따라 자신의 가치도 따라 올라간다는 생각들 때문이겠다.

특히 공직자 퇴임행사는 꽃다발 증정도 빼 놓지 않는다. 주인공의 울먹이는 공직생활 중 소회를 듣는 순서도 행사 중 중요한 순서다.

그런데 이 행사엔 그런 게 없다. 음악공연과 토크쇼 등 말 그대로 축하 분위기다. 연극 중 카메오로 등장할 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난생처음 서평기사를 썼다  

최광철 부시장의 부인(좌), 어머님(가운데), 딸(우측)
 최광철 부시장의 부인(좌), 어머님(가운데), 딸(우측)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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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의 공직생활을 수기형식으로 집필한 그의 저서명은 '수상한 부시장'이다([서평] 최광철 원주시 부시장의 <수상한 부시장>). 대체 뭐가 수상한지 두 번이나 정독했다. 내용이 남달리 가슴에 와 닿았던 건, 그가 살아온 환경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겠다. 어린 시절 중학교 교복 입은 또래의 친구들이 부러웠고,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아이들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공부를 시키지 못한 것이 무슨 죄인양 가슴 아파하는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에선 한쪽 가슴이 아려오기까지 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이상이 높았던 반면, 난 현실안주자였던것 같다. 9급 공무원 시작으로 일정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8급을 거쳐 7급으로 승진할 수도 있는데도 그는 7급 공채 시험으로 자신을 평가했다. 내무부(지금의 안전행정부) 시절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교 과정을 이수했고, 학위 취득 또한 독학으로 이뤘다.

"신상명세서를 작성할 때 학력 란을 쓰는 게 최고의 고역이었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떳떳하게 대졸 이라고 기록하고 싶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그런 그가 2008년 화천군 부군수로 발령을 받았다. 직원들과 모여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노닥거리는 그가 참 별나 보였다. 그때까지 내가 보아 온 부군수는 근접하기 부담이 될 정도로 권위적인 사람들이었고, 직원들과는 늘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 왔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소통, 구호가 아닌 실천이다

퇴임행사 및 북콘서트
 퇴임행사 및 북콘서트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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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 제멋대로 자란 갈대를 가꿔 개울물 정화도 하고 소 먹이로도 쓰자' 라든가 '산국을 심어 꽃동산을 만들자' 라는 시책은 직원들 입장에선 사실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휴일에도 나와 갈대를 베고, 꽃모종도 심었던 건 그가 몸소 보인 실천 그리고 직원들과의 소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자전거타기 붐 조성을 목적으로 DMZ전국 자전거 대회를 유치했던 것이 지금은 권위 있는 국내 최고의 대회가 되었으며, 산소길을 만든 것은 해마다 관광객 수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그가 강원도청 문화관광체육국장을 거쳐 지난해 원주시 부시장으로 임명됐다. '1년이란 짧은 기간 무엇을 했겠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퇴임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참석자 면면을 보니 서민들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시정을 펼쳐온 거다.

토크 콘서트에서 "퇴직 후 무엇을 할거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부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100일간의 유럽투어를 떠난다'는 말을 꺼냈다. 젊은 사람들도 결정하기 힘든 낯선 나라 자전거 여행, 나 같으면 가당치도 않겠다. 멋진 그의 앞날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최광철, #원주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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