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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저녁 서울공항에 도착, 김기춘 비서실장 등과 함께 공항을 나서고 있다.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저녁 서울공항에 도착, 김기춘 비서실장 등과 함께 공항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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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바로 잡기 위해 국가를 개조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 정부여당은 국무총리, 여당 대표까지 나서며 확장된 주장을 폈다.

특히 대통령으로부터 재신임을 받고 의욕적인 활동을 해온 정홍원 국무총리는 8일 "민간 각계가 폭넓게 참여하는 국무총리 소속의 가칭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해 민·관 합동 추진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주창해온 국가개조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국가개조는 일본 우익의 용어

첫째, '국가개조'는 헌법과 민주주의 원리를 벗어난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국민을 개조하겠다는 과거의 낡은 프레임은 국정운영 기조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원리인 국민주권, 재민주권에 역행하는 발상으로 헌법규정에도 벗어나는 것이다. 헌법과 국민주권을 부정하는 것은 왕조시대나 군사독재시대, 개발독재시대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나 볼 수 있는 인식이다.

국가는 사전적 의미로 영토(국가 영역)와 국민(국가의 구성원)과 주권(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의 권력)이라는 3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결국 국가개조는 주권을 가진 국민을 개조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가르쳐야 한다'는 발상은 1970~1980년대 국가동원체제의 지도자를 이상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체제의 산물이다.

개조대상은 주권자인 국민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된 패러다임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내 비서실장 등 핵심측근들이 오히려 개조대상인 것이다.

둘째, 국가개조라는 '용어 선택'의 부적절성 문제다. 국가개조는 일본 우익과 국가주의자들의 용어다. 일본의 '국사대사전'(길천홍문관, 1985년)과 '최신우익사전'(호리 유키오, 2006년)에는 '국가개조'와 관련해 "일본 파시즘 운동가의 용어로 '혁명'이라는 단어를 기피하고 '유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았지만 '국가개조'도 거의 같은 의미였다. 1930년대에 일어난 국가주의 운동의 하나를 국가개조운동이라 말하며 테러리즘, 쿠데타로 표현됐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개조'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는 무사유의 용어선택은 일제의 군국주의자의 인식구조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사고가 우리의 군사개발 독재시대에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그러한 일제의 식민사관의 인식구조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체에 심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국가개조는 민족 열등론의 근거로 작용

셋째, 개조론 기원은 일본의 근대화와 군국주의에서 출발해 지금도 일본 우익들에게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은 19세기 메이지 유신과 후발산업화 과정에서 위로부터 개혁을 추진하며 중앙 통일 권력을 확립했다.

이 당시 구미 열강을 따라 잡기 위해 학제, 징병령, 조세개편 등을 하며 부국강병의 기치 하에 구미 근대국가를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구식 민주화와 인권의 가치는 도외시하고 천황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모험주의를 강화해 군국주의로 가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일본의 국가개조운동은 군국주의자 기타 잇키(1883-1937)의 저서 <국가 개조안 원리 대강>(1919년)에 처음 등장한다(이후 <일본 개조법안 대강>(1923년)으로 재출판되었다). 이 저서는 1936년 2월 26일 정변을 일으킨 일본의 국가주의 청년장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다시 개조론은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열도 개조론'으로 발전하며 일본열도를 고속교통망(고속도로, 신깐센, 공항, 항만)으로 연결함으로써 균형발전을 추진하는 정책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일본열도개조론은 1973년 일본 전국 각지의 땅값 폭등과 물가급등이 발생하고, 1974년 다나카 수상이 록히드 뇌물사건으로 체포됨과 동시에 그가 추진하던 일본개조사업은 부실화되어 폐지되었다.

이후 1993년 오자와 이치로가 38년의 자민당 일당지배 종식을 주도하며 '일본개조계획'을 내세웠다. 개인은 집단에 자신을 매몰시킨 대가로 집단으로부터 생활과 안전을 보장받는 '일본형 민주주의의 종식'을 선언하고 일본을 재생시키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그러나 국외정책으로는 미일안보체제 유지, 자위대 재편, 일본의 적극적 유엔활동 참여와 역할 강화로 군사대국화를 위한 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팽창전략은 중일간 군사적 갈등 초래 등 상호긴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넷째, 일제의 국가개조는 일제 강점기에 민족개조론으로 발전하며 민족열등론을 주장하는 근거로 작용되었다. 춘원 이광수는 1922년 월간지 개벽 5월에 장문의 '민족개조론'이란 글을 발표한다. 조선민족의 쇠퇴원인이 '조선인 모두의 도덕적 쇠퇴'에 연유한다며 민족의식 개조의 8개 조목으로 의식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민족개조의 방향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보다 '타락한 민족성'이 민족을 쇠락하게 한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적자생존과 우열승패의 진화론적 인식론과 힘의 논리만을 인정하여 일제침략의 정당성을 강화시켰다. 내부의 도덕적 모순이 민족쇠퇴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몰역사적인 것이다.

지금도 "조선은 게으르고 일본 식민지배는 정당하다"는 발언을 한 사람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하는 것이 현 정부의 인식이다. 이러한 행태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벤저민 프랭클린 "집권자는 종이며 인민이 권력을 가진다"

넷째, 헌법 제66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행정수반인 대통령은 공직 사회를 개혁하고 정책집행을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현대사회는 조직사회다(Simon, 관료제)'라는 명제를 벗어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따라서 행정수반인 대통령은 개혁도 관료와 함께, 정책추진도 관료와 함께해야 하는 이중적 딜레마(dual dilemma)에 처해 있지만 이것 또한 극복하는 것이 능력이다.

따라서 공직사회 즉 관료사회의 정책 효율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관료의 자발성 자극'(당근, 인센티브, 동기부여 수단 등), 또는  강제적 수단 활용으로 '관료의 강제적 자극'(채찍, 평가, 신상필벌 등)을 통해 정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능력인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국민, 공직사회, 시민'을 '개조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문제는 국가적인 불행이 될 수 있다. 공직사회를 적폐라며 전면 부정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행정수반인 '대통령 책무를 회피'하는 것과 같다.

국가지도자는 국민, 영토, 주권(정부)이라는 국가의 세 가지 구성요소 중에서 국민들의 창의적인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헌법가치인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존중하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민공동체 인식'과 '상생원리' 하에서 국민통합 우선 정책과 시민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국정운영철학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의 힘(국력)은 모든 사회적 자본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총체적으로 집중하고 구조화할 때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을 뜻을 받들며 국가사회를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국민을 개조대상으로 보는 권력핵심들은 국가개조 남용을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꾸겠다는 국가개조론을 철회해야 한다. 대통령은 현대 민주주의 원리인 국민주권을 지키고 헌법에 충실하길 바란다. 특히 벤저민 프랭클린이 "자유정부에서 집권자는 종이며 인민이 집권자의 주가 되고 권력을 가진다"고 주장한 것을 상기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현 기자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입니다.



태그:#국가개조론, #박근혜,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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