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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가의 호박.
 연못 가의 호박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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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우러러보이는
장엄한 얼굴
    -이상옥의 디카시 <늙어가는 호박>

어제는 들녘 석양 길을 걸으며 마치 칸트라도 되는 양 상념에 잠겼다. 요즘 시골 들녘은 벼들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란다. 7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벼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여름의 뜨거운 생명성을 느낀다.

김열규 교수님이 작고하신 지도 여러 달이 훌쩍 흘러가고 말았다. 김 교수님은 서강대에서 교수직을 버리고 고향 고성 송천리 바닷가로 옮기셔서 처음 의욕적으로 고성문화사랑 모임을 만들고 지역 문화 운동을 벌이기도 하셨는데, 그때가 거의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운동에 나도 같이 참여하여 여러 번 문화 강좌에 동참했던 기억이 난다.

김열규 교수님은 생전에 고성에서 더욱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셨는데, 그중에 인상 깊은 것이 <노년의 즐거움>이라는 책이다. 여기서 그는 삶의 노숙과 노련함으로 무장한 노년이야 말로 청춘을 뛰어 넘는 가능성의 시기며, 가슴 뛰는 생의 시작이라 했고 또한 위인들의 초상화가 노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제시하며 노년기야 말로 인생의 황금기임을 드러내었다.   

고향 들녘 산책길에 만난 석양
 고향 들녘 산책길에 만난 석양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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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장엄함을 드러내며 온몸을 불태우듯 빛나는 석양을 보며, 노년도 영예로울 수 있음을 새삼 환기한다. 아침 동녘에서 떠오른 태양이 서녘 하늘로 오기까지 그 기간이 한 생이라고 한다면, 노년은 석양처럼 붉고 장엄해야 하는, 생의 최절정이어야 함이 마땅하다.

고향 들녘 석양 길, 저 황홀하고 장엄한 석양처럼 생의 마지막을 장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사뭇 진지해진다.

그러다 문득, 시골집 연못 주변에 심은 호박을 생각해 본다. 작은 모종 네 그루를 심고, 그곳에 개의 배설물을 틈틈이 거름으로 주었더니, 정말 놀랍게 줄기를 뻗고 잎을 키우며 무성하게 자란다. 작은 모종들이 언제 커서 호박을 매달 수 있을까, 의아스러웠는데 보란 듯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손톱만한 호박이 커서 황금빛 호박덩이로 자라나는 것이 경이롭다
 손톱만한 호박이 커서 황금빛 호박덩이로 자라나는 것이 경이롭다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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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손톱만한 열매가 열리더니, 갈수록 존재가 빛난다. 점점 몸집을 불려 가더니 지금은 우람한, 아니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푸른 빛에서 점점 황금빛으로 변화며 늙어가는 호박이야말로 진정 노년의 영화의 상징 같다.

그러나 오늘날, 노년은 본질과는 달리 영예롭지가 못하다. 나이가 드는 것은 직장에서 퇴출  대상이 된다는 것이고 가정에서도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다는 의미로 왜곡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 장르로 소개될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태그:#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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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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