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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 흔한PC방의 모습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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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말 오후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말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7시간 근무를 한다. 80석 규모라서 그렇게 작지도, 크지도 않다. 그래도 대학가와 주택가가 가까워서 손님은 많다.

주말 오후 시간대는 참 바쁜 시간대다. 날이 덥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만석이 된다. 지난 3월에는 한 시간에 500원 받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근무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만석이라 업무량이 어마어마했다. 만약 인기 온라인 게임에서 이벤트라도 한다면 더더욱 사람들이 몰린다. 며칠 전 피파 온라인에서 이벤트를 했을 때는 반 이상의 컴퓨터가 모두 피파만 켜놓고 있었다.

내가 카페 알바생인지, PC방 알바생인지

사실 80명 정도 되는 피시방을 '혼자'서 관리하기란 그닥 쉬운 일이 아니다. 잡무가 넘쳐난다. 자리 청소와 컴퓨터 켜고 끄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후불요금을 안 내고 소위 '먹튀'를 할 수 있으므로 내가 직접 하나씩 꺼야 한다. 계산 업무도 쉬운 편이다. 처음에는 조금 헷갈리지만 적응되면 크게 문제는 없다.

가장 어려운 일은 음식 주문이다. PC방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요즘 대부분의 PC방은 카페형으로 전환됐다. 음료와 간단한 음식 정도는 어느 PC방에서나 판다. 물론 내가 일하는 곳의 메뉴는 더 많다. 커피 음료만 해도 아메리카노·카페라떼·카푸치노·카라멜 마끼아또 등이 있다. 저 메뉴를 외우고 있는 나 자신이 싫다.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은 일반 음료도 부지기수다. 특히 스무디 종류가 가장 성가시다. 나는 카페에 취직한 것이 아닌데 왜 이러고 있는지 자아를 성찰하게 된다.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햄버거나 소시지도 있고 시간이 조금 걸리는 즉석 볶음밥도 있다. 핫도그, 샌드위치, 감자튀김 등등이 있지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역시 '짜파구리'다.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혼합하여 매콤한 맛을 내는 이 짜장라면은 기본적으로 2개 분량을 끓여야 한다. 물 조절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내놓기 위해서는 면 넣는 순서와 물의 양, 양념스프 넣는 양까지 조절해야 한다. 음식을 맛없게 내놓으면 손님이 다 먹지 않아서 설거지 할 일만 더 늘어난다. 그러니 맛에도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청소도 하고 카운터 일도 보다가 조리 주문까지 혼자서 받다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신경을 미처 쓰지 못하는 일들이 생긴다. 그래도 근무 시간 내내 바쁜 것은 아니다. 가끔이지만 업무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 때가 있다. 손님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피돌이(PC방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부르는 말) 주제에 게임을 했다간 사장님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그러니 구경만 한다. 여러 종류의 손님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스티'에 '아이스'를 빼달라구요?

 내가 일하는 PC방의 메뉴. 이것저것 하나씩 주문이 들어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내가 일하는 PC방의 메뉴. 이것저것 하나씩 주문이 들어오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 배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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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내가 운영하는 PC방에는 '초글링'이 드물다. '초글링'은 초등학생의 '초'에 인기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저글링'의 '글링'을 붙인 말이다.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단체를 이뤄서 순식간에 PC방 내부를 점령한다. 시끄럽기는 엄청나게 시끄럽다. 욕도 참 맛깔나고 찰지게 잘한다. 자리는 또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 한 명 한 명 따로 있을 때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지만 무리를 지어서 등장할 때는 감당하기 어렵다. 한 대 쥐어박고 싶다가도 헤실헤실 웃는 모습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맥이 풀려 버린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겪은 것은 약과에 불과하다고들 한다. 사실 그렇다. 초등학생 손님이 흔치 않다 보니 상대할 일도 많지 않다. 이용시간도 길지 않다. 계산할 때 구겨진 지폐에 무수한 동전들을 내밀면 약간 성가시기는 하지만 괜찮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피돌이 선배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곧 초등학생 방학이 다가온다. 본격적으로 초글링들의 러시가 시작되면 '헬게이트'가 열린다고 한다. 그전에 아르바이트 직종을 바꿔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초글링'이 미래에 닥쳐올 재앙이라면 '린저씨'는 지금 불어 닥친 폭풍이다. 유명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린'과 '아저씨'의 '저씨'가 합쳐진 말이다. 이 분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른다. 심심하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 경우 대개는 이전에 쓰던 사람이 스피커 단자에 헤드셋을 꽂아 쓴 뒤 다시 스피커에 연결 안 하고 나온 탓이다. 키보드가 맘에 들지 않는다든가 마우스를 교체해 달라는 요청도 종종 들어온다. 가장 황당한 요청은 모니터를 CRT로 교체해 달라는 요구였다. 크고 아름답지만 더럽게 무거워서 수년 전에 이미 단종된 '뚱뚱이' 브라운관 모니터를 내놓으라니... 어디서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을 구해 달라니 황당했다.

가끔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린저씨를 맞이하는 것도 힘들다. 고이 컴퓨터를 켜놓고 자리에 앉아서 잠을 청하는 손님들은 별 문제가 없다. 고성방가로 다른 손님에게 폐가 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컴퓨터 앞에다가 걸쭉하게 파전을 부치기도 한다. 주택가 근처다 보니 술 한 잔씩 하고 게임을 하러 오거나 반대로 게임을 하다 술 한 잔씩 하러 가는 것이 예사다. 컴퓨터를 켜 둔 채 계산도 안 하고 약주하러 떠나 버리면 그야말로 '멘붕'에 빠진다. 아, 말을 잘못했다. '아이스티'를 주문하면서 '아이스'를 빼달라는 그 린저씨가 나를 진정한 멘붕의 늪으로 빠트렸다.

PC방에 대한 선입견

 많은 사람들이 PC방에서 게임을 하지만, 모든 사람이 게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PC방에서 게임을 하지만, 모든 사람이 게임만 하는 것은 아니다.
ⓒ THQ Ins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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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외에도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PC방을 찾는다.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는 PC방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 나는 지금까지 PC방을 즐겨 찾는 사람들을 사회의 '낙오자'나 '게임 중독자'로 여겼다. 돌아보면 매우 비뚤어진 생각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일하면서  매우 다양한 손님을 맞이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주변이 대학가니까 대학생들도 있고, 동네 친구들끼리 오는 사람도 있다. 주말에 게임을 즐기러 온 30대 직장인은 물론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가끔 방문한다. 부부 동반으로 게임을 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별로 없을 것 같은 젊은 여성분들도 생각보다 많다. 당장 내 앞 시간대 아르바이트생도 여자이면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악마'를 열심히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솔직히 예뻐...보인... 아니다. 대부분의 손님은 각자 자기 생활에 충실하면서 여가를 즐기기 위해 오는 분들이다. 대개 점잖고 예의바른 분들이고, 피돌이인 나를 많이 배려해준다. 일부 예외적인 진상 손님이야 어느 장소건 있지 않겠나.

그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일단 '게임'을 하러 온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역시 인간은 '본원적으로 유희를 찾는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PC방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떠들기도 한다. 솔로인 내 입장에서는 보기 싫지만 연인과 데이트를 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PC방은 그런 공간이다. PC방이 카페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제공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물론 피돌이 입장에서는 일해야 할 것들만 잔뜩 늘어난 셈이지만... 어쨌든 담배 연기가 화생방처럼 자욱한 너구리굴도 아니고, 남자들만 바글거리는 곳도 아니며, 그렇게 어두침침한 곳도 아니다. MBC 뉴스에서 PC방 전원을 내리며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했던 리포트를 생각하며 피식하고 웃어본다. 내가 그 동안 지니고 있던 생각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PC방에 대해서 가져온 생각들이 많이 모자랐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

물론 '담배'에 대한 문제는 여전하다.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PC방은 갈 곳이 못 된다. 좀 밝은 분위기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맞는 PC방도 부족하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PC방 수요도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PC방을 카페형으로 바꾸느니 카페를 PC방 형태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일단 컴퓨터를 모두 '사과' 컴퓨터로 바꾼다. 물론 디자인을 위해서다! 허영심을 자극하기 위함은 결코 아니다. 사과 컴퓨터가 비싸다면 사과 패드도 있다. 자리는 한 테이블에 5~6명 정도 앉을 수 있게 만든다. 커피값을 조금 올리고, 아르바이트생들의 복장도 깔끔하게 제복으로 통일한다. 이 부분도 결코 본인의 개인적 바람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망중한이 거의 끝나가는 것 같다. PC방 입구의 문이 열린다. 단골 손님이다.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아유 사장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템 좀 주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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