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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애 참 어렵습니다. 시작하기도 계속하기도 끝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연애 방법을 학습하고, 어플리케이션으로 사람을 만나고, 재회를 위해 비싼 돈을 냅니다. 연애조차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세상, 요즘 연애의 신풍속도를 탐구해봤습니다. [요즘 연애] 시리즈는 <오마이뉴스> 공채 7기 수습기자들이 자체적으로 기획,취재,작성한 '독립편집국' 기사입니다. [편집자말]
곧 여자친구와 연애한 지 100일이 되는 대학생 A씨는 원래 '모태 솔로'였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CC(캠퍼스 커플)의 꿈을 꿨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A씨는 결국 '픽업 아티스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그 때는 돈을 주고서라도 연애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을 정도로 절박했다"고 말했다.

픽업 아티스트는 이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금전을 대가로 기술을 전수해준다. A씨는 상담비 10만원을 포함해서 약 두 달여 간 총 150만원을 지불했다. 그리고 이 때 배운 내용을 토대로 '헌팅'에 성공,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연애를 '학습'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을 주고서라도 픽업 아티스트로부터 강좌를 듣고, 인터넷을 통해 연애지침서를 구매한다. 연애 관련 대학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성공적인 연애를 위해서는 공부해야 하는, 요즘 연애의 신풍속도다.

[유형 1] 픽업 아티스트로부터 배우는 사람들

많은 픽업 아티스트들이 '연애의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 데이트 코칭 많은 픽업 아티스트들이 '연애의 기술'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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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 아티스트 혹은 연애 컨설턴트로 불리는 이들은 보통 1~2시간의 전화 혹은 방문 '상담'을 통해 신청자가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진단한다. 그리고 각자에게 이에 맞는 처방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내린다. 상담 비용은 일반적으로 시간당 5~10만원이다. 프로젝트 혹은 강의 비용은 진행 시 따로 청구된다.

커리큘럼은 '상대의 유형을 분석하는 방법' '대화 소재가 떨어졌을 때 대처하는 법' 등의 이론교육과 데이트 상황을 모의로 체험하는 실습교육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600만원이 넘는 비용을 요구한다. 10명 이상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의식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1:1 혹은 2:2의 그룹과외 식으로도 진행된다.

이처럼 돈을 받고 데이트 코칭을 해주는 관련 커뮤니티만 2000여개에 달한다. 회원수가 많은 곳은 2만명 가까이 된다. 커뮤니티에는 "배운 내용을 토대로 여자친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알려준 대로 하니 소개팅에서 애프터(이후 약속)을 땄습니다" 등의 강의 후기가 수시로 올라온다.

이러한 강의에 비싼 돈을 지불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알음알음 강의 파일을 구한다. 구아무개(24)씨는 얼마 전 실연을 겪은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픽업 아티스트 강의 파일을 구해서 시청했다. 하지만 구씨는 "사람을 유형화해서 수학의 정석마냥 공략법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사람이 뽑기 인형도 아니고 '픽업'이라는 용어 자체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구씨에게는 이 영상이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난 2월에 제대한 홍아무개(24)씨는 군대에서 픽업 아티스트의 강좌를 들었다. 전역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부대에서 마련해준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홍씨는 "데이트 신청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고, 이성과 사귀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대해야하는지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내용 자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건전하고 괜찮았다"며 "주변 동기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홍씨는 "전역 후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그 때 배운 기술이 크게 소용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며 "연애에서 이런 잔기술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유형 2] 책을 통해 공부하는 사람들

"셔츠의 주름을 펴고, 코털이나 일자 눈썹은 뽑자."
"여러분의 번호를 주기만 하지 말고, 반드시 여자의 번호를 받자."

윤아무개(22)씨가 구입한 책의 일부분이다. 지난 7월에 제대한 윤씨는 전역을 앞두고 월급까지 모아가며 총 3권짜리 연애지침서 세트를 20만원에 구입했다. 그가 구입한 책들에는 '그녀의 번호를 얻기 위한 방법' '첫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주의해야할 점' '상대가 나에게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법' 등이 서술되어 있다. 예컨대 "데이트 신청은 목요일에 하는 것이 가장 성공확률이 높다"라든가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마라"와 같은 것들이다.

윤씨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 이성과 어떤 주제로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다 잊어버린 것 같아 제대 후가 걱정됐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이 책을 통해서 그래도 이성을 대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윤씨는 중요한 부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꼼꼼하게 책을 읽었다. 그는 현재 연애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애를 제대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은밀한' 방법으로 책을 구한다. 인터넷 카페나 전문 사이트에서는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별도의 책을 판매한다. 가격은 평균 5~6만원이지만 한 권에 30만원 가까이 하는 책도 있다. 커뮤니티 회원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이 책은 보통 한 번에 10~30권 정도의 소량으로 발간되며 순식간에 '완판'되서 주문제작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윤씨도 이처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책을 구입했다.

일반서점에서도 연애지침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보문고>는 지난 6월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자기계발' 분류 안에 '남녀관계'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다. 다른 온라인 사이트에도 '남녀관계' 혹은 '연애'라는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오프라인 서점 중에는 연애 관련 책들만을 모아둔 코너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 판매되고 있는 관련 서적은 300종 이상이고 올해 출판된 서적만 30종이 넘는다. 보통 1~2만원대의 가격인 이런 책들에는 '밀당의 기술' '유혹의 비밀'과 같은 설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교보문고> 통계에 의하면 2012년 한 해에만 10만 권가량의 연애지침서가 팔린 셈이다. 지난 2013년에는 <착한 연애 : 아무도 울지 않는 해피엔딩 연애법>이 판매량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올해의 이북(E-Book)'에 꼽히기도 했다.

최근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다른 애인을 찾고 있는 고아무개(26)씨는 이처럼 책을 통해 연애를 공부하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호기심에 책을 구해서 읽어봤지만 돈이 아까웠다"며 "알려주는 기술들이 너무 뻔하고 당연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몰라서 연애를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고 반문하며 "그 내용을 어떻게 직접 적용하고 실행할 것인지가 어려운 부분인데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말했다.

[유형 3] 대학교에서 연애를 배우는 사람들

대학교에도 연애 관련 교양 강의가 인기를 얻고 있다.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B(23)씨는 '너희가 사랑을 아느냐'는 이름의 강좌를 수강했다. 이 강좌는 16~20명 정도의 인원제한이 있다. 강좌를 듣기 위해서는 우선 정원 2배수를 뽑는 예비 명단에 들어가야 한다. 선착순으로 예비 명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수강 신청 기간이 되면 수업을 듣고자 하는 학생들은 마우스를 '광클'(광속 클릭의 줄임말로 마우스 버튼을 연속해서 빠르게 누르는 것)한다.

예비 명단에 들어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담당 교수에게 수강 사유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야 한다. 설득력 있는 사유서를 작성하여 교수에게서 수강 허락을 받아야만 간신히 수강 기회가 생긴다.

B씨는 수강신청 이유에 대해 "대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연애를 하려니 서투른 점이 많았다"며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수업을 듣는다고 연애 도사가 되지는 않는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는 남녀들이 모여서 사랑이란 무엇인지, 자신이 꿈꾸는 사랑은 무엇인지 등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야기 할 수 있었다"며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알게 된 점은 꽤 도움이 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고려대학교의 '결혼과 가족의 이해'도 커플이 많이 듣기로 유명한 강의다. 최아무개(25)씨는 "그냥 학점을 채우려고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나를 빼고 모두 커플이라 수업 듣는 내내 외로웠다"고 말했다. 이 과목은 같은 이름의 강의가 4개 분반으로 운영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가정교육학과의 전공관련교양임에도 수강생 상당수는 비전공자다.

수강 당시 CC였던 김아무개(21)씨는 "강의 자체는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수업이었고, 이성교제와 관련해서도 도움이 될 만한 점이 많았다"면서도 "하지만 실전에서 소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개강 때는 남자친구와 같이 들었는데 종강 때는 솔로가 돼서 따로 앉아 들었다"고 말했다.

각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학생상담센터를 찾는 학생도 많다. 각 상담센터에서는 연애를 위한 개인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연애 상담을 포함한 개인 상담은 신청하는 사람이 많아 1~2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 외부 강사를 초빙해 연애 관련 특강이나 세미나가 열리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만 해도 건국대, 단국대, 동국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에서 '연애' '사랑'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학습'의 대상이 된 연애, 스펙화의 결과

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 심리상담학과 교수는 "연애를 공부하는 것은 분명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이라고 전제했다. 심 교수는 "우선 각박한 인간관계 속에서 연애 문제에 대해 터놓고 상담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자신의 감정과 대인 관계조차 '자기 관리'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서구 사회처럼 모든 것을 '학습'의 대상이자 일종의 스펙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심 교수는 "인간관계가 각박해지면서 '어장 관리'라는 말처럼 관리 차원에서 연애담론이 생산되고 있다"며 "진정성과 낭만이 있고 때로는 아프기도 한 자기만의 소중한 추억이 아니라 가볍게 연애가 소비되는 시대가 됐다"고 평했다.

심 교수는 "음지가 크지만 양지도 있다"며 "무조건적으로 상대에게 순결(혹은 과거)을 강조하지 않는 점,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결혼 전에 연애를 여러 번 해볼 수 있게 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첨언했다.


태그:#요즘 연애, #픽업 아티스트, #공부, #연애, #독립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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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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