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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환자의 질병과 상처를 치료해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장소다.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의사, 약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보건의료인과 행정직원이 참여한다. 환자 치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하다 보니 이 중 어느 한 사람의 사소한 실수에도 환자의 생명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를 보통 '의료사고'라고 한다. 보건의료인이 신이 아닌 이상 실수는 피할 수 없는 보건의료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보건의료인이 피해자나 유족에게 사고원인을 설명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적정한 경제적 보상을 하면 보통은 원만하게 해결된다. 자동차사고처럼 의료사고 또한 보건의료인이 고의로 일으킨 것도 아니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관련 의료 현장 이야기

그러나 의료 현장은 그렇지 않다. 절단 예정된 오른쪽 발이 아닌 왼쪽 발을 절단했다거나 맹장이 아닌 신장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든지 하는 등 의료사고가 명백한 경우에는 해결 과정이 의외로 간단하다.

의료사고 발생 사실이 언론이나 방송에 보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병원에서 먼저 나서서 신속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료사고의 개연성은 높지만 명백하지 않은 경우다. 이 경우 상당수 병원들은 피해자나 유족들의 의료사고 주장을 강하게 부인하고 법대로 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경제적 형편이 좋아서 1심만 500만~ 천만 원 정도 하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 사람은 변호사를 선임해 의료소송을 진행한다. 2012년 4월 8일 이후 발생한 의료사고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도 가능하지만, 병원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면 조정신청이 자동 각하된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은 의료소송도 못하고 의료분쟁조정제도도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 진실 규명이나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대부분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은 현수막과 피켓을 만들어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나 집회를 시작한다. 그러나 며칠이 안 가 이들은 병원으로부터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형사고소를 당해 상당수는 전과자가 된다. 이것이 의료사고와 관련된 우리나라 의료현장의 현 모습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이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병원 직원 1~2명이 나와 감시하다가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다가 나중에는 7~8명이 감시하기도 한다. 병원 직원들은 1인 시위 하는 피해자나 유족에게 어떤 때는 회유하고 어떤 때는 협박하면서 시위의지를 꺾으려고 하거나 형사고소를 위해 폭행이나 명예훼손을 유도한다. 경찰까지 불러 겁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합법적인 1인 시위나 집회를 하고 있다면 전혀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이 전과자가 되지 않으면서 사회적 관심도 불러일으키는 병원 앞 1인 시위 방법에 대해 한 번 꼼꼼히 살펴보자.

병원 앞 의료사고 1인 시위시 지켜야 할 10가지 원칙

전예강 어린이 유족이 만든 의료사고 블로그 '난예강이'.
 전예강 어린이 유족이 만든 의료사고 블로그 '난예강이'.
ⓒ 최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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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의료사고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는 블로그·카페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피해자 소개, 사건개요, 주요논점, 병원·정부·국회에 대한 요구사항, 의무기록지 등 의료사고 관련 자료를 제3자적 입장에서 한눈에 쉽게 이해되도록 게시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보건의료인이나 언론방송사 기자들은 의료에 있어 비전문가인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의료사고가 아닌데도 의료사고라고 생떼 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블로그·카페를 만들어 의료사고 관련 자료를 공개해 놓으면 객관적인 검증도 가능하다. 또 양심적인 보건의료인이나 이전의 유사한 경험을 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의료사고의 진상규명과 소송에 도움이 될 자료나 정보를 보내 주기도 한다.

또한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란에 의료사고 피해자 이름인 '홍길동'을 치면 바로 블로그·카페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둘째, 1인 시위나 집회할 때 사용하는 현수막이나 피켓에 해당 병원의 상호나 보건의료인의 실명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명예훼손죄는 허위의 사실뿐만 아니라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성립하기 때문에 절대 해당 병원의 상호나 보건의료인의 실명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해당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나 집회하면 일반 대중은 의료사고 가해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형사고소의 위험까지 감수할 필요는 없다.

다만 병원을 특정하지 않는 상호 표기는 가능하다. 예를 들면 '서울대병원'을 '서울 종로구 S병원'으로 표기하거나 '경북대병원'을 '대구 중구 K병원'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에 이니셜 'S'로 시작되는 병원이 여러 개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을 '서울 종로구 S대학병원'으로 표기하면 안 된다. 서울 종로구에 이니셜 'S'로 시작되는 대학병원은 '서울대병원' 한 곳뿐이어서 바로 특정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이유로 '경북대병원'도 '대구 중구 K대학병원'으로 표기하면 안 된다.

전예강 어린이의 유족이 만든 의료사고 1인시위 피켓.
 전예강 어린이의 유족이 만든 의료사고 1인시위 피켓.
ⓒ 최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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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1인 시위나 집회는 언론방송이나 SNS를 통해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는 도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1인 시위나 집회를 할 때는 반드시 1인 시위나 집회 내용을 사진 또는 영상과 함께 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등의 SNS을 통해 알려야 하고 언론방송사 기자에게 취재도 요청해야 한다.

며칠, 몇 달 동안 1인 시위나 집회했는데도 언론방송에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거나 SNS 활동을 통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전혀 검색이 안 된다면 1인 시위나 집회는 하나마나다. 1인 시위나 집회는 개인적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넷째, 10일 이상의 장기간 1인 시위를 할 계획이면 관할 구청에 가서 집회신고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병원 앞 동일한 장소에서 장기간 1인 시위를 하면 병원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 수 있고 이로 인해 병원 이용 환자수가 줄어들어 경제적 손실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1인 시위 때 구호를 한 번 외친 것이나 1인 시위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 함께 온 동료가 있으니 불법집회라는 등 갖가지 꼬투리를 잡아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 또는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방어차원에서 집회신고를 하고 합법적인 장기간 1인 시위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

집회신고는 주최자 본인 또는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이 관할 구청 민원실에 가서 하면 된다. 처리기간이 2일 이상이기 때문에 집회 3일 전에 신고서를 접수해야 하며, 집회장소가 어디인지 약도로 정확하게 지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1인 시위를 할 때는 시위자 이외 다른 한사람이 영상 또는 사진 카메라를 준비해 100m 밖에서 병원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반드시 감시해야 한다.
병원 직원들이 현수막을 걷어가 버리거나 피켓을 빼앗아 부숴 버리는 경우도 있고 시위자를 위협하거나 손으로 밀치기도 하기 때문에 불법행위 채증을 위해서라도 시위자 이외 반드시 다른 한 사람이 동행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1인 시위자에게서 100m 이상 떨어져 병원 직원들이 알지 못하게 감시하는 것이다. 100m 이내에서 공개적으로 감시하면 2인 이상이 집회를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불법집회라며 형사고소를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1인 시위 중에 병원 직원들이 와서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경우 "헌법에 보장된 1인 시위을 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마세요"라는 짧고 단호한 말로 경고한 후 침묵하고 1인 시위에만 집중해야 한다.
병원 직원들의 자극하는 말과 행동에 흥분해 폭행·협박을 하거나 병원 상호나 보건의료인 실명을 거론하며 모욕이나 명예훼손을 하면 절대 안 된다.

일곱째, 1인 시위 중 병원 직원들이 파출소에 신고해 경찰차나 경찰관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1인 시위 중이고 병원 직원들이 1인 시위 방해하지 않도록 조치해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여덟째, 1인 시위자가 자신을 감시하는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접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촬영해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경우 병원 직원들이 초상권 침해라며 강하게 항의하기 때문에 시위자 이외 다른 한 명의 감사자가 100m 밖에서 병원 직원들의 불법행위를 사진으로 찍거나 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병원 직원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수 있다.

아홉째, 언론방송사가 1인 시위 관련해 특별히 관심을 갖는 날짜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언론방송사는 아무 때나 1인 시위를 보도는 것이 아니라 1인 시위 처음 시작하는 날, 10일, 30일, 100일, 200일, 300일, 1년, 2년, 1000일, 3년, 4년, 5년 등 대중적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는 이러한 특정한 날짜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언론방송사에서 특별히 관심을 갖는 날짜가 다가오면 사전에 언론방송사 기자에게 1인 시위 취재를 요청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열번째, 1인 시위로 큰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보도할 언론방송 매체를 지혜롭게 선택해야 한다.
매체 파급력은 공중파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일간지, 인터넷 언론매체, 보건의료 전문지 순서이고 언론방송 매체 선택시 이를 잘 고려해야 한다. 언론방송의 속성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한 번 보도가 되면 기사나 방송 소재로서의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중파 방송이나 일간지만 고집하다가 또는 이곳저곳 매체를 기웃거리다가 결국 보도 타이밍을 놓쳐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시간과 지면의 제약으로 사건만 간단하게 소개하는 단신 형태의 공중파 방송이나 일간지보다는 이러한 제약이 없고 의료사고 내용과 주요 논점을 심층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인터넷 언론매체를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때도 있다. 양질의 기사가 만들어지면 페이스북·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더 큰 사회적 관심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 응급실에서 7시간만에 사망한 9살 전예강 어린이 엄마 최윤주씨가 병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7시간만에 사망한 9살 전예강 어린이 엄마 최윤주씨가 병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최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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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주위에 기생하는 '의료사고 브로커' 특히 주의 필요

글을 끝내기 전에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고 싶다.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나 집회하는 경우 간혹 "소송에서 이기도록 도와주겠다. 또는 병원과 얘기해서 합의금을 많이 받도록 해주겠다"며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1인 시위나 집회를 좀더 자극적인 방법으로 하라고 유혹하고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에 해당하는 원색적인 비난 문구로 현수막이나 피켓을 만들도록 조언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자신도 의료사고 피해자였지만 자신만의 비법으로 병원에서 고액의 합의금을 받아 냈다며 자랑하고 자신의 사비를 들여가면서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을 전심으로 돕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지 마라. 이들은 '의료사고 브로커'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의료사고 피해자와 병원 사이에 격한 대립을 유도해 합의를 하게 만들고 이렇게 받은 합의금의 10~30%를 사례비로 받는 것이다. 이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다.

이들은 의료과실이 확실해 병원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의료사고인데도 의료사고 피해자에게는 '90% 이상 패소할 사건이지만 자신이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 시킨다. 자신은 절대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며 강조하면서 오히려 사비까지 들여가면서 전심으로 도와준다.

그런데 의료사고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을 때쯤 되면 자신의 가족 중 누군가가 중병에 걸려 긴급히 치료비가 필요하다거나 보증 선 친구가 부도가 나 자신이 신용불량자가 될 상황에 처했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으로 사례비를 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고단수 사기꾼이다.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두 번 상처 주는 병원 주위의 브로커에게 속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기 바란다.

나는 올해 10년째 환자운동을 하고 있다. 아들이, 배우자가, 부모가 의료사고로 사망하거나 중장애를 입어서 병원과 힘든 법정소송을 하던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이 오히려 병원의 형사고소로 전과자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그래서 의료사고와 관련해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나 집회했던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들의 얘기들을 종합해 전과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1인 시위하는 방법을 '병원 앞 의료사고 1인 시위 10가지 원칙'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해 보았다.

의료사고 피해자나 유족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안기종 기자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입니다.



태그:#의료사고, #의료소송, #1인시위,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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