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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학계를 지배하다 보니 연구자가 세상에 궁금한 것을 연구할 틈을 찾기 매우 힘들다.
 이런 생각이 학계를 지배하다 보니 연구자가 세상에 궁금한 것을 연구할 틈을 찾기 매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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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까지 학자이다(라고 주장한다). 학계에 있으면 알겠지만 보통 '논문실적'을 따지게 된다. 언제부터 그런지 모르겠지만 등재후보지, 등재지, ssci급의 해외학술지 이런 식으로 등급을 나누어 평가하고 있다. 사람은 제도의 영향력에 벗어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제도를 이용해 최대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주변에선 이런 말씀도 하신다. 어디 학교 임용이라도 되려면 국내논문은 10편 이상, 적어도 ssci는 두 편 이상이 있어야 해. 넌 아직까지 논문이 몇 편이야? 이렇게 게을러서 뭐가 되려고 해. 슬프지만 뭐 이렇게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논문 몇 편을 쓰는가에 매달리게 된다. 스스로 그 개수에 목매게 되는 것이다. 소위 정규직 연구원, 괜찮은 학교에 전임교수로 가려면 일 년에 적어도 3편 이상은 꾸준히 실적을 내면서 관리해야 해. 뭐. 이런 식이다.

이런 생각이 학계를 지배하다 보니 연구자가 세상에 궁금한 것을 연구할 틈을 찾기 매우 힘들다. 그 대신 소위 '논문꺼리'가 되는 것들을 연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모형이 아름답게 나올 것이기 때문에, 쓰기 쉽기 때문에, 최단기간 논문이 출판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혹은 ssci 트렌드에 맞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면 연구비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자. 몇 편의 실적이 중요한가? 아니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중요한가? 학자라면 적어도 자신의 자존심을 걸 수 있는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논문 혹은 저서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포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적어도 내가 학자라면 대가들의 어깨에 걸터앉아 이론의 발전을 도모하거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중에게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로 예를 들자면 아직 토대가 별로 없어 해외 이론이나 정책을 받아들이기 급급한 현실에서 적어도 우리나라의 독특한 맥락을 반영한 이론 체계를 발전시키든지, 이 영역에서 하루가 다르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론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일들을 꾀해야 할 것이다. 지역의 사례들을 잘 정리해 소개하는 일이나 혹은 해외의 정책들을 분석해서 우리에게 적용할 점이 없는지 찾아보는 것들도 필요하다.

이런 것이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학자의 자세일 것이다. 이런 일들을 잘하려면 실적을 따질 여력이 있을까? 물론 전체 학계가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심지어 동료의 글들은 보지 않고 해외의 트렌드만 베끼기 바쁜데 한 개인이 어떻게 바꾸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 농담처럼 그런 말씀도 하시더라.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냐고? 정작 연구할 시간에 펀드에 대한 연차보고서 쓰기 바빠서라고. 그래, 그런 세상이고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의 나쁜 체계가 혹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안 되는 이유를 100가지 찾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차근히 해나가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 자존심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고민해 봐야겠다. 그럼 넌 그렇게 하고 있냐고?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페이스북(www.facebook.com/kimjongsu)에도 올린 글입니다.



태그:#좋은 학자 , #논문 실적 , #사회적경제, #SS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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