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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확실한 이 녀석이 제 손자 서준이랍니다. 가제수건으로 고깔 쓰고 이벤트 한 번 보여주는 거랍니다.
 존재감 확실한 이 녀석이 제 손자 서준이랍니다. 가제수건으로 고깔 쓰고 이벤트 한 번 보여주는 거랍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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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세종대왕, 잔 다르크, 히틀러, 나폴레옹, 칭기즈칸, 안중근, 박정희, 김일성, 싸이, 오바마, 링컨, 예수, 석가모니, 공자, 빌 게이츠, 김수환, 소크라테스.

위인들 나열한 거냐고요? 아뇨. 자신이 살던 시대에 확실한 존재감을 나타낸 사람들입니다. 뭐,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죠. 역사에 부정적 영향력을 미친 이들도 있지만, 긍정적 영향력을 끼친 이들도 있죠. 왜 느닷없이 손자 바보 할배의 꼴불견(?) 이야기에 존재감 타령이냐고요? 이 글을 다 읽어보시면 알 겁니다.

'사람, 사물, 느낌 따위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을 '존재감(存在感)'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존재감 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실존하는 것은 다 존재감이 있죠. 그러나 이 녀석의 존재감은 유난스럽습니다. 요새 우리 집에서 가장 유다른 놈이죠. 그 이름은 '서준', 다름 아닌 제 손자 녀석이랍니다.

여기도 저기도 서준이의 영역표시

딸이 75일 된 손자를 안고 우리 집에 온 지도 2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똥 싸고도 칭찬을 받는 서준(관련기사: "똥 쌌다고 칭찬...광해 이병헌씨 생각나네요")이는 울어도, 웃어도, 몸부림쳐도, 심지어는 잠을 자도 여전히 존재감 하나 빵빵합니다.

오자마자 서준이 녀석은 자기 방임을 확실히 하는 영역표시를 했습니다. 기저귀, 이브자리, 가방, 옷가지들, 탈것, 밀것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다 늘어놓고 영역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오자마자 서준이 녀석은 자기 방임을 확실히 하는 영역표시를 했습니다. 기저귀, 이브자리, 가방, 옷가지들, 탈것, 밀것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다 늘어놓고 영역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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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서재를 녀석에게 내 준 터라 제 방이 서준이 모자의 방이 되었습니다. 오자마자 서준이 녀석은 자기 방임을 확실히 하는 조처(?)를 취했습니다. 일종의 영역표시죠. 기저귀, 이브자리, 가방, 옷가지들, 탈것, 밀것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다 늘어놓고 영역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일하다가 쉴 때면 잠깐 눕는 제 침대 위에도 서준이 깔개가 놓였습니다. 그 옆에선 사위와 딸이 번갈아가며 서준이와 나란히 누워 영역표시를 합니다. 방바닥에도 서준이 이부자리, 옷들 그리고 이런저런 소지품들, 대부분 녀석의 존재감 가득한 물건들이 자리를 턱 하니 차지하고 요지부동입니다.

거실로 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의자, 또 다른 깔개, 목욕 후 몸에 바르는 로션, 오일, 영양크림, 발진크림(예전엔 파우더를 발라줬었는데 미세먼지를 염려하여 발진크림으로 바뀌었다고 딸이 귀띔해 주네요)이나 기저귀, 마른 티슈, 가제수건, 손톱깎이 등이 담긴 바구니가 탁자 위에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안방은 또 어떤 줄 아세요. 그곳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녀석이 낮잠을 자는 낮 침실로 내어줬습니다. 서재와 거실이 성인들의 활동 공간인지라, 낮잠을 자는 고귀한 녀석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한 안방을 낮 동안의 침실로 내준 것이랍니다. 그러니 우리 부부의 침대 위에도 녀석의 깔개가 또 하나 깔려 있습니다.

그럼 자동차는 어떨까요. 역시나입니다. 차 트렁크에는 손자 녀석의 외출 시 이동을 편리하게 하는 유모차가 들어 앉아 있습니다. 운전석 뒷좌석에는 어린아이용 카시트를 겸한 유모차 이동의자가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요.

거실로 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의자, 또 다른 깔개, 아기용품이 담긴  바구니가 서준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거실로 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의자, 또 다른 깔개, 아기용품이 담긴 바구니가 서준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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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션, 오일, 영양크림, 발진크림이나 기저귀, 마른티슈, 가제수건, 손톱깎이 등이 담긴 바구니가 탁자 위에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로션, 오일, 영양크림, 발진크림이나 기저귀, 마른티슈, 가제수건, 손톱깎이 등이 담긴 바구니가 탁자 위에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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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어딜 가나 서준이 존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죠? 하여튼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녀석치곤 그놈만큼 존재감 확실한 녀석이 없습니다. 2주 안에 그 누구도 이렇게 자기 존재감을 튼실하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거죠. 그러니 '제 손자는 천재다'(?!) 이거죠. 허. 혀를 차시려면 맘껏 차시길.

우리 부부는 서준이의 일분대기조

그뿐이던가요. 손자 녀석이 자다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온 가족이 덤벼듭니다. 책을 읽던 이 할배도 책을 팽개치고 달려갑니다.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던 할매도 미처 손을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녀석의 잠자리(울음소리의 근원지)를 향하여 뛰어갑니다. 밤새 녀석에게 시달린 딸도 잠시 눈을 붙였다가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뜀박질해 갑니다.

서준이의 울음보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대통령 긴급조치 1호 포고문입니다. 달려간 그 누구든 먼저 달려간 사람이 서준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고 야단법석이 시작되지요. 어른들의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방언과 요란스런 재롱은 참으로 가관이랍니다.

"얼럴럴러~럴 까꿍~ 어구! 우리 서준이 잘 잤어용? 끄르르르 카! 치르르르 피! 에어? 아이구! 어이~ 아무도 없어? 서준아~~ 여기 봐! 와~ 아이!!"

제 서재를 녀석에게 내 준 터라 제 방이 서준이 모자의 방이 되었습니다. 오자마자 서준이 녀석은 자기 방임을 확실히 하는 조처(?)를 취했습니다.
 제 서재를 녀석에게 내 준 터라 제 방이 서준이 모자의 방이 되었습니다. 오자마자 서준이 녀석은 자기 방임을 확실히 하는 조처(?)를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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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바보 할배가 제 일 다 팽개쳐 놓고 서준이와 놀아주고 있습니다.
 손자 바보 할배가 제 일 다 팽개쳐 놓고 서준이와 놀아주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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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그리 대단한 방언을 하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천성이 조용한 여자라 서준이 앞에서 낼 소리 안 낼 소리 다 하는 걸 보면 '딴 여자 신'이 강림한 게 아닌가 착각이 듭니다. 저 또한 서준이 녀석 앞에서 재롱떨기에 부산합니다. 저도 제가 이리 재롱을 잘 떠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답니다.

존재감 대단한 손자 녀석과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입니다. 우리 부부의 비교적 가지런한 하루의 스케줄은 흔적조차 찾기 힘듭니다. 아침 운동도 거른 지 오래입니다. 아침마다 수영하여 노년의 몸만들기에 도전했던 우리 부부는 그 야무진 계획마저 내동댕이치고 말았답니다. 아내가 도저히 체력적으로 아침 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80일 조금 지난 신생아의 존재감이란 게 참 어마어마하다 싶습니다. 난 서준이의 존재감을 온 맘으로 실감하면서 하루하루 제 존재감에 대한 질문들 앞에 놓입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녀석의 존재감에 휘말리면 말릴수록 우리 부부의 존재감은 사라져 간답니다.

세상이 온통 서준이를 중심에 놓고 움직입니다. 지금 우리 집에선 커피 마니아인 제가 커피를 마시고 싶은 때도 못 마신답니다. 서준이가 자면 그 누구도 소리 나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커피 전동 그라인더 소리가 웬만해야죠. 그 소리에 서준이가 깨기라도 하면 아내의 얄궂은 눈초리가 제게 날아와 꽂히거든요.

으이구! 그 서슬 퍼런 눈빛에 쪼여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마세요. 저 요즘 이렇게 '손자 바보'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요게 그리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정말 행복합니다. 서준이 녀석, 지금처럼 이 담에 커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감 듬쑥한 인재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손자 바보, #꽃할배 일기, #서준, #존재감, #영역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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