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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약국>( 박후기 지음 / 가쎄 / 2014.08 / 1만5000원 )
 <그림약국>( 박후기 지음 / 가쎄 / 2014.08 / 1만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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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은 누가 내립니까. 당연히 의사죠. 약사는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해 줍니다. 이거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책'으로 처방을 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 하여 '독서치료사(독서코칭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독서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정서적, 사회적, 정신적 문제를 치료해 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독서치료사 1급 자격증을 소유해야 독서치료사로서 책 처방을 할 수 있습니다. 만 18세 이상, 고등학교 졸업 이상이면 누구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교육청이 인가한 정식 전문교육기관에서 아동발달론, 언어지도, 아동문학, 자원봉사론, 아동독서 및 글쓰기 지도 등 5과목을 이수하고 시험을 치러야 합습다. 자격증은 한국자원봉사교육협회에서 발급하고요.

그림으로 마음의 질병을 치료한다

그런데 독서치료사도 아니면서 감히(?) 인생의 환절기에 찾아 온 마음의 병을 치료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박후기 시인입니다. 그가 <그림약국>이라는 책 처방전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시를 통해서 상처의 궁극을 맛보았고, 그림을 통해서 치유의 가능을 보았다"며 53점의 그림과 덧붙인 짧은 잠언시를 처방전으로 들이밉니다.

박후기 시인은 지난 2003년 <작가세계>를 통하여 등단한 후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산문사진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는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언어가 달라지면 사랑은 어긋나기 시작한다"면서, "서로 눈빛만 쳐다봐도 알 수 있었던 마음"이 새삼스런 변명과 설명으로 이어질 때 이미 사랑은 어그러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어그러진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백 마디 말이 아니라 한 장의 그림이라고 주장합니다.

"언어만 난무하는 고통과 상실의 시대, 아픈 사랑의 치유를 위한 처방전을 쓰고 그린다. 백 마디 말과 백 줄의 문장보다 한 장의 그림이 더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있다. 사랑은 언어와 문자 이전에 오는 것, 문자 이전에 인간은 어떻게 소통했는가를 생각한다."(5쪽)

병을 치료한다면서 얄궂게도 시인은 "너라는 이름의 병을 앓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내 가슴에 생긴 통증은 너라는 사랑 바이러스 때문"이라며, "사랑이란 게 감기와도 같아서 치료약이 따로 없으니, 그저 따듯한 이불속에서 서러운 가슴을 묻고 몇 날 며칠을 앓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처방전은 실은 '사랑앓이'를 통해서만 '사랑앓이'가 끝난다는 뜻입니다.

참 독특합니다. 참 신선합니다. 참 가지런합니다. 그의 맛깔 나는 짧은 글들과 간결한 그림들이 그렇습니다. 그림들은 연필과 파스텔로만 그렸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마음으로 확 들어옵니다. 시인의 시화집은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필요한 약국입니다. 이름 하여 '그림약국'입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항복하는 겁니다. 사랑은 때로 상대의 편안한 의자가 되어 주는 겁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항복하는 겁니다. 사랑은 때로 상대의 편안한 의자가 되어 주는 겁니다.
ⓒ 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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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사랑의 열병을 치료한다

사랑밖에 난 몰라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에 난 몰라

왜 새삼스레 심수봉씨의 옛날 고리짝 노래를 들고 나오느냐고요? 그 노랫말과 시인의 처방전이 다름이 없으니까요. 심수봉은 다른 건 필요 없다며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노래합니다. 박후기 시인은 사랑 때문에 생긴 병에는 '사랑의 처방전'밖엔 없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랑의 결핍으로부터 오며, 사랑의 결핍을 보충해 주는 방법 역시 사랑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시인에 따르면, 누구나 각자의 병명을 움켜쥐고 삽니다. 배가 아플 때는 배를 움켜쥐고 살고, 머리가 아플 때는 머리를 움켜쥐고 삽니다. '너'라는 이름의 병을 앓고 있을 때는 저린 가슴팍을 움켜쥐고 삽니다. 소위 사랑의 열병인 거죠. 그럴 때는 처방 또한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생각할 때 기쁨보다는 슬픔이 앞선다면 그 사랑은 분명히 어딘가 아픈 것이기에 '사랑'으로 처방해야 낫습니다.

사랑은 일종의 항복입니다. 사랑은 조건 없이 상대방에게 투항하는 것이고, 상대가 그걸 받아줌으로 행복하게 되는 겁니다. 끝없이 마음을 드러내는 행위가 사랑이고, 그런 사랑을 반복해도 질리지 않다면 여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질린다면 이미 사랑이 식은 겁니다.

사랑은 닻이 되기도 돛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은 비로 내려 창가에 드리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아픈 상처는 사랑이란 연고로 치료합니다.
 사랑은 닻이 되기도 돛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은 비로 내려 창가에 드리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아픈 상처는 사랑이란 연고로 치료합니다.
ⓒ 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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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안 생기는 사랑', 그런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런 건 없습니다. 서로 마음이 와이파이 터지듯 잘 터진다면 혹 상처라도 아물 수 있을 겁니다. '너'라는 연고가 있습니다. 사랑이 주성분인 '너'라는 연고, 그걸 상처에 바르면 낫겠지요.

'비로 내리는 당신'에서 시인은 "오늘 당신이 비가 되어 내렸으면 좋겠다"며, "내 마음이 젖거나 말거나" 비가 되어 내리는 '당신'이 유리창에 아슬아슬하게 물방울로 매달리면 상처가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사랑앓이의 내면에는 '당신'이 고픈 허전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듯, 사랑이 고프면 사랑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서라면 의자가 되기도 하고, 시소가 되기도 하고, 운동장이 되기도 합니다. 안테나가 되기도 하고 와이파이가 되기도 합니다. 흔들릴 때는 닻이 되고, 떠나고 싶어 할 때는 돛이 되기도 합니다. 가제트 팔이 되기도 하고 열쇠가 되어 닫힌 마음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문이 되기도 합니다.

올여름은 참 뜨거웠습니다. 세월호, 유병언, 지방선거, 재·보선, 쌀개방... 여름이 가을 뒤켠으로 물러가기 전에 앓던 열병을 치료해야죠? <그림약국>으로 오세요. 그리고 시인이 초청하는 곳으로 어디든 가세요. 무엇이든 되세요. 그러면 치유가 될 겁니다.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행복이 별 건 가요. 사랑 머금은 가슴을 소유하면 행복한 거죠. <그림약국>은 분명히 사랑을 머금게 해 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그림약국>( 박후기 지음 / 가쎄 / 2014.08 / 1만5000원 )



그림약국

박후기 글.그림, 가쎄(GASSE)(2014)


태그:#그림약국, #박후기, #그림처방전, #사랑의 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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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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