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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염수정 추기경에게 '프란치스코 교황 꽃동네 방문 반대'서한을 전달하려다 경찰에 막힌 장애인 인권 단체 회원들이 정리 기자회견을 진행중이다.
 지난 6일 염수정 추기경에게 '프란치스코 교황 꽃동네 방문 반대'서한을 전달하려다 경찰에 막힌 장애인 인권 단체 회원들이 정리 기자회견을 진행중이다.
ⓒ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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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내린 후 아침저녁으로 날이 선선해졌다. 다른 사람보다 몸 온도가 낮은 나는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다닌다.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부터는 온돌을 따뜻하게 데운다.

그간 비가 자주 내렸다. 더 내려서 땅의 가뭄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떤 신부는 교황의 한국 방문일이 다가오면서 여러 곳에서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비가 내릴까봐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셨다.

서로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똑같은 일도 다르게 생각한다. 그게 세상이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기는 사람들과 반기지 않는 사람들

꽃동네의 있는 장애인들 중 일부는 교황이 온다는 소식에 설레며 잠을 못 이루고 있다. 하지만 꽃동네에 10여 년 이상 살다가 독립해서 지금은 폐교에 공동체를 꾸린 여러 중증 장애우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장애인권 운동가들은 왜 하필 교황이 꽃동네에 가는지 의아해하며 아쉬워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꽃동네에 살면서 제일 싫었던 것이 힘 있어 보이는 방문객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올 때마다 심한 생리통 중이라도 나가야 하고, 정서기복이 심해 가만히 있고 싶을 때도 나가서 손님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더 많은 방문객들은 아낌없이 호주머니를 내맡긴다. 꽃동네의 여러 모습 중의 하나인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꽃동네의 전부라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

장애인인권운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한다.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오웅진 신부의 힘이다. 그는 400만 평의 땅을 소유한 채 기업형 장애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교황의 방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힘을 권력으로 본다. 교황 방문은 그 권력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기에 우려하는 것이다. 마치 교황이 청와대를 방문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와 권력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과 같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이 기정사실화된 지금, 꽃동네에서 교황의 강론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장애운동가들은 교황의 강론 중에 장애인들의 탈시설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한 마디라도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낮은 곳으로 향하려는 교황의 움직임을 이해한다.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고자 하는 교황의 뜻에 감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꽃동네에는 가톨릭 신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꽃동네를 방문한 교황은 다양한 마음의 장애인들을 그냥 한 종류의, 한 색깔의 사람들로 보지 않을까?

꽃동네 안에는 정말로 자신들이 원해서 보호받고 있는 사람과 자신들이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있는 사람이 섞여 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들어왔지만 지금은 사회에 다시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자신들의 장애를 당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직도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하고 보여주기 부끄러워 내적 갈등을 겪는 사람도 있다. 꽃동네를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루빨리 사회로 나아가 자립생활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꽃동네를 나온 사람들이 느끼는 소중함

성목요일 행사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
 성목요일 행사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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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는 꽃동네에서 집단으로 나와 금산의 폐교를 인수하여 자립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꽃동네에 살면서 자립을 꿈꾸었던 이들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현실에 부딪치며 다양한 문제도 생긴다. 주민들과의 관계, 경제적인 문제, 외로움과 일상생활의 어려움 등이 있었지만 하룻밤을 자며 그들과 대화해 보니 마냥 자립생활이 좋다고들 한다.

고즈넉한 시골 내음이 나고, 하늘빛이 참 아름다웠던 운동장... 동네 한 가운데 있던 그 곳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그들의 방을 들여다 봤다. 그들이 지은 시와 그림을 감상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휠체어를 밀어줬다. 같이 산책하면서 뭐가 그렇게 좋냐고, 왜 좋으냐고 다시 물었다.

공동체에 속한 장애인들은 원할 때 먹고 잘 수 있으며, 사람을 만나고 안 만나는 자유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권리들이 보장되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가끔은 스스로의 먹거리를 자족해야 해서 힘겹고, 그들을 도와주려 다가온 자원봉사자들이 그들을 이용하면 당황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이미 각오했던 것이다. 일상의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소박한 생활이 행복하다고 했다.

내가 매주 가는 교정시설과 국립법무병원의 사람들도 다양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금방 나온 따스한 보리빵을 먹고 싶은 사람부터 예쁜 머리핀을 하고 싶은 아가씨도 있다. 숲을 산책하고 싶고, 마음대로 내 방의 불을 끄고 켜고 하고 싶고, 언제든지 마음대로 물을 사용하고 싶다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자유를 희구하는 수용생들도 갇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꽃동네를 나와 금산의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살아가는 장애우 공동체의 자립은 점점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토론하고 갈등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지금은 다른 중증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돕는 멘토가 되기도 하고, 다른 공동체들의 집단 연수 장소가 되기도 한다. 

한때 장애인인권운동에 투신했던 나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교황이 한국에 온다는 것 자체가 행운처럼 여겨진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것은 그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를 향하든 이유가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이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 여부, 아전인수로 쓰여서는 안된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와 영국의 <인디펜던트> 등의 외신들은 얼마 전, 아르헨티나 <비바> 지의 페드로 칼보 기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행복지침 십계명'을 보도했다. 이 십계명은 <바티칸 뉴스 네트워크>와 <가톨릭 뉴스 서비스>에도 공개된 바 있다.

나를 뜨끔하게 하는 내용도 있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도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곧잘 권위적인 태도가 나온다.  명분을 내세우며 낮은 자들을 소홀히 한다. 하지만 이 십계명은 평범한 사람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깊이 다가오려는 '사람 내음'이 넘치는 내용이었다.

교황의 가르침은 이 행복 십계명에 잘 담겨 있다. 그는 항상 낮은 곳과 작은 것에 관심이 크다. 어려운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꽃동네로 향하는 것이다. 오웅진 신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를 두고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교황이 어떤 곳을 방문하느냐 안 하느냐를 두고 아전인수처럼 활용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사람 내음이 넘치는, 이 행복에 관한 내용을 <오마이뉴스>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1.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 되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라
누구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 로마에는 앞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두라는 속담이 있다.

2.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자신만 생각하고 살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3. 고요히 전진하라
친절과 겸손은 우리 삶을 고요하게 이끈다.

4. 건강하게 쉬어라.
우리는 예술과 문학을 향유하고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잃어버렸다. 소비주의는 우리에게 늘 걱정과 스트레스를 주고 건강한 여가 문화를 앗아가 버렸다. 식사 시간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 얘기를 나누라.

5.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라
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가족을 위한 날이기 때문이다.

6. 젊은 세대에 품위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으라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쉽게 마약에 빠지거나 자살을 선택하기 쉽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함께 창의적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7.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라
환경 파괴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스스로 묻지 않는 질문은 인간의 이 같은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환경 파괴가 인간 자신을 죽이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8.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은 자존감이 낮다는 뜻이다. 이는 '나 자신이 너무 비천하므로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릴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9. 타인을 개종하려 하지 말고 다른 이의 신앙을 존중하라.
우리는 대화를 통해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이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 모든 일 가운데 최악은 개종이다. 교회는 개종이 아니라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통해 사람들이 동참함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10. 평화를 위해 일하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 평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가 결코 아니다. 평화는 늘 앞서서 주도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태그:#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 #서예가 이영미 글,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 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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