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료사진)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자료사진)
ⓒ 해양경찰청 제공

관련사진보기


현장 총책임자는 당황했고, 구조능력을 갖춘 요원은 상황을 몰랐다. 그 결과는 '참사'로 이어졌다.

13일 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로 열린 세월호 선원들의 8차 공판에서는 '부실 구조'의 전모가 더욱 상세히 드러났다. 사고 당시 가장 먼저 도착했던 123정 관계자와 헬기를 타고 왔던 항공구조사 등 해양경찰 6명이 증인으로 나왔다.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김경일 123정 정장이었다. 그는 현장 총 책임자로 다른 해경들을 지휘하고 상부에 상황을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김 정장의 증인 신문이 가장 길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특히 검찰은 죄를 추궁하듯 그를 몰아붙였다. 김 정장은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퇴선방송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부실구조 책임을 은폐하려 했다는 이유로 긴급체포당했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 4월 16일 항해일지에 가짜로 퇴선방송을 해서 그걸 찢어버렸다고 인정했다(관련 기사 : 검찰 "세월호 탈출 안내방송했다고 해경 정장이 거짓말").

김 정장은 "죄송하다"는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방청석에 앉은 유가족들은 기가 막히는지 "어이고, 참"이라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몰랐다" "까먹었다"... 참사로 이어진 부실구조

4월 16일 오전 9시 3분께 해경 123정은 병풍도 인근 사고 해역으로 출동했다. 김 정장은 이미 목포해경 상황실로부터 '승객 450명(기자 주 - 최초에는 350명으로 통보됐으나 나중에 정정)이 타고 있는 여객선이 침몰 중인데, 선체가 45도가량 기울었다'는 얘기를 전달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갑판이나 바다에 누구도 나와 있지 않은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세월호 선체로 진입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잊어버릴 정도로.

검찰 : 서해해경지방청 상황실로부터 4월 16일 9시 48분경에 세월호 선체 진입 명령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
김경일  정장 : "네. 그때 제가 통신을 받았는데, 당황해서 깜박 잊어버렸다."

김 정장은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선체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센 조류 탓에 눈으로도 배가 밀리는 게 보여서 승조원들에게 올라가라고 할 수 없었고, 퇴선방송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교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출동 직후 123정은 세월호와 직접 연락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김 정장은 "항해팀장이 담당했는데, 16번 채널로 연락했지만 응답이 없다더라"고 말했다. "상황이 워낙 긴박해서" 다시 시도하라는 지시도 못 했다.

현장에서 함께 구조작업을 한 헬기 511호기와 512호기, 513호기와도 전혀 소통이 없었다. 13일 오전에 먼저 증인으로 나온 해경 항공구조사 4명은 모두 "세월호 승선 인원 등 배의 상황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상황실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은 기장들에게서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것만 전달받았을 뿐이란 얘기였다.

512호기를 탔던 권아무개 구조사는 지난해 4월 침몰 중인 중국상선에 들어가 선원 17명 전원을 구조한 경험이 있는데도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선내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 정보도 없었고,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구조는 바다에 떠있거나 배에서 못 내려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항공구조사들은 승객들이 배에 갇힌 상황을 알았고, 진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어떻게든 시도했을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 상황 몰랐다"던 해경, 물어보지도 않아

그런데 사고 당시 123정에 현장 지휘권한이 있던 만큼, 김경일 정장은 구조작업을 지시하고 상황을 알려줘야 했다. 그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헬기가 상공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더 낫다고 보고 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511호기와 두 차례 교신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다시 시도하거나 다른 헬기에 연락하지 않았다. 또 자신의 판단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자료사진)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자료사진)
ⓒ 해양경찰청 제공

관련사진보기


김 정장은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 부담스러운지 부정확한 진술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했다. '퇴선방송은 못 했지만 고무보트로 세월호에 가장 먼저 접근한 해경들이 큰 소리를 질렀고, 부정장이 올라가라고 말했다'던 증언을 두고 검찰과 재판부가 "누가 말한 것인가, 본인이 직접 들었냐"고 따져 묻자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전해 듣거나 동영상에서 확인한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임정엽 부장판사는 "정확히 얘기하지 않으면 위증죄에 걸린다"고 경고했다.

유족들과 함께 재판을 방청한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특별위원회 김종보 변호사는 구조사들의 책임도 지적했다. 그는 "중국상선을 구조했던 권 구조사의 경우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배에 17명이 탔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중에 인원수도 확인했는데 왜 세월호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냐"며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똑같이 '몰랐다'던 다른 구조사들도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선원들의 변호인도 이 대목을 의아해했다. 재판부는 해경 헬기가 당시 침몰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장 3명을 모두 증인으로 채택했다.

한편 이날 오후 법원행정처는 '다음 기일부터는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으로 재판을 중계하겠다'는 재판부의 결정을 승인했다. 유족 대부분이 안산에 거주하는 만큼, 이들의 원활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세월호 선원들의 9차 공판은 8월 19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태그:#세월호, #해경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