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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고 김동혁군 어머니 김성실씨.
 세월호 희생자 고 김동혁군 어머니 김성실씨.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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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혁이가 추석 같은 명절을 항상 기다렸어요. 중 3때 처음 명절이란 걸 겪어봤거든요. 맛있는 음식들이 많잖아요. 어른들이 용돈도 주고. 고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산적같은 거는 아예 100% 고기니까..."

하루에 여섯 끼씩 밥을 먹던 아들의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기억을 떠올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촉촉히 젖어들었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고 김동혁군의 엄마 김성실씨(50)다.

김씨는 김군과 가족이 된지 3년만에 아들을 잃었다. 당사자는 슬픔과 죄책감에 가슴이 찢어졌지만 '새엄마' 유가족을 바라보는 세간의 표정은 묘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정 식구들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씨는 7일 만난 기자에게 자신이 추석에 할 '임무'에 대해 털어놨다. 명절날 모인 친정 식구들에게 부탁이든 설득이든 해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지지해달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김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아이들이 더 이상 죽지않게 하려면 세월호 참사 진상을 규명해서 꼭 바로잡아야 하고 그럴려면 제대로 된 특별법이 필요하다"면서 "주변 사람들을 좀 설득해달라"고 호소했다.

새엄마 거리로 나서게 한 아들의 "엄마 사랑해"

세월호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17일째 노숙중이다. 쇠파이프 몇 개 위에 김장비닐을 덮고 검은색 망사 비닐로 햇볕을 겨우 가린 지붕 아래서 유가족 20여 명이 먹고 또 잔다.

추석을 앞둔 농성장에는 먹을거리가 제법 풍성했다. 이날 오전에는 부천의 한 시민이 "달리 할 게 없어서 죄송하다"면서 중동시장에서 사온 문어 숙회 10만 원 어치를 놓고 갔다. 종로에 있는 '함께 여는 교회'에서는 밥 40인분을 가져왔다. 송편 등 추석 음식을 들고오는 사람도 상당했다.

유가족들은 "가져오시는 음식들은 거의 다 먹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10년 치 먹을 송편을 이틀 동안 먹고있다"며 유쾌한 너스레를 떠는 유가족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한 상실감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계절이 기억을 부르는 탓이다. 최근 농성장의 유가족 어머니들은 느닷없는 눈물을 쏟아야 했다. 농성장 인근에 위치한 경복고등학교 여름 교복이 단원고와 거의 비슷한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실씨는 추석 얘기를 하다가 동혁군 얘기를 꺼냈다. 친가와 왕래가 없던 동혁군은 김씨를 새엄마로 맞은 후에야 친지들이 모이는 명절을 처음 체험했다. 김씨는 "동혁이가 처음 추석날 외가에 가고서 너무 좋아했다"면서 "설이나 추석때는 항상 하루 먼저 가서 자면 안되느냐는 얘기를 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정말 착한 아이였거든요. 어른들을 엄청 따르고 좋아했어요.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신데 가서 간호도 해드리고. 학교에서도 뭐 먹을 게 생기면 수위아저씨하고 나눠먹을 정도로요."

그와 김군의 사이는 각별했다. 동혁군은 배가 가라앉기 전 휴대전화에 "엄마 사랑해.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내동생 어떡하지?"라는 내용의 영상메시지를 남겼다. 김씨는 "새엄마가 유가족 활동을 열심히 하면 어떤 눈총을 받을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동영상 생각을 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추석 하루 전인 7일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 세월호 참사 유가족 농성장. 유가족들이 농성장을 방문한 천주교 성직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추석 하루 전인 7일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 세월호 참사 유가족 농성장. 유가족들이 농성장을 방문한 천주교 성직자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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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만 제대로 알려지면 진상규명 공감할 것... 도와달라"

사고 이후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희생자 유가족들은 뭉쳤다. 김씨 역시 언론 인터뷰, 공개발언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의 필요성과 도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김씨에게는 말 못할 고충이 또 있었다. 친정 식구들이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김씨는 "이해가 간다"는 말부터 했다. 자신과 핏줄이 직접 닿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공감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얘기하는 시민들도 비슷한 심경 아니겠느냐"는 게 그의 말이다.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를 잘 아는 김씨가 먼저 움츠러들기도 했다. 그는 최근 유가족 활동을 하느라 매달 3~4차례 가던 친정어머니 병문안도 2달 동안 가지 못했다. 김씨는 "친지들에게 '어지간히 하면 안되나', '목욕탕 가면 할머니들이 다들 '박근혜 불쌍하다고 한다'는 말도 들었다"면서 "그런 말을 들으면 힘들지만 사실 집안에서 1남 3녀의 막내라 더 얘기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랬던 김씨에게 용기를 준 것은 그가 새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한 시민은 그에게 "여태껏 새엄마 밑에서 자랐다는 얘기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김성실씨를 보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쪽지를 보내왔다. 자격지심에 자신이 새엄마라는 것을 철저히 숨겼지만 이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고백도 있었다. 자식 사랑은 핏줄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날 오후 7시께 농성장을 떠나며 기자에게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 명확히 밝히기 위해 내 주변부터 설득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추석인 내일, 친지들에게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취지와 내용을 설명하고 지지를 부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시민들도 주변에 유가족 활동을 안 좋아하는 분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설명해달라"고 호소했다.

"사실 우리끼리는 세월호 참사가 사고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말해요. 유가족들은 보상금 얘기 한적도 없는데 아직도 '보상금 많이 받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사실만 제대로 알려지면 진상규명은 다들 공감할 거라고 믿습니다. 시민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세월호 , #유가족, #김성실, #진상규명,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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