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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광화문 세월호 단식투쟁 현장은 여러모로 번잡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응원 차원에서 방문한 사람들도 많았고, 단식투쟁에 반대의사를 드러낸 일간베스트 회원과 보수단체도 대거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폭식투쟁'이라 스스로 이름 붙인 '피자 파티'가 광화문 귀퉁이에서 벌어졌고, 일베 회원들이 굶주린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치킨과 피자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뜻 보자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주장을 펼친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 차이가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쪽엔 목숨을 걸고 40일간 굶주림을 견딘 사람이 있던 반면, 다른 쪽에선 배부른 파티를 벌이고 끝낸 것이다. 또한 세월호 유가족은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는 일에 거리낌 없었지만, '피자 파티'에 참여한 일베 회원들은 사진 촬영에 큰 거부감을 보였다. 이렇듯 사안을 접하는 태도를 관찰해보면, 양측이 기계적인 균형을 이루었다고 하기에는 그 무게감이 민망할 정도로 대조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날 인상적인 장면이 또 하나 포착되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미디어워치>의 변희재 대표와 홍가혜씨가 마주친 상황이 바로 그것이었다. <서울의 소리>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홍가혜씨는 자신의 불처벌 탄원서를 써준 세월호 유가족에게 감사의 뜻과 안부 인사를 전하고자 했다며 광화문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홍가혜와 변희재를 바라보는, 다르면서도 닮은 반응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명예훼손' 사건 선고공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법정을 나온 변 대표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 '김광진 의원 명예훼손' 징역형 선고받은 변희재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명예훼손' 사건 선고공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법정을 나온 변 대표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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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대조적이면서도 닮아있었다. 보수 지지층은 "MBN에서 거짓인터뷰를 했던 홍가혜가 나타났다"면서 재판 중인 홍씨의 발언의 신빙성을 이유로 세월호 유가족 측의 주장까지도 동시에 폄하하는 이들이 많았다. 반면 진보진영 지지자들 일부는 "변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한 홍가혜씨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홍씨에 대한 변희재 대표의 발언이 사실여부와 관련하여 문제된 적이 많았음을 지적했다.

양측의 반응은 일견 수긍이 되는 부분도 있다. 홍가혜씨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이틀 뒤인 4월 18일에 MBN <뉴스특보>에서 민간잠수사의 신분으로 인터뷰를 한 바 있다. 해당 인터뷰에서 그는 아직 선박 안에 생존자가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정부측의 통제로 민간잠수사들이 수색작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인터뷰 직후, 홍씨가 잠수자격증을 보유하지 않은 것이 밝혀지면서 MBN 보도국장이 직접 해당 보도에 대해서 시청자에게 사과발표를 했다. 언론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사안을 기사로 내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해경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홍씨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그는 4월 23일 구속됐다. 100일 정도 수감된 홍씨는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다.

변희재씨는 더욱 가관이다. 지속적으로 야권 인사에 대한 비난을 일삼았고, 결국 변씨에 대한 법적 처벌 선고가 이어지고 있다. 변씨는 김미화씨에게 '종북친노좌파'라 근거없이 발언했다가 지난 8월에 1300만 원의 손해배상을 판결받았고, 4일에는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그 외에도 변씨의 발언을 둘러싸고 많은 재판이 뒤따르고 있다.

두 사람의 참여를 계기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 관련 양측의 찬반 주장에 대한 비판도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진상조사를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변희재씨와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고자 동조단식 현장을 방문한 홍가혜씨를 상대진영 주장에 반대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발언의 거짓논란을 일으킨 전례가 있는 사람이 찬반 주장에 동조하니, 주장 자체가 신빙성을 잃는다는 논리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고방식

물론, 두 사람의 발언과 태도를 같은 무게로 바라보려는 생각은 없다. 비록 수차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으로 지탄을 받은 것은 홍가혜씨도 마찬가지지만, 지속적으로 근거없는 비난과 '종북좌파' 발언으로 연이은 법적 처벌을 판결받은 변씨와는 분명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기다 홍씨는 세월호 유가족으로부터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담긴 탄원서를 받기도 했다.

다만 두 사람이 광화문에 등장한 날, 양쪽 지지층의 발언을 보자면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사안을 바라보면서, 경계해야 할 사고방식 말이다. 물의를 일으켰던 두 사람의 발언의 진위여부와 문제성은 이미 재판에 넘겨진 상태이므로 법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발언으로 인한 사람들의 반응은 사회적인 현상으로 연결될 것이기에 이 부분을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부각되는 문제점으로 '진영논리'를 거론할 수 있다. 발언의 내용은 제쳐두고, 화자의 정체성을 우선적으로 인식하여 이중잣대로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자세를 말한다. 변희재씨가 했던 '종북좌파' 발언이 사실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운 진보진영'을 비난한 것이기에 속시원하다는 반응이 그렇다. 또한 홍가혜씨의 인터뷰 내용이 '당시에 그저 진도 현장과 인터넷에서 접한 것을 취합한' 것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진 것과 일부 일치한다며 지지하는 이의 자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듣고싶은 말만 선택하여 들으려는 '확증편향'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에 부합하는 말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것들은 간단히 무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사안의 진위여부보다 '피아식별'을 우선시한다면, 진실성이 떨어져도 원하는 내용에 맞는 극단적인 정보만 믿으려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 이후에는 양측이 주장하는 내용의 간극이 더욱 벌어져서 타협점을 찾는 일도 힘들어진다.

그리고 대중의 의식이 이런 방향으로 짙게 흘러간다면, 구체적인 근거와 사실성 같은 요인에 중점을 두기보다 대중이 원하는 말만 하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도 있다. 수요가 늘어난만큼 흑색선전을 공급하려는 집단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세월호 참사 피로도'가 증가하면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카톡으로 마구 유포된 유언비어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광화문에 나타난 홍가혜씨, 과연 환영할 사람일까

MBN 홍가혜 인터뷰
 MBN 홍가혜 인터뷰
ⓒ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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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가혜씨가 애초 MBN의 오보를 낳았던 문제의 발언으로 되돌아 가보자.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3일째가 되던 날, 구조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는 듯하던 상황은 그녀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르고 발언의 일부는 사실로도 드러났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잣대로 홍씨의 발언이 적절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답하기 쉽지 않다. 누군가 제기해야 마땅했던 문제를 대신 발언한 것이라고 옹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당위성이 충분한 근거없이 이루어진 주장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홍씨는 광화문 동조단식 현장을 방문하고 지지의 뜻을 드러냈지만, 이것만으로 그녀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기엔 성급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장방문과 지지는 누구나 가능한 것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큰 오보를 만들어낸 행위에 대한 책임과 자성이 더 무겁게 이루어져야 마땅한 일이다.

'애국보수' 진영에서 자극적인 언사로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변희재씨. 그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대척점에 서있는 홍가혜씨를 적극 두둔하고 심지어 영웅이라는 묘사를 하는 누리꾼들도 보인다. 과연 광화문에 나타난 홍가혜씨가 환영받을 인물일까? '우리의 뜻과 같은 말을 했으니 아군'이라 하기 전에,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수진영이 하고 또 듣고싶은 말을 대신 하는 변씨를 '일베'를 필두로 한 극우진영에서 열심히 추켜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진보진영에서는 홍가혜씨를 두고 어느 지점에서 선을 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정확한 표현으로는 변희재씨나 일베의 발언과 단지 정반대의 뜻이라는 이유로 지지를 보내는 태도를 거두어야 할 일이다. 세월호 참사라는 충격적인 사건과 더불어 많은 사안을 접하는 우리의 자세는 '아군(으로 여겨지는 사람) 챙기기'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생각하는 쪽이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태그:#변희재, #홍가혜, #일베, #세월호 참사, #확증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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