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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천 산소길. 사진이 눈에 맞지 않은 안경을 쓰고 바라본 세상 처럼 뿌였게 보였다. |
ⓒ 신광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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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포커스를 A(오토)로 해 놨어야지, 지금 M(메뉴얼)으로 되어 있잖아."난 카메라에 대해 잘 모른다. 기계치다. 정확히 말하면 작동 법에 대한 설명서를 꼼꼼히 읽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카메라를 구입한 지 벌써 3년째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자동으로 놓고 찍는다. "카메라는 좋은데 유저(사용하는 사람)가 형편없네요"라는 말에 자극을 받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나름대로 렌즈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카메라 기능시험도 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동모드가 편하다.
북한강 안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지난 12일 일요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다. 전날 산책길에 보았던 산소길 안개 때문이다. 새벽안개를 품고 물위에 떠 있는 폰툰다리는 마치 천국의 계단 같았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새벽 풍경을 담았다. 어제보다 빨리 와서인가 산허리를 감은 안개가 내려올 줄 모른다. 우두커니 넓적한 바위에 앉아 한 시간을 안개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추위에 손가락이 곱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점퍼라도 걸치고 올 걸 그랬다.
안개가 내려오는 건가. 아니면 물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올라가는 건가? 북한강은 이 시기만 되면 유독 분주하게 안개를 만든다. 따뜻한 물 온도보다 밖의 공기가 차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지나 수온이 (공기온도 보다) 차가워질 즈음이면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북한강 안개는 민감하다.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일이 없다. 바람이나 기온, 물의 온도에 따라 달라진다.
산소길, 언제 봐도 예술이다'안개 보긴 틀렸다'라는 생각이 들 즈음 '물위 도로'라 불리는 산소길을 걸었다. (안개의 연출이 없어도) 어느 곳에 서도 사방이 예술이다. 마치 내가 물위를 걷는 느낌이다.
물위에서 (노숙이 아닌) 수숙을 했는지 물오리들의 표정이 까칠하다. 한 번쯤 쳐다볼 만도 한데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눈길 한 번 주질 않는다. 불현듯 물오리들에게 무시당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녀석들은 내게 푸드득거리는 날갯짓을 선사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물오리의 몸짓이 활발했다.
물위 폰툰다리를 걸으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담았다. 행여 놓칠세라 뒤돌아서 카메라 셔터 누르길 수십 번. 아마 100여 컷은 찍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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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소길 끝 부분에 누군가 노란 트를 설치했다. 사진이 흐릿해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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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춥지 않으셨어요?"어느 관광객이 폰툰교 위에 텐트를 쳤다. 인기척에 고개를 빼꼼 내민다. 텐트 때문에 몸을 비틀어야 지나갈 정도로 비좁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해야 맞다. 낯선 사람은 '늦은 밤에 도착해 이곳에 잠자리를 마련했고 이제 떠날 겁니다'라는 표정이다. 아침 인사를'춥지 않았느냐'로 대신했다.
산능성을 넘어온 햇살. 술렁이던 작은 파도들이 마치 자신들의 고유 빛 인양 뽐냈다. 서로들 잘났다고 반짝인다. 이 또한 자연이 선사한 선물이다. 연신 셔터를 눌렀다.
얼마나 멋지게 찍혔을까. 무심코 촬영한 사진을 살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뭔가! 사진들 모두 초점에 맞지 않은 안경을 끼고 본 세상처럼 흐릿했다. 렌즈를 닦아도 여전히 똑같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서 카메라가 고장 났구나! 일순간 '이렇게 쉽게 문제가 생기는 카메라인 줄 알았으면 괜히 샀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휴대폰을 가져올 걸 그랬다.
찍히는 사람이 얼마나 쪽팔릴까5년 전 화천군청 홍보계장 시절. 카메라를 한 대 샀다. 성능은 중요하지 않았다. 본체가 컸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샀다.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기관장들을 앞에 두고 집에서 쓰던 조그만 카메라(똑딱이)를 들이댔다. 군청에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직원이 있다. 그런데 휴일엔 늘 행사가 겹쳤다.
'찍는 사람이 쪽팔린데, 찍히는 사람이야 오죽할까'기자들이 들이대는 대포 같은 카메라와 똑딱이 앞에 선 사람들 표정이 다르다. 사진을 찍는 내내 괜스레 미안했다. 커다란 카메라를 사자. 어느 TV 홈쇼핑에 시선이 멎었다. 까맣게 생긴 큰 카메라가 40만 원이란다. 망원렌즈까지 포함한 가격. 즉석에서 저질렀다.
이후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었다. 순전히 찍히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 역시 큰 카메라 앞에선 기관장들 표정이 달랐다.
그 놈의 M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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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렌즈모드가 M으로 되어 있어서 사진이 모두 엉망이었던 거다(붉은색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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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 카메라 살래?"'기왕이면 카메라도 크고 사진도 잘 나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아들 녀석이 자신이 쓰던 카메라를 사라고 제안했다.
"아빠 카메라를 내게 주는 조건으로 내 것을 60만 원에 팔게."120만원에 산 카메라를 3년이나 써 놓고는 반값을 요구했다. 그냥 줄만도 한데 짜식은 흥정이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녀석이 돈은 어디서 났겠나. 내가 준 용돈으로 (아들이)산 것을 또 내가 사야하는 불합리한 현실. 어쨌든 아쉬운 건 나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야했다. 그런데 녀석은 왜 형편없이 크기만 한 내 카메라를 판매조건에 넣었을까. 나와는 다르게 매사에 꼼꼼한 아이는 '아빠가 기능을 제대로 활용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사용방법 설명 안 들어도 돼?"나도 자존심이 있다. '그까짓 설명 안 들어도 알 수 있다'는 불쾌한 표정으로 대꾸도 안 했다.
"아니 렌즈 포커스를 M으로 놓았으면 수동으로 조절을 해야지 그냥 버튼만 눌렀냐? A(오토)모드 몰라? 그러니까 사진이 이 모양이지."녀석이 카메라 사용법을 알려 준다고 했을 때 들었어야 했다. 다음 주말, 다시 새벽에 산소길을 촬영하러 가야한다. M이 아닌 A모드를 확실히 기억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