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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 카톡'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메신저 '카카오톡'의 사용자가 크게 줄어들고, 그와 동시에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의 가입자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중이다. 지난 14일 발표된 내용을 보면, 최근 카톡 사용자는 20만 명 이상 줄어들고 같은 시기에 텔레그램 가입자는 200만 명을 돌파했다. 언론과 누리꾼들 사이에서 '사이버 망명'으로 불리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단순한 '메신저 갈아타기'가 아니라 '망명'이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거 이동 중인 사람들의 반응이 단순히 '유행'을 따르는 것을 넘어섰다. 국내 메신저인 카카오톡이 공권력의 감청 요구에 응하여 사용자의 대화내용 등을 비롯, 많은 양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겨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해당 메신저는 '압수수색 영장'이 아닌 '감청 영장'에 사용자의 정보를 너무 쉽게 넘겼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사용자 보호에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던 중, 해외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이 '수사기관의 요구에도 사용자의 개인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며 비교됐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새로운 온라인 터전으로 삼아 옮겨가기 시작했다. 다수의 사용자들은 항의의 표시로 카카오톡을 직접 탈퇴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를 SNS에 '인증'하기도 했다.

'온라인 검열' 논란으로 확산된 '사이버 망명'

대세로 이어진 '사이버 망명'의 배경을 살펴보면, 단순히 호기심에 텔레그램 이용자가 된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 '(국내 메신저에 대한) 불안'의 심리가 짙게 깔려 있다. '카카오톡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카톡에 정부 비판이라도 적었다가 수사 대상에 오르면 어쩌나"하는 요지이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발생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 대한 수사당국의 검열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날 이 공동대표는 카카오톡 검열 논란과 관련해 "감청 영장에 대해 지난 7일부터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응하지 않을 계획이다"고 밝혔다.
▲ 검열 논란에 고개 숙여 사과하는 이석우 공동대표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발생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 대한 수사당국의 검열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날 이 공동대표는 카카오톡 검열 논란과 관련해 "감청 영장에 대해 지난 7일부터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응하지 않을 계획이다"고 밝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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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진화에 나섰다. "수사기관의 감청영장 집행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버의 대화내용 저장기간을 2~3일로 축소하겠다고 방침을 변경한 것에도 비판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자 나름의 강수를 둔 셈이다.

같은 날, 김진태 검찰총장도 해당 사안에 대해서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14일 열린 대검 간부회의에서 김 총장은 "중요범죄에 한하여 법원의 영장을 받아 (카카오톡 등의) 대화내용을 사후적으로 확인할 뿐"이라며 "실시간 감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발언했다. 또한 사이버 검열 논란이 지속되는 것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간부들에게 논란 해소를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처럼 '온라인 검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된 것은 지난 9월 대검찰청 형사부의 주최로 열린 범정부 대책회의 문건이 공개되면서였다. 9월 18일 열린 이 회의에는 '사이버 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단'을 목적으로 미래창조과학부와 안전행정부 등의 정부기관을 비롯해 방송통신위원회와 카카오, 각종 포털 서비스 업체가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공개된 '범정부 대책회의' 문건, '인터넷 감시·제재' 우려된다

지난 13일, <경향신문>이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정부기관이 포털사와 '핫라인을 구축'해 '실시간 인터넷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조회수가 급증하는 게시물을 감시하고, 특정 단어를 입력·검색하면 적발하겠다는 것이 문건의 주요 내용이었다.

검찰이 주관하고 카카오와 포털 서비스가 참여한 이 회의가 '인터넷 여론 통제를 위한 검열체제'를 구축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정 키워드'를 단속하겠다는 발상과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게시물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겠다는 자세는 '온라인 사찰'이 아니냐는 의문도 이어졌다. 보도자료에 빠져있던 비공개 문건에는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의 활동과 더불어 처벌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우려는 더욱 크다.

검찰이 포털사와 방심위에 직접 게시물 삭제 요청을 하겠다는 것도 민간기관에 대한 암묵적 압력 행사로 비춰질 수 있다. 또한 온라인 게시물을 제재하는 과정에서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불구속 기소와 다음 아고라 대통령 비판글 등 최근 이어지는 처벌 사례들을 보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난이 주된 처벌 대상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정부와 수사기관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에 '사이버 명예훼손' 수사를 강화하려는 상황은,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구절이 담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떠오르게 한다. 본문 속에서는 시민 감시의 도구가 '텔레스크린'이었는데, 현재 누리꾼들이 선택한 검열의 탈출구가 흡사한 이름의 '텔레그램'이라는 사실이 묘한 우연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명칭이지만 역할은 정반대이지 않은가.

관련기사가 보도되고 다음날 있었던 김진태 총장의 발언도 검찰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톡 감청' 논란에 대한 해명이 있었을 뿐,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기에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서 '사이버 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지만, 검찰의 최근 행보에 대한 의심이 수그러질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았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실시되는 '여론 통제', 그 향방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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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주최한 당시 회의는, 문건에서도 드러나듯이 대통령의 발언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급된 내용은 9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말하며 엄단을 지시했다. 이후에 벌어진 대규모 카톡 탈퇴와 '사이버 망명'의 흐름, 온라인 검열 논란은 모두 대통령의 한 마디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원할 때 언제든지 메신저 대화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논란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에도 보도되며 국격을 실추 시켰다. 결국 IT강국 중 하나로 인식되던 한국과 국내 기업들의 이미지도 후폭풍으로 동반 추락하고 있다. 또한 누리꾼들 사이에서 카카오톡은 '가카의톡'으로 불리며 절대적인 인기 메신저의 지위도 잃어가는 중이다. 단순히 인식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사용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결국 '사이버 망명'에서 '온라인 검열'로, 그 전의 '온라인 감청 논란'으로 되짚어 나갈수록 사회적 현상의 근본 원인이 드러난다. 그것은 집권세력의 권위주의, 즉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비판의 원인을 찾고 수정하며 발전하려는 노력이 결여됐다. 비판여론 자체를 없애겠다는 태도는 정치인이 드러낼 수 있는 자세로 적절하지 않다.

박 대통령은 위기관리의 일환으로 뛰어난 잠수능력을 선보인다. 세월호 유족을 비롯한 국민과 소통해야 할 시기에는 응답하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비판이 발생할 때에만 수면 위로 올라와 분노를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언급에 곧바로 검열체제 구축을 시도하는 정부와 수사기관도 비판의 도마에 올라야 한다. 정부를 향한 그들의 과잉충성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면, 보수진영이 자랑하던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도 '민주'도 남지 않을 것이다.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1984>의 이야기가 과연 2014년의 한국의 현실에서 재현될까? '빅 시스터'가 지켜본다는 불안이 해소되려면, 압수수색 과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더불어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원활한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여론통제 논란으로 정부와 수사기관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해외 메신저로의 탈출'이라는 격한 반응을 드러내고 있다. 떠나간 이들이 돌아올지 여부는 '외양간'이 세워진 밑바탕, '국가에 대한 신뢰' 회복이 결정할 것이다.


태그:#사이버 망명, #온라인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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