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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해제

제목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이양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 연해에 18세기 말부터 낯선 모양의 배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 조선인들은 이 배들을 모양이 다른 배, 곧 '이양선(異樣船)'이라고 불렀다. 이 이양선은 일찍이 산업혁명을 일으켜 부국강병을 이룬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등 서구 열강의 군함이거나 무장한 상선이었다.

 

이양선의 조선 연해 출현은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의 세력이 동양으로 점점 밀려 옴)의 '쓰나미' 현상이었다. 마침내 조선반도에도 검은 먹구름이 잔뜩 몰려 왔다. 그러나 조선정부는 이 이양선의 실체도, 지구 반대편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전혀 몰랐다.

 

조선은 건국 이후 오로지 중국의 '중화사상(中華思想, 중국인들이 자기 민족을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을 신주처럼 받들었다. 조선은 그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 '소중화(小中華)'에 자만자족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런 가운데 지배계층은 세계의 시대 변화는 전혀 읽지도 못한 채 깊은 봉건의 늪에서 안주하며, 마냥 백성들 위에서 군림, 수탈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조선정부는 이양선에 장착된 대포의 무서운 화력은 모른 채, 나라의 문만 걸어 잠그면 그들이 순순히 물러갈 줄 알았다. 당시 고종을 대신하여 섭정했던 대원군은 외세의 침투를 막고자 국방을 강화한 채, 열강의 통상을 거절하고 서양 상품의 유입을 엄금했다.

 

또한 대원군은 천주교의 전래를 대대로 탄압(1866, 병인박해)했다. 이에 프랑스가 함대를 파견하여 강화도를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하자 대원군은 이를 격퇴(1866, 병인양요)했다. 대원군은 신미년(1871)에도 강화도에서 미국 함대를 물리친 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척화비를 전국 각지에 세우고, 서양의 수교를 단호히 거부했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보다 먼저 미국 페리 제독의 강압에 굴복하여 개항했다. 그들은 개항 이후 서구로부터 선진문물을 과감히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룬 뒤, 수백 년 동안 오매불망 그리던 대륙진출의 야망을 실행에 옮겼다. 그 첫 대상이 조선이었다. 일본은 1876년 '운요호'를 앞세워 그들이 미국에게 당한 것처럼 무력으로 조선을 위협했다.

 

마침내 조선이 이에 굴복하여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자 그들은 임진년에 이어 300년 만에 다시 조선 침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조선 정부는 일본에 이어 서구 열강의 통상요구에 줄줄이 굴복, 마침내 굳게 닫힌 쇄국의 문이 열렸다. 조선은 '임자 없는 포도밭'으로 열강들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갑오동학농민혁명

 

개항 전후, 서세동점의 높은 파도 앞에 나라 안 모든 백성들이 똘똘 뭉쳐도 헤쳐 나갈 수 없었던 처지에도, 지도층과 탐관오리들은 여전히 백성 위에 군림하며 가혹하게 수탈했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전봉준은 인근 동학 접주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려 '제폭구민(除暴救民, 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한다)'·'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의 창의 깃발을 내걸고 농민군을 조직했다. 동학 농민군이 승승장구하며 전주까지 함락하자 조선 정부는 앞뒤 생각도 없이 불쑥 청(淸)나라에 원병을 요청했다.

 

이에 청나라는 즉각 군사 1500명을 아산만에 상륙시켰다. 그러자 일본도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톈진조약을 구실로 재빨리 군사를 군함 2척에 실어 조선에 파병했다. 그 사이 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는 전주화약이 성립됐다. 하지만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는 조선의 허락도 없이 막무가내로 육전대 420명과 포 4문을 이끌고 서울에 입경, 육군소장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도 보병 3000명과 기병 300명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했다. 그런 뒤 일본은 조선 지배의 우위를 차지하고자 우리 땅에서 청나라와 한판 붙을 전쟁의 구실을 찾는 데 혈안이 됐다.

 

1894년 6월, 일본은 마침내 청일전쟁을 일으켜 열강의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조선은 비로소 500년에 걸친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자주국으로서 햇볕은 잠시뿐이었다. 곧 일본의 침략 마수가 조선반도에 뻗쳤다.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청나라 세력을 조선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복병 러시아가 슬그머니 이를 견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을미사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독일 등 '삼국간섭'에 의해,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시모노세키 강화조약으로 삼킨 요동반도를 도로 게워 놓게 됐다. 이에 조선 정부는 일본의 침략을 저지코자 러시아를 끌어들이려 했다. 일본은 그간 조선에서 확보한 지위마저 잃게 될 것을 우려했다. 결국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의 검객과 낭인들은 궁궐 경복궁을 침범하여 삼국간섭의 중심인물이었던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미우라 고로의 치밀한 기획 아래 시행된 이 '여우사냥' 작전이었다. 그의 하수인 검객과 낭인들이 황후 침전인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했다. 그런 뒤 그 시신마저 경복궁 뒤뜰 녹원 솔밭에서 석유불에 태워 버리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전국의 유생들은 분기충천하여 일본인을 비롯한 친일관리를 처단하고자 을미의병을 일으켰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고종은 신변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에 나섰다. 일본은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그런 가운데 러시아는 의화단 사건으로 만주를 점령했다. 1903년, 일본은 러시아에게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가 이를 거절하자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결심한다. 일본은 1904년, 이미 중립을 선언한 조선에 대규모의 군대를 상륙시켜 서울을 점령했다. 조선 정부는 일본 점령군의 압력에 굴복하여 같은 해 2월 23일, 경술국치의 단초가 되는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일본이 승리했다. 일본은 미국이 중재하는 '포츠머스 강화조약'에서 러시아에게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인정케 했다. 이어서 일본은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을 맺었다. 그 골자는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일본은 조선침략을 위한 대외정지작업이 끝나자, 곧바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서울로 보냈다. 무력을 앞세운 위협과 회유로 1905년 11월,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한일협약' 곧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이에 격분한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다시 창의의 깃발을 드높였다. 왕산 허위는 앞선 을미의병과 뒤 이은 을사의병 창의에 모두 앞장섰다. 1896년 3월, 상주와 선산 유생들은 이기찬을 대장으로 추대한 '김산의진'을 일으켰었다. 허위는 그 당시 참모역을 맡은 경험이 있었다.

 

1905년 1월, 허위는 일본의 죄상을 들어 국내에 격문을 뿌린 죄목으로 일본헌병사령부에 투옥됐다가 강제로 귀향 조치를 당했다. 허위는 경상·충청·전라의 경계인 삼도봉 밑 지례에서 은거하던 중 그해 11월에 망국조약인 을사늑약 강제체결 소식을 들었다. 이에 허위는 열혈 의분을 참을 수 없어 비로소 본격적인 의병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는 일찍이 사마천이 말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진 재상을 생각하게 된다(國亂思良相)"라는 그 충절을 몸소 실천하고자 하는 시대의 명령이요, 양심의 명령이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태그:#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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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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