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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또 다시 만나요~."

8월 강화합숙훈련과 함께 시작된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10월 18~24일)의 긴 여정이 모두 끝났다. 전국에서 모인 휠체어럭비 국가대표팀의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2주 후의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기약하며 아쉬운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었다.

나 역시 두 달 반이 넘는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즐거움을 선사해준 동료들을 뒤로한 채 8년의 휠체어럭비 인생에서 제일 값지고 의미있는 은메달을 목에 걸고 집으로 돌아왔다.

14년 전 고등학생 때 오토바이 사고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의 휠체어럭비 경기에서 한국팀 선수들은 준우승을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은 경기 뒤 우승을 차지한 일본팀 선수들과 함께 한 모습.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의 휠체어럭비 경기에서 한국팀 선수들은 준우승을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은 경기 뒤 우승을 차지한 일본팀 선수들과 함께 한 모습.
ⓒ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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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평범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얻은 장애는 더 이상 내 삶을 평범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척수손상, 사지마비 1급 지체장애. 예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자유롭지 못한 몸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1년 동안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을 했지만 집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탄 불편한 몸만큼이나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 것들이 있었다. 바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부정적인 시각들이 그것이었다. 물론 나약해진 나의 마음 또한 나를 집 밖으로 향할 수 없게 만든 큰 벽이 됐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시간이 흐를 수록 나는 삶에 대한 자신감을 더 많이 잃었고, 불안과 방황으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장애를 인정하자'라는 생각을 하니 그 다음 세상이 보였다. 그러다가 아는 분의 소개로 휠체어럭비를 접하게 되었다. 체육관에서 처음 본 휠체어럭비는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몸이 불편한 여러 선수들은 찌는 듯한 여름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흘리며 열심히 운동을 했다.

넓은 코트 위를 빠르게 달리며 공을 주고받고, 휠체어끼리 부딪힐 때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체육관 안에 울려퍼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선 장애인 선수들과 비장애인 코치, 자원봉사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며 운동하고 장난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과 설렘으로 다가왔다.

경기용 휠체어를 타고 코트 위를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무척 오랜만에 힘들면서도 기분 좋은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휠체어럭비에 푹 빠지게 되었다. 부모님과 이모, 외삼촌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선물해준 경기용 휠체어는 나의 또 다른 든든한 몸이 되었다.

경기용 휠체어는 일반 휠체어보다 훨씬 비싸다. 일반 휠체어를 타고 연습할 수는 없다. 한때 지역에서 선수들 끼리 모여 연습할 때는 다른 지역 팀의 휠체어를 빌려 쓰기도 했다. 명색이 선수들인데 장비를 빌려서 썼던 것이다. 이는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뿐만아니라, 선수들이 휠체어를 타고 한 곳에 모여 연습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도 함께 모여 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휠체어럭비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의 휠체어럭비 경기에서 한국팀 선수들은 준우승을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은 경기 뒤 우승을 차지한 일본팀 선수들과 함께 한 모습.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의 휠체어럭비 경기에서 한국팀 선수들은 준우승을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은 경기 뒤 우승을 차지한 일본팀 선수들과 함께 한 모습.
ⓒ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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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휠체어럭비는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운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과 부정의 벽이 무너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손이 까지고 등에 멍이 드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팀원들과 함께 운동하며 전국의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2007년부터 하게 된 국가대표 선수 활동은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경험들을 안겨줬다. 2007년 뉴질랜드 합숙훈련과 2007년 호주, 2009년 뉴질랜드 그리고 2011년 한국에서 개최된 아시아-오세아니아존대회 참가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줬고 삶에 대한 가능성과 확신을 심어줬다.

휠체어럭비를 만나기 전의 나에게 '세상'은 좁은 방 한 칸에 불과했다. 하지만 휠체어럭비를 만난 후 나의 세상은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날 정도로 넓어졌다. 특히 뉴질랜드, 호주에서 본 편의시설과 장애인에 대한 그곳 사람들의 인식에 많이 놀랐다. 그 나라들은 어느 곳을 가든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우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8월의 무더위 속에 시작된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대비 강화합숙훈련. 전국에서 모인 20명의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두 달 반이 넘는 기간 동안 피땀을 흘리며 훈련했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층 발전된 팀을 만들어냈다. 나는 어느덧 대표팀 내에서 제일 오랜 경력을 가진 선수가 되었고, 후배들에게 뒤쳐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비록 이번에 세계랭킹 4위의 일본은 넘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휠체어럭비 사상 국제대회 최고의 성적을 내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다. 팀 내적으론 국제시합 경험 부족과 장비의 노후화가 아쉬웠으며 외적으로는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부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어떤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 모두에게 감사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의 휠체어럭비 경기에서 한국팀 선수들은 준우승을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은 경기 뒤 우승을 차지한 일본팀 선수들과 함께 한 모습.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의 휠체어럭비 경기에서 한국팀 선수들은 준우승을 차지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은 경기 뒤 우승을 차지한 일본팀 선수들과 함께 한 모습.
ⓒ 박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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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내내 관중석은 많이 비어 있었다. 선수들의 가족, 지인들과 스태프들이 박수를 치고 응원을 하거나 간혹 학생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이 단체관람을 하는 정도였다. 부산과 창원에 사는 이모와 외삼촌은 '경기를 보고 싶어도,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하지 않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외삼촌은 경기 때마다 결과가 궁금해 협회에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지난 9월 19일~10월 4일 사이 벌어진 인천아시인게임과 비교하면 서글플 정도의 '소외'였다.

이번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휠체어럭비 은메달은 그 어떤 금메달보다 값지고 의미 있으며, 대한민국 휠체어럭비의 역사와 휠체어럭비인 모두가 일궈낸 땀의 결실이다. 최고의 순간에 함께 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한민국 휠체어럭비인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2주 후의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는 모두 각자 지역의 대표로 나와 실력을 겨루게 되지만, 또 한 번 멋지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휠체어럭비. 휠체어럭비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더욱 더 늘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대한민국 휠체어럭비 화이팅!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휠체어럭비 경남대표 겸 국가대표이자 부산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장, 국립재활원 장애발생예방 교육강사입니다.



태그:#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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