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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많이 아팠다. 몇 달 사이 살도 많이 빠졌다. 병가를 내고 집에서 거의 누워 지냈다. 연극 연습을 거의 못하고 책 한 줄도 읽지 못했다. 이제는 다행히 기력을 회복해가고 있다. 인천시립극단 단원인 그는 '연극은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걸어가는 삶의 과정'이라고 했다. 지난 4일 그를 만나 삶과 연극, 그리고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을 나눴다. 따뜻했다.

강량원 연출가와 인생의 전환점
   
김문정 인천시립극단 단원
 김문정 인천시립극단 단원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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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김문정(42, 사진)씨는 고교 1학년 때 연극반에 가입했다. 선배들이 연극반 홍보를 위해 교실을 방문했을 때, 깊은 고민 없이 '내가 갈 곳은 저기다'라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아닌 숙명처럼 느꼈다.

대학 연극학과에 들어가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선배들과 극단을 만들어 대학로에서 공연했다.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때였다. 기량을 쌓으며 연극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2001년 인천시립극단 단원 모집 오디션을 통과했다. 연극만 열심히 하던 시절, 배우로서 어떻게 더 잘 표현할까를 고민하던 그 때,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2006년이었던 거 같아요. 인천민예총에서 주최한 교육이었는데, 극단 '동(動)'의 대표인 강량원 연출가의 강의였어요. 그 선생님을 만나면서 제 세계관과 연극정신이 바뀌었죠.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했기에, 인생반전이 이뤄졌는지 궁금했다.

"연극을 전공하고 대학로와 시립극단에서 연극을 계속 했지만 그 때까지 연극이나 예술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배우라면 자기를 표현하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강 선생님을 만나면서 연극에 대한 기존 생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제 자신도 많이 깨졌어요."

가령, 배우에게 주 관심사는 캐스팅이다. '저 친구가 왜 주인공 역할을 하지.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실의에 빠지기도 했던 그였다. 그러나 그 강의를 듣고 난 후로는 '연극은 한 배를 탄 배우들이 어떤 것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개인의 욕망 실현이 아닌, 이 연극으로 관객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은 자신과 오롯이 만나는 것이고, 그럴 때 관객과도 진실하게 만날 수 있겠죠. 그런 배우의 모습을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하며 정서적으로 감염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도 자신을 돌아보며 정화하지 않을까요?"

월요일마다 '행동연기' 공부

강량원 대표는 극단 이름에 '행동'의 의미를 담아 움직일 '동(動)'으로 지었고, 그래서 몸과 그 움직임에 대한 탐구를, 그것을 반영한 연기를 많이 한다고 문정씨는 들려줬다.

극단 '동'은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 동안 '투명인간'이라는 작품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무중력과 마네킹 상태의 몸, 놀이하는 몸 등, 다양한 상태의 몸과 움직임에 관한 워크숍을 1년 동안 진행해 만들었다.

"2006년 교육 때 만난 인연으로 강 선생님과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모임 이름이 월요연기연구실인데, 공연이 없는 월요일에 연극인들이 모여 '행동연기'를 공부해요. 대부분 극단 '동' 멤버들이고, 멤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모임을 개방한 때가 있었는데, 그때 들어가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무엇을 할 것인가

김문정 인천시립극단 단원
 김문정 인천시립극단 단원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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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씨는 얼마 전까지 이 모임에서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작품을 7개월 동안 연습했다.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되던 날 추모제에 갔어요. 행사가 끝나고 서울시청광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하는데 비가 엄청 왔어요. 경찰이 행진을 가로막아 새벽 3시까지 대치했어요. 그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후 여름휴가 기간에도 광화문에 자주 갔어요.

그곳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 공연을 보면서 '과연 예술의 역할이 무엇일까', '나는 왜 연극을 하지'라는 물음을 던지고 답하기 위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어요. 그동안 작업에만 함몰됐나 봐요. 저는 연극을 떠난 삶을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때는 극장에서 거리로 나와 서명을 받고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 후 김씨는 사회문제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단식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먹는 것도 부끄러워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아예 거르고 거리로 나섰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배를 움켜잡고 세월호 집회에 다녔다.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몇 달간 기력을 보충하자 몸은 많이 회복됐다. 그러나 얼마 전, 영화 '다이빙벨'을 보는데 갑자기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냉철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몸이 반응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관객을 만나는 이유

폴란드의 연출가 그로토프스키는 '내 연극을 보는 관객은 기존의 삶에 만족하는 관객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진리를 향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연극이란 배우는 연기하고 관객은 보는, 일방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우의 움직임에 관객이 자신을 투영하는 거죠."

김씨는 원인도 모르는 병마와 싸울 때 집 근처의 불교회관에서 고요하게 앉아있던 적이 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부정적 의미의 '무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은 그 자체일 뿐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허상이라는 깨우침이었다.

"삶이나 연극이나 계속 탐색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연극은 저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무엇이에요. 꼭 답을 찾으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 삶이죠"

삶의 목표가 없다는 말인가, 연극을 하는 이유와 목적도 없을까?

"아름답게 살고 싶어요. 그걸 추구하는 방편으로 연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향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에요. 그것이 관객을 만나는 이유죠. 제가 잘 나서 관객 앞에 서는 게 아니라 관객을 대신해 서 있는 것이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 제 사명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까'라는 고민, 쉬지 않을 것

인천시립극단은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메디아'를 각색한 작품을 내년 1월 무대에 올리기 위해 한창 연습 중이다. 문정씨도 연습하다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인터뷰하러 나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메디아를 악녀로 묘사했지만, 사실은 국가나 남성들의 권력에 대항해 주체적으로 행동한 여성이에요. 코러스라는 형식을 가미해 여러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하기도 하고 합창을 하기도 하는 실험적인 요소도 있어요."

공연 연습으로 다시 활기를 찾은 문정씨는 지금은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연기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연기도 중요하지만 내 몸을 아끼는 것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하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것은 쉬지 않을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김문정, #인천시립극단, #강량원, #월요연기연구회, #투명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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