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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녹번동재개발조합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곳은 한때 울울창창했다. 그곳은 한때 올망졸망한 집들로 뒤덮였다. 그때는 삶이 꿈틀거렸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은 그런 곳이다. 물론 여태도 사람은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삶의 꿈틀거림 대신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800세대가 넘던 동네였으나 시방은 400세대도 안 남았다.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져야 하는데 새로운 사람들은 집을 매입했으되, 녹번동에 정착할 의향이 애초에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지에 사는 이들로 '개미 투기꾼'으로 불린다. 집을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재산 증식의 방편으로 삼았으니, 매입한 집에서 그들이 살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들은 하루빨리 재개발이 시작되기를 바랄 뿐, 아직 남아 있는 세대들의 고통과 열패감에 대해선 도대체 관심 밖이다.

녹번2구역 재개발에 맞선 원주민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1시, 은평구청 앞에서 열렸다.
 녹번2구역 재개발에 맞선 원주민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이 18일 오전 11시, 은평구청 앞에서 열렸다.
ⓒ 최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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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주민의 아픔을 모른다

그들은 모른다. 10년 전, 김은봉(47)씨가 25평 빌라를 1억 4500만 원에 매입한 뒤 가족끼리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던 감격을 그들은 모른다. 비록 대출금 5000만 원을 끼고 산 빌라였지만, 사십 평생 최고의 사건이었음을 그들은 모른다. 현재 실매매가는 2억 200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녹번2구역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1차 감정평가액으로 공시지가만도 못한 9100만 원을 내놓았다. 그나마 9100만 원의 60%만 먼저 받고 녹번동을 떠나라고 한다. 그러나 그걸 받고 떠나면 갈 곳이 없으니 절망한다.

그들은 여전히 모른다. 8년 전, 홍영두(43)씨는 20평 빌라를 1억 5200만 원에 매입한 뒤 김은봉씨처럼 감격했다. 현재 실매매가는 1억 8000만 원에 이른다. 조합측은 1차 감정평가액으로 공시지가 93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8200만 원을 내놓았다. 물론 8200만 원의 60%만 먼저 받고 떠나라고 한다. 전세가도 안 되는 그 돈을 쥐고는 홍영두씨 또한 갈 곳이 없다. 그러니 떠날 수 없다.

그 모든 일은 은평구 녹번동 일대가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난 2007년 8월 16일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녹번동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사로잡혔다. 당시 원주민들은 헌집 주면 새집 주는 줄 알고 조합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시세차익을 노린 개미 투기꾼들도 분별력을 잃고 주택매입에 혈안이 돼 있었다. 자고 나면 집이 팔리고, 자고 나면 집이 비워졌다. 파괴의 파괴가 시작된 거였다.

감정평가에 대한 관리 인가 권한은 은평구청에게 있다. 대책위원회가 은평구청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단순하다. 삶터를 가져갈 것이라면 이에 합당한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교인이 40명쯤 되는 녹번동19-26 삼일교회도 재개발 광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원래 삼일교회는 1977년 10월 7일, 마당 딸린 국민주택 85평을 매입해서 문을 열었다. 해가 더할수록 비가 새고 균열이 심했다. 급기야 문을 연 지 30여 년만인 2007년 1월, 교인들은 기존의 예배당을 헐고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대지 85평에 2층 건물로, 1층은 교육관 겸 식당이고 2층은 예배당이다.

건축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될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은평구청 건축과가 초장부터 훼방을 놓았다. 마치 교회 재건축으로 인해 정비구역 지정 불가라도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떤 거였다. 구청이 그 모양이니 조합 추진위 쪽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오죽하면 부득불 준공허가를 불허하겠다고 해 가설건축물로 허가를 냈을까. 물론 재개발 확정도 전에 삼일교회 건축을 두고, 갖은 훼방과 겁박을 늘어놓은 은평구청은 이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할 것이다.

공시지가에도 못 미치는 감정평가는 무효다

재개발 예정지인 녹번제2구역의 모습
 재개발 예정지인 녹번제2구역의 모습
ⓒ 최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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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지 7년, 녹번동은 반환점을 돌았다. 현금청산자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꾸려졌다. 비대위는 녹번동 재개발사업 지정 취소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개미 투기꾼들은 그렇다 쳐도, 아직 조합을 탈퇴하지 않은 원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현, 북아현, 응암 재개발지역 등을 예로 들며, 살인적 조합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설득했다. 감정평가액이 공시지가보다 낮게 책정된 마포 염리지구를 예로 들며, 재개발은 야만의 투기노름임을 상기 시켰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에 기대를 걸고 정비조합 해산동의서도 돌렸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연 축구시합이었다. 재개발 지정취소는 원주민 50% 이상이 반대해야 하는데, 이미 외지 투기꾼들이 68%인 마당에 무슨 수로 해산 요건을 갖추겠는가. 결국 녹번동 재개발은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이 돼 버렸다.

그러니 비대위는 호소한다. 재개발이 필연이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앞에서도 보았듯, 공시지가에도 못 미치는 감정평가액을 던져주면서 보금자리를 빼앗는 폭력이라면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1차 감정평가는 무효다. 2차, 3차 감정평가액이 1차 감정평가액의 120%를 넘을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현금청산액으로는 서울 하늘 아래 셋집도 얻을 수 없다는 건 녹번동 개도 다 안다.

하면 조합은 늘 자린고비 저리 가라 소리 들을 만큼 살뜰해 왔는가. 건너편 불광동 개가 다 웃을 일이다. 조합간부를 두고 시쳇말로 인두겁을 쓴 흡혈귀라고 한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다. 2008년부터 열어온 조합 총회는 돈 잔치였다. 물경 5억 원을 쓴 2008년 총회는 차치하고라도 해마다 억대의 총회를 열었다.

뜯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총회 사회자에 대한 4시간 사례비로 1000만 원씩 주었다. 웬일로 지난 총회 땐 880만 원만 주었다. 이따위로 돈을 쓰는 데도 법적으로 문제없다면 정말 그것으로 끝날 일인가. 물론 조합의 씀씀이는 열면 열수록 점입가경이다. 2011년 일이다. 그해에 조합장의 비리혐의를 잡고 조합이사들이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원만히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합 돈 10억 5400만 원을 가슴에 손도 얹지 않고 써버렸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눈물겨운 돈 아닌가? 조합원 비조합원 가릴 것 없이 내 집 빼앗기게 된 이들의 피어린 집값이 아닌가? 그러니 조합간부들을 보면 뱀을 보듯 징그럽게 무섭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조합은 비대위를 겁박하느라 벌써부터 용역들을 동원하고 있다. 용역들은 유태인의 게토처럼 삼일교회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가끔은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어댄다. 정녕 거칠다. 10년, 20년 살아온 아이들의 고향을 떠나야 하는 비조합원들에게 해서는 안 될 야비한 짓을 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이런 문제를 두고 은평구청과 서부경찰서에 민원을 넣으면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걸 누가 모르나. 다만 사회적 통념상 받아들일 수 없으니 해결하라는 얘기다.

지난번 구청장 면담 때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이렇게 말했다.

"비조합원만 은평구민이 아니라 조합원도 은평구민입니다."

저울의 중심에 선 듯한 입바른 말이지만, 이미 재개발을 기정사실로 둔 기울어진 말이다. 아니라면 조합원의 68%인 개미 투기꾼조차 은평구민이란 말인가. 아니라면 지난 7년 동안 재개발사업 관련하여 은평구청이 단 한 차례도 주민설명회를 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라면 조합원 명부를 공개할 의무를 저버리고 해를 넘겨가며 거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은평구청은 지금까지 명확하게 답변한 적이 없다.

은평구의 재정 확충을 위해서 재개발이 필연이라고 할 텐가. 그렇다면 말하겠다.

"아이들의 고향인 녹번을 등져야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삶터 마련이란 무엇인가? 그건 천명이다."

은평구청, "법과 규정에 따라 일 처리... 행정관청 사안 아니야"
이같은 유채림씨의 주장에 대해 은평구청은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법과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우선, 주민설명회가 지난 7년 동안 열리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은평구청은 주민설명회를 열 법적 의무가 없다"고 해명했다. "주택개발지정 사업의 사업시행자는 은평구청이 아니라 조합이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이다.

이어 조합원 명부 공개에 대해서도 "도시 및 주거환경처리법에 따라 조합에서 우선 처리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조합에서 공개하지 않은 내용을 은평구청에서 나서서 공개하기 어렵다는 말인가"는 기자의 질문에 은평구청 관계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감정평가액 선정과 관련하여 "감정평가에 따른 손실보상액 선정은 감정 평가 기관의 고유 사무"라며 "행정관청에서 관여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답했다.
/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작성한 유채림 작가는 '녹번2구역 재개발에 맞선 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태그:#녹번동, #은평구,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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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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