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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 재미교포 신은미씨가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왼쪽)와 함께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토크콘서트 종북 몰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방북 재미교포 신은미씨가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왼쪽)와 함께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토크콘서트 종북 몰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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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였다. 1학년 후배들과 함께 북한과 관련된 스터디를 하는 도중, 후배 하나가 내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선배는 북한이 우리가 배운 중고교 교과서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죠? 지금 선배가 이야기하는 북한의 실상이 과연 사실일까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선배의 알량한 권위를 내세우며, 지금까지 너희들이 중고등학교 때 배워온 북한의 모습은 과도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불과하다고 설득 아닌 설득을 하고 넘겼지만, 정작 후배의 질문은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녀석의 질문은 그만큼 날카로웠으며 합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주적'이 북한임을 끊임없이 주장하며 무조건 북한을 폄훼하는 정부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반대의 입장에서 북한에 대해 마냥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도 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그날 이후, 난 될 수 있으면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특히 북한과 같이 정보가 태부족하면서 말하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하는 대상은 나의 생각 자체가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판단 자체를 유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위와 같은 고민은 내가 북한학 대학원을 진학한 이후, 그리고 남북한 간의 교류가 활성화 되면서 조금씩 풀리게 되었다. 탈북자들을 인터뷰하고, 관계자들을 만나고, 북한의 프로파간다 등을 접하게 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북한에 대해서 나름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내린 개인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북한은 정부가 주장하는 것보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었으며, 한편으로는 그 반대편에서 주장하는 것보다 형편없는 사회라는 것.

우리가 알 수 없는 북한의 실상... "어떻게 확신하죠?"

방북 재미교포 신은미씨가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토크콘서트 종북 몰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
▲ 황선-신은미 '종북몰이' 기자회견 방북 재미교포 신은미씨가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토크콘서트 종북 몰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희망정치연구포럼 황선 대표.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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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활발하게 펼쳐진 남북교류는 우리 사회가 북한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북한에 대한 정보가 유통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들의 적지 않은 부분이 우리들의 편견과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북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MB 정부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10년 전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새누리당 정권은 북한을 '주적'으로 해석했으며, 그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정보가 아니라, 북한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국가로서 인식하게 만드는 단절된 정보들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신은미 시민기자의 방북기였다. 그녀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2012년부터 북한 방문기를 연재해왔는데, 꽤 많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의 글에는 우리가 궁금해 하던, 그러나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북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신은미 기자의 연재기사 :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애를 하고, 공원 산책을 하고, 명절을 지내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북한 사람들. 비록 체제는 다를지언정 그녀의 글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닮아서 그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지 다시금 돌이켜 봐야 할 정도였다.

예전에도 KBS <남북의 창> 등과 같이 북한의 일상을 보도하는 매체는 있어왔지만 신은미 기자의 글은 그것들과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기존의 자료들이 북한의 일상을 희한해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 신은미 기자의 시선은 좀 더 따뜻하고 합리적이었다. 북한 사람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전제한 만큼 그의 글은 우리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신은미 기자는 어떻게 이와 같은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가지고 있는 재미동포라는 정체성에서 기인할 것이다. 남한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닌, 그렇다고 한민족의 범위에서 아예 벗어나지도 않고, 자이니치(在日)나 조선족과 달리 한반도의 자장으로부터 적당히 떨어진 제3자의 입장으로, 그래서 비교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였기에 그와 같은 신선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은미 기자의 방북기는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북한에 대한 극단적인 시선들만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관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가 북한이란 국가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북한을 괴물이 아니라 동등한 소통의 대상으로 여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북한이란 대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분석해야 한다. 신은미 기자의 시선은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신은미 시민기자의 방북기가 소중한 까닭

신은미 시민기자 방북 당시 사진. 기자에게 손을 흔드는 북한 주민들.
 신은미 시민기자 방북 당시 사진. 기자에게 손을 흔드는 북한 주민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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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은미 기자가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몇몇 종편이 그녀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통일 토크콘서트'를 하면서 종북 발언을 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함에 따라 공안당국이 그녀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법무부가 재입국 불허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재미동포 신은미씨 "박근혜 대통령께 면담 요청").

종편들은 '그녀가 북한을 바로 알자는 취지로 토크콘서트를 열었지만, 오히려 북한을 두둔하면서 한국사회는 비판했다'고 했다. '탈북자들이 남쪽에서 겪은 사회적, 경제적 차별로 인해 조국이 허락한다면 다시 북한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등의 발언들과 북한 사회의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고,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친근한 지도자인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며, 이는 '종북'이라는 것이다.

종편들의 주장이 100% 틀린 것만은 아니다. 만약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보는 사람에 따라 신은미 기자의 발언은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소지를 가지고 있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어쨌든 외국인이 만날 수 있는 계급성분은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북한 전체가 그렇다는 듯 이야기하는 것은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쨌든 국제사회는 현재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등을 언급하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신은미 기자의 글에서는 그와 같은 북한의 상황이 전혀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종편들이 저리 종북타령을 할 수밖에.

그러나 생각해보자. 과연 신은미 기자를, 정부가 강조하고자 하는 북한의 이면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옳은 일일까? 사실 우리는 굳이 신은미 기자가 언급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우리 사회보다 못한 곳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3대 세습이 가능하고,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이 식량이 없어서 탈출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커녕 정치범수용소가 아직도 존재하는 그런 사회가 바로 북한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그와 같이 형편없는 부분만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북한이란 대상을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곳도 사람이 살고 있는 이상 흑과 백이 존재할 것이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할 것인데 현재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죽어라 북한의 형편없는 모습만을 강조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와 객관적인 접근을 방해하고 있다.

또 다시 레드컴플렉스 마녀사냥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발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발언을 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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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 사회가 흔들리게 되고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에 말려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북한보다 최소한 25배 높은 GDP를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무시한 처사에 불과하다. 이미 남한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했으며, 북한은 남한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 아닌가.

북한 방문 당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고 다니는 신은미 기자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현재의 상황은 어처구니없다. 혹여 그의 발언들이 지나치게 북한의 좋은 점만 강조한다 할지라도, 이미 우리는 그것들을 걸러서 들을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민주주의 힘이란 결국 그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두 듣고 총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북한의 소소한 일상을 전달함으로써 북한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신은미 기자는 우리 사회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일부 탈북 여성들이 신은미 기자를 상대로 끝장토론을 제안하고 나섰다고 한다. 이는 한편의 코미디에 불과하다. 같은 대한민국을 살아도 상위 10%의 대한민국과 하위 10%의 대한민국이 전혀 다르듯, 신은미의 북한과 탈북 여성들의 북한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인지하고 있어야 할 북한의 다양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신은미 기자에 대한 과도한 종북몰이를 그만둘 때다. 정부가 그토록 '통일대박'을 외쳤다면, 북한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신은미 기자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도리이다.


태그:#신은미,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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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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