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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모임 105인,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 촉구 국민선언 (2014.12.24)
 국민모임 105인,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 촉구 국민선언 (2014.12.24)
ⓒ 박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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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의 독주를 막고 국민의 생존권을 지킬 의지와 능력을 이미 상실했습니다. 분산되고 분열된 진보 정당 또한 역부족입니다. 새로운 정치세력 없이는 정권교체도 없으며, 안전한 대한민국과 서민의 행복도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뜻있는 모든 정치인에게 새롭고 제대로 된 정치세력 건설에 함께 앞장서 주기를 촉구합니다."

지난 24일 야권의 각계각층을 대표할 만한 인사 105인이 국회 정론관에서 발표한 '국민선언문'의 핵심 내용이다. 사실상 '새정치연합으로는 야권에 희망이 없으니 신당 창당에 나서라'는 호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국민선언은 야당이나 야권 정치인이라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국민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의 면면이 간단치 않다. 그동안 결을 달리해 온 민주진영과 진보진영 인사가 함께 망라돼 있다. 일부에서는 진보 정당 건설로 해석하고 있지만, 참여자 면면을 보면 민주개혁 진영이거나, 민주·진보 어느 한쪽으로 분류할 수 없는 인사들도 상당하다.

명진 스님, 정진우 목사,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최영찬 서울대 교수,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조영선 민변 사무총장, 정지영 영화감독, 양길승 녹색병원장 등은 민주개혁 진영에서 주로 활동해 온 인사다. 그리고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를 비롯한 진보적 학자들, 이수호·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들은 진보진영에서 주로 입장을 내온 분들이다. 

한 자리에 모이기도 어렵지만, 한 목소리로 그것도 정치권에서 매우 민감한 '새로운 정당 건설'을 촉구하는 대국민 시국선언을 한 것은 야당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30년 만에 등장한 '사쿠라·2중대 야당'

또 하나는 상황적으로 야권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존재감이 상실된 막다른 위기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무게감이 다르고 엄중할 수밖에 없다.

선언 내용도 파격적이다. 제1야당이 재야·시민사회로부터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야당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 새로운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규정당한 것이다. 이런 적이 언제 있었던가.

비슷한 사례를 찾와봐도 야당 역사에서 이런 경우는 딱 두 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1970년대 신민당의 이철승 체제 때 중도통합론에 대해서 '사쿠라 야당'으로 보고 야당성회복투쟁동지회가 결성되면서 이철승 신민당이 뒤집어졌다.

두 번째는 1980년대 민한당 시절 재야·시민사회에서 '민한당은 야당이 아니다. 전두환 2중대'라고 규정하면서 신민당이 재건됐고 그 결과 민한당은 총선에서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퇴출당했다. 이번 국민선언은 30년 만에 있는 일이다.

그만큼 현재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국민에게 회복하기 힘든 실망감과 상실감을 안겨줬다는 의미이다. 국민선언을 보면서 '오죽하면'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 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내년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당 대표가 선출되면 어떤 변화나 혁신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면, 전대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런 국민선언이 나왔을까. 전대를 기다려 볼 필요성도 느끼지 않은 것 아닌가.

야당이나 야권 정치인이라면 각자의 위치에서 유불리를 따지기 이전에 이번 국민선언에 담긴 의미와 지적, 상황의 엄중함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새로운 흐름을 야권 분열로 폄훼하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이 국민에게 왜 '야당 기능 상실'이라는 뼈아픈 규정을 당하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볼 때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민과 노동자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곳에 야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당이 마땅히 대변하고 함께 싸워주어야 할 지점에서 집권여당처럼 행세했기 때문이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국기 문란·헌정질서 파괴 사건에 대해 '당의 명운을 걸겠다'고 해놓고 흐지부지 넘기고 말았다. 문제투성이인 기초연금안도 여당과 담합해 통과시키면서 대선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세월호에 대한 대응은 무능력·무기력·무철학의 종합판이었다. 야당 역사상 야당이 자신의 핵심적 요구 사항을 스스로 자기검열해서 빼버리고, 대통령이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협상하고 합의한 적이 있었던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국가적 대사건 앞에 야당이 야당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재벌 대기업에게는 감세 특혜를 주면서 서민에게는 담뱃값·주민세·자동차세 인상으로 보편적 증세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무상보육과 무상급식마저 축소해버리는 정부여당에 맞서 당당하게 재벌·부자 감세 원상복구와 서민증세 폐기, 추가적 대안으로 '사회복지세' 관철 등을 위해 싸워야 함에도 오히려 여당과 담합해버렸다.

전시작전권 무기 연기로 군사주권마저 포기하면서 한반도 평화통일과 국운상승의 유일한 돌파구인 북방경제를 가로막고 있는데도 야당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가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에 의해 선출된 5석의 국회의원을 가진 정당을 해산시키고 의원직을 박탈하는 역설을 보고도 종북 프레임 공세가 두려워 스스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서민·약자가 기댈 수 없는 '독점 야당'

대법원의 쌍용차 판결과 노동자의 잇단 죽음에서 보듯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 자유법으로 변질돼버렸다. 비정규직법은 대기업이 대량 해고로 악용하는 근거법이 돼버렸고, 노동조합법은 무자비한 손배가압류 남발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고서도 야당은 사실상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노동관계법 개정에 당의 명운을 걸겠다는 결기 있는 야당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더군다나 새정치연합은 집권 시절 비정규직법 제정으로 비정규직 양산과 손배가압류 등으로 인한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에 원죄가 있는 정당이다. 당연히 비정규직과 노동 문제와 관련해 당 차원의 반성문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도 마치 사돈 남 말하듯 하고 있다. 비정규직과 노동자들을 적극 보호하고 대변하겠다는 확고한 철학과 신념도 없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최근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은 대형마트가 아니다'는 고등법원의 황당한 판결이 영세자영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재벌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은 힘이 없다. 바로 이럴 때 야당이 필요한 것이다. 국회가 가진 입법권을 적극 발동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조용하다.

이런 야당 때문에 서민과 사회경제적 약자는 더욱 기댈 곳이 없어졌다. 취직 안 되고, 장사 안 되고, 미래는 불안하고. 말 그대로 절망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는 그렇더라도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기대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망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당권 장악에 매몰된 계파 싸움만 난무하고 있다. 제1야당이라는 위상, 야권 내 의미있는 경쟁자가 없다는 독점적 지위 때문에 혁신과 정권교체에 대한 절박감도 없다. 어떤 잘못을 해도 이대로만 가면 된다는 식의 무사태평이 당을 지배하고 있다.

야당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선언이 주문한 시대적 요구에 어떤 식으로든 응답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태그:#국민모임, #국민선언, #신당,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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