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23일 <무한도전>이 처음 세상에 나왔습니다. 한국 방송 환경을 감안하면, 한 예능 프로그램이 10년 가까이 생존한다는 것은 분명 드문 일입니다. 같은 PD가 9년 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또한 놀랍습니다. <무한도전> 10주년. 이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김태호 PD라는 한 사람을 통해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
자기 외 다른 사람 모두가 '남'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어깨 부딪힌 아저씨, 퇴근길에 눈인사를 나눈 편의점 여학생도 남이지만,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 누나, 동생도 사실은 남이다. 남과 나는 다르다. 아무리 닮았어도 다르다.
사실이 분명히 그럼에도 나는 남들처럼 대학을 가야하고, 또 남들처럼 스펙을 쌓아야 한다. 괜히 손가락질 잘못 했다가는 까딱없이 '종북 아니면 일베'가 되기도 한다.
"'남과 다를 권리'의 사회적인 박탈 때문에 (정부)관리는 '모나면 정 맞을까 무서워서' 새로운 발전적인 결정을 내리기를 꺼려하고, 많은 유능한 젊은이들은 '건방지기' 싫어서 위선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딱, 요즘 이야기다. 모나면 정 맞을까 무서운 관리들은 여전히 많다. 그러니 창조경제란 말의 실체가 대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많은 유능한 젊은이들이 '건방지기' 싫어서 위선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음은, 드라마 <미생>에 대한 뜨거운 환호가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어린 학생들, 젊은이들, 그리고 유재석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이 무려 10년 가까이 박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다. '하필' <무한도전>이다.
손석희 "늘 새로운 모습 보여주는 <무도>는 생물"그 '하필'을 놓고 그동안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었다. "단순히 재밌게 작업했을 뿐인데, 해석자마다 멋있게 의미를 담아 해석을 한다"는 김태호의 말처럼, <무한도전>에 대한 찬사 또한 참 다양하다.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 역사의 획기적인 등장, 무형식의 형식, 한국 최초의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 이런 칭찬은 이제 '질릴' 정도다.
오히려 그보다는 "저희 작가나 PD들 사이에서 한국 예능은 <무도> 이전과 <무도> 이후로 나뉜다"는 방송작가 김성원의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김성원은 2011년 1월 방송된 <무한도전> 연말 정산 특집에서 "방송작가 지망생들한테 '너 어디 가고 싶니'하면 무조건 <무도>라고 한다. 왜 <무도>를 가고 싶냐고 하면, 이렇게 답한다"고 했다.
"매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실험정신, 그거라고 하거든요. 저희가 방송하는 프로그램은 초창기에는 굉장히 바뀝니다, 자리를 못 잡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자리를 딱 잡으면 그 포맷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보수·유지, 보수·유지. 저희가 했던 방식이었고, 그게 완성형이었는데. 그걸 깬 게 <무도>죠." (2011년 1월 무한도전, '연말 정산 뒤끝 공제 특집' 중)내친 김에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 이야기도 돌아보자. '손석희가 만난 사람' 시절 <무한도전>을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역시 유려하다.
"때로는 역동적인 어드벤처 게임인 듯하다가, 또 때로는 진한 메시지가 담긴 다큐멘터리인 듯 하다가, 또 어떤 때는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하는 판타지물로 변신하기도 하고요. 늘 다음 주를 예측하기 힘든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2010년 12월 손석희가 만난 사람 중)그리고 "보통 정치는 생물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무한도전>도 생물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면서 손석희는 이렇게 '콱' 박았었다.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니까요".'모난 돌'을 대하는 방통위의 '지성'
새로움은, 늘 저항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새로움 또는 다름을 우리 사회는 유독 인색하게 대한다. 처음 소개한 남과 다를 권리의 박탈을 논한 글은, <뿌리깊은 나무> 발행인 한창기가 1971년 쓴 '남과 다를 권리'의 한 대목이다. 무려 43년 전 글이다. 남과 다를 권리에 인색한 역사가 꽤 오래됐음을 보여준다.
이는 <무한도전>을 대하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모난 돌'에 대한 "멋있는 해석"과 찬사도 잇따랐지만, 그만큼 '멋대가리'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게 쪼는 적도 많았다. '여드름 브레이크' 편에서 철거 지역을 배경으로 삼았다고 김태호는 '빨갱이'가 됐다. 심지어 테러리스트도 됐다.
"차량 폭발 관련하여 불려갔을 때는 어떤 위원이 저보고 '당신은 테러리스트다. 테러의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2012년 3월 4일, <한겨레> 조국 교수와의 인터뷰에서)고려대, 서울대, 한양대, 미국 컬럼비아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졸업한 대학교들이다. 최고 수준의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 모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어떤 위원은 당시 스피드 특집이 담고 있는 '독도는 우리 땅' 메시지를 애써 외면했다.
"영화 전문가 모셔놓고 안전거리 다 측정하고, 소화 장치 준비해놓고 했다"는 김태호의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만 봤고, 김태호는 '애국적 테러리스트'가 됐다. 초등학교를 못 나온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심의위원 "초등학교는 나왔어요?"김태호 "궁금하시면 제가 졸업 증명서를 떼어 드릴까요?"역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김태호는 "전체 일정이 늦어져서 자막 작업에 오타가 여러 개 나왔었다. 우리의 실수였다"며 "그러면 그것만 지적하면 되지 않느냐"고 조국 교수에게 말했다. '모난 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민낯을 보고 김태호는 "제일 기분이 나빴었다"고 했다.
"김태호, 그 사람 머릿속이 궁금하긴 해요"
손가락질과 박수가 만들어내는 '트러블', 김태호 스스로도 <무한도전>을 트러블 메이커로 칭하기도 했다. 2014년 6월 한국PD 연합회가 주는 '이 달의 PD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예상치 못한 논란과 해명이 반복되는 트러블 메이커 <무한도전>"이라고 표현했다.
'트러블 메이킹', 그 중심에 김태호가 있다. <무한도전> 초창기 멤버였던 개그맨 이윤석은 JTBC <썰전>에서 "<무한도전>에만 있는 딱 한 가지를 만약 꼽으라면 김태호 PD"라며 "유재석씨, 박명수씨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기에, <무한도전>에만 있는 무언가는 김태호 PD다.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선수'들의 생각 또한 그러했다. 2011년 <시사인>이 설문조사를 통해 PD 224명에게 물었다. PD들이 꼽은 최고의 PD는 누구냐?, 이 질문에 절반이 넘는 PD들이 김태호를 꼽았다. 그 이유는 역시 새로움이었다. "고정된 출연진, 고정된 캐릭터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평론가 허지웅은 "김태호 PD가 스티브 잡스라면 나영석 PD는 빌 게이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김태호 PD를 스티브 잡스라고 한 것은 뭔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는 거고, 나영석 PD는 뭔가 좀 체계를 만들어서 그걸 잘 굴러가게 하려고 만든다는 점에서 빌 게이츠에 비유했다"고 했다.
김태호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한다. 나 또한 그랬다. 어느 날, 이 기획 아이디어를 '복잡하게' 얘기했을 때, 나에게 돌아온 후배의 한마디는 아주 단순했다.
"그래요. 김태호, 그 사람 머릿속이 궁금하긴 해요".김태호의 삶과 교수님 창의론, 일치하네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포털에서 '무한도전 김태호' 기사는 거의 모두 읽었고, 유튜브에 뜨는 김태호 영상을 모두 받아 적었다. 때로는 김태호가 어디에서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잠입'하기도 했다. 아주 뻔했던 단어가 아주 뻔하지 않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단어는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을 생각하여 냄, '창의'였다. 창의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답이 풀리기 시작했다. 교수들이 말하는 창의적 인재 특성과 김태호 삶의 궤적은 놀랍게도 거의 일치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일을 대하는 태도가 참 깐깐한 사람이었다. '천재과'도 아닌 듯했다. 난독을 성실함이 만들어낸 상상으로 극복했으며, 상당수 창의적 인재들이 다닌다는 미술관 관람을 그도 역시 즐겼다. 경청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편 때로는 자신만의 직관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나아가 창의적 인재 대다수가 국가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이론을 접하면, 자연스레 <무한도전> 달력이 떠올랐다. <무한도전>이 달력 판매 수익금 등을 통해 그동안 기부한 돈은 27억3577만 원에 이른다. 이게 '창조경제' 아닌가.
창의력은 배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삶,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힘이란 것을 김태호는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김태호 이야기는 곧 우리 사회의 이야기다. 남과 다를 권리에 인색한 우리 사회가 초래한 비극이, 김태호란 사람의 삶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창의적인 삶, 그 출발점에는 친구의 죽음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김태호 개론 1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