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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있었다. 들려오는 말처럼 원자력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도, 비용이 싸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도 또 환경을 파괴한다는 것도. '탈핵'이라는 가치에는 동의했지만 구체적으로 탈핵에 대한 이런 저런 공방을 들으면 뭐가 옳고 그른 소리인지 헷갈렸다.

2011년 3월의 후쿠시마 사고 이후 너무나 많은 핵 관련 뉴스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략적으로 핵발전소가 위험하단 것을 감지했지만 핵 관련 기사에 난무하는 전문 용어와 숫자들 때문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소한 것들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① 핵발전소? 원자력발전소랑 다른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똑같다. 같은 것을 지칭하나 다른 언어로 말할 때, 언어는 정치적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과 장애를 가진 사람을 비교할 때 누군가는 '정상인·장애인'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비장애인·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장애인과 비교하여 장애를 가지지 않은 이를 정상인이라고 말할 때, 이는 장애를 가진 것은 비정상이라는 전제를 둔 것이다. 핵발전소를 원자력발전소라고 말할 때, 이는 원자력이 핵을 이용해 만드는 에너지라는 것을 숨기는 수단이 된다. <탈바꿈>의 첫 페이지는 이를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핵발전소라고 표기합니다. 핵발전소는 원자력이 아니라 핵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입니다(다만, 원자로나 원전처럼 관행으로 굳어진 경우는 부분적으로 사용했습니다). - <탈바꿈>, 4p 

탈핵의 가치에 찬성하면서도 원자력발전소라는 용어를 쓰는 이들도 많다. 핵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라는 용어가 같다는 것을 몰랐을 수도, 그저 관행을 따라 써왔을 수도 있다.  

② 한국에서 터질까?

2013년에는 최근 14년간의 연평균 지진 발생횟수의 두 배에 달하는 지진이 일어났다.

하나, 지진이 많아졌다.
둘, 지진 위험 지대인 영덕-경주 일대에 핵발전소가 몰려있다. 부산과 울산, 경주를 이은 고리, 월성, 동해안 일대에 총 18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예정이며 이 인근 30km 반경에 400만명이 넘는 인구가 몰려있다.
셋, 수명 완료된 원전이 2호나 운영 중이고 전체 원전 23기 중 절반이 2028년에 수명이 만료된다. 그만큼 노후된 원전이다. 지진지대 위에 그 노후된 원전이 서있다는 것이다. 특히 월성원전과 신월성원전은 국내에서 가장 약한 내진설계로 30년 전 토목건축 기술로 건설됐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공포스럽지 않은가? 여기에 핵발전소 사고 대비가 미흡한 한국의 상황까지 더해진다.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은 벨기에 10km, 미국 16km, 일본 30km인 반면 한국은 3km이며 구호소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 수는 극히 적다.

핵발전소 가까이에 구호소가 위치한 곳도 있다. 방사능방재훈련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핵발전소 사고는 발생하기만 하면 사고가 아닌 참사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예견된 인재'. '사고를 참사로 만드는 구조'. 세월호 이후 모든 재난에 따라붙는 수사다. 핵발전소 사고야말로 예견되고 있는 참사다.  

③ 방사능 걱정하다 보면 도대체 뭘 먹을 수 있나? 그냥 대충 먹자?

일본산 물고기, 식품뿐 아니라 국내산 녹차에서 발견된 세슘, 2013년 국정감사때 공개된 블루베리 등의 베리류에서 검출된 세슘, 어묵, 맛살, 소시지, 가다랑어 포 등 가공식품까지. 도처에 널부러진 위험은 오히려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방사능은 외부 피폭뿐 아니라 내부피폭 또한 위험하다. 방사능으로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에서는 피폭의 80~95%가 음식으로 인한 내부피폭이었고 먹이사슬에 의한 방사능 농축도 심각했다.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얼마나 농축된 방사능을 먹는 걸까.

최근에는 방사능 오염 식품을 섭취해 생기는 내부피폭의 위험성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는 점때문에 부주의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방사선은 노출되면 될 수록 암 발생률이 높아지기에 지속적으로 주의해야한다.
▲ 내부피폭 최근에는 방사능 오염 식품을 섭취해 생기는 내부피폭의 위험성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는 점때문에 부주의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방사선은 노출되면 될 수록 암 발생률이 높아지기에 지속적으로 주의해야한다.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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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뭘 먹느냐' '먹고 그냥 일찍 죽어' 같은 농담까지 익숙해졌다. 하지만 찾아보면 독자적인 방사능 기준치를 마련해 정밀검사 결과를 공개하고 검사시설을 마련하고 식품을 제공하는 생협(생활협동조합)이 꽤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생협 '한살림'이 그렇다. 최근 생협들은 인터넷 쇼핑몰도 개장했기에 인터넷으로 둘러보고 손쉽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 밖에서 나가 사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집밥에서만큼은 내부피폭 걱정을 덜을 수 있다.  

③ 원전사고, 먹거리만 조심하면 방사선 노출 걱정은 안 해도 되나?

자주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건강검진엔 으레 엑스레이, CT촬영이 포함된다. 병원을 옮기기라도 하면 며칠 전 했던 검사를 또 받기도 한다. 하지만 가슴 엑스레이 정면 1회에는 0.02밀리시버트, 암 정밀검진 시 복부/골반 CT촬영은 10밀리시버트의 방사능에 노출된다. 일반인의 연간 선량한도는 1밀리시버트다.  

방사능에 노출되는 것은 안정량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노출된 양만큼 비례하여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 암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 암 발병률을 높이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엑스레이나 CT촬영이 아닌 초음파 혹은 MRI검사로 대체할 수 있다면 대체하고, 불필요한 검사는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의료방사선이란 질병의 진단 혹은 치료를 위한 검사 과정에서 노출되는 방사선을 말한다. 건강감진이 보편화되면서 의료방사선 노출도 확대됐다. 의료방사선은 개인의 주의와 국가의 관리정책에 따라 피폭량을 줄일 수 있는 대표적인 방사선이다.
▲ 시버트 의료방사선이란 질병의 진단 혹은 치료를 위한 검사 과정에서 노출되는 방사선을 말한다. 건강감진이 보편화되면서 의료방사선 노출도 확대됐다. 의료방사선은 개인의 주의와 국가의 관리정책에 따라 피폭량을 줄일 수 있는 대표적인 방사선이다.
ⓒ 정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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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해결책은 '개인'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결국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를 위해 '개개인'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라는 해결책은 어딘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고 정말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핵에너지 시스템 전환을 위하여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관건은 아니다. 에너지 절약의 주체는 개인보다 정부와 기업이 되어야 한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절약의 핵심 주체는 개인과 가정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되어야 한다.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은 소소한 수준이며 개인은 갖춰진 에너지 시스템에서 게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 전력 소비의 절반 가량은 제조업이 차지한다. 주택용은 20퍼센트 이하에 불과하다. - <탈바꿈>, 183p 

많은 에너지 관련 글에서 해결책은 '1인당 전력 사용량'을 줄이라는 충고로 끝나곤 했다. 하지만 한국은 민간 전력 사용량이 적지만 1인당 전력 사용량은 높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종종 많은 글에서 개인이 스스로 전력 사용량을 줄이라는 결론이 나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을 주택용과 산업용으로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왔다. 나라 전체로 보면 1인당 에너지 소비는 칼럼에서 보듯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보다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주택용 소비와 산업용 소비를 구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주택용 전력 소비량은 2010년 기준으로 1240kwh다. OECD 평균 2448kwh의 절반 수준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1인당 주택용 전력 소비량은 2384kwh를 사용한다. 민간에서의 전기 사용은 일본이 한국에 비해 2배나 높다.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일본의 1.5배'라는 둥 에너지 소비가 높게 인식해 온 것은 한국의 산업용 전력 소비량이 OECD나라 중 세계 4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당 에너지 소비가 높으니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주장은 주체의 문제를 혼란시킨다. 다시 한 번, 에너지를 절약할 주체는 민간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다. 

Tip : 헷갈림을 방지하는 방법은 복습, 또 복습하는 것이다. 탈핵의 가치에는 찬성해왔으나 반대파(?)의 끊임없는 질문이 두려워 입을 막고 있던 당신이라면 <탈바꿈>을 국어사전마냥 자주자주 들춰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 프로젝트 씀, 오마이북 펴냄, 2014년 11월, 1만 6000원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엮음, 히로세 다카시 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탈핵, #탈바꿈, #오마이북, #내부피폭, #의료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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