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준비단이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모였다는데 보고받으셨습니까?" 지난 21일, 서울 반포동 서울지방조달청 회의실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아래 세월호 특위)' 2차 간담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특위 설립준비단이 일언반구도 없이 일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 사태를 설명해달라"고 이석태 특위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차분하던 회의실 분위기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세월호 특위 비상임위원으로 추천한 차기환(53) 변호사(우정합동법률사무소)다. 이날 모임은 세월호 특위 설립준비단이 위원들에게 세월호 특위 직제와 예산안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차 변호사는 '세월호 특위 설립준비단이 설명도 없이 일을 진행하고 있다'며 준비단 해체를 요구했다.
이미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세월호 특위 설립준비단'을 구성해 특위 조직과 예산안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차 변호사의 막무가내식 딴지걸기에 회의 내내 다른 위원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다(관련기사 :
'박근혜 지지자'의 세월호 특위 '딴지 걸기').
특히 세월호 유가족들은 "극우 성향의 인사"라며 차 변호사의 위원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엘리트 법조인에서 뉴라이트 인사로 활동한 차 변호사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일찌감치 '브레이커', '훼방꾼'으로 지목됐다.
법복 벗은 뒤, 뉴라이트 인사로 탈바꿈
세월호 특위 위원은 여야 각 추천 5명씩, 대법원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 추천 2명씩, 세월호 가족대책위 3명 등 모두 17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대통령 임명을 앞두고 있으며 현재 위원 내정자 신분이다. 세월호 특위는 출범 이후 짧게는 1년 6개월, 304명의 희생·실종자를 낸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난·재해 안전 대책을 제시하는 역사적 책무를 맡았다.
여당 몫으로 추천된 차기환 변호사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서울 여의도고-서울대 법대(81학번)를 거쳐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17기 수료 후 군 검찰관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이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과 수원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1998년 만 35살의 나이에 변호사의 길로 나섰다.
변호사를 하면서 그는 보수진영 시민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4년, 뉴라이트의 깃발을 든 시민단체 '자유주의연대'가 설립됐다. 자유주의연대는 '전향 386세대 3인방'인 신지호 대표를 비롯해 홍진표 사무총장, 최홍재 조직위원장 등이 주축이었다. 이중 법조인, 의료인 등 전문가 그룹으로 차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다. 자유주의연대는 북한 인권 개선, 한미자유무역협정 성사, 국가보안법 개정 반대, 북한의 공개처형 중단 등을 주장했다.
당시 자유주의연대의 한 핵심 인사는 차 변호사에 대해 "자유주의연대 내 운동권 그룹과는 달리 합리적이고 중도적이었다"며 "말이 차분하고 온건해 뉴라이트 계열에서 신선한 분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후 2006년 12월, 차 변호사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참정치운동본부 산하 클린정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자유주의연대를 떠났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의 정권교체를 위해 뉴라이트 인사들이 한나라당에 속속 합류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으로 보수 진영은 승리했고 이후 차 변호사는 MB 정권에서 자주 등장했다.
이어 2009년 6월, MBC의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임명되었다. 함께 선임된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도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였다. 이후 MBC는 노조 파업과 김재철 사장의 전횡, 편파 방송 논란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 MBC 사측을 비호했다고 평가 받는 이가 바로 차 변호사다.
특히 김재철 MBC 전 사장을 비호하면서 '청와대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MBC의 '대통령 탄핵' 관련 보도에 대해서 "공정하지 못한 방송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김재철 사장 체제가 더 공정해졌다고 주장했다. MBC 노조는 차 변호사에 대해 "'이명박근혜 정부'의 언론 장악에 기여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민변 대항한 행변 만들어... 종북몰이에도 가세
차 변호사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민변)에 맞서기 위해 2014년 행복한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행변)을 만들면서 보수진영의 시민사회계를 결속시켰다. 최근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극우 성향 누리집 '일간베스트저장소'(아래 일베)의 글을 '리트윗(RT)'하거나 링크했다. '종북좌파에게 보여주면 대답못하는 사실', '한국이 일본의 730배 이상 감청하고 있다는 매체 비판 글' 등의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그를 두고 "나이 먹은 일베"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12월, 보수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차 변호사에게 언론의 공정성 확보와 민주·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바른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상'을 수여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민변은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이념'이 있고 이를 공유해 나갔기 때문에 성장했던 것"이라면서 "우리도 우리의 이념을 정립하고 이를 공유하는 노력을 통해 보수 사회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보수 성향은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 해산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진보당 해산 이후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보수단체 '통진당해산 국민운동본부'의 상임대표다. 이 단체는 고발장에서 "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 침해 등의 이유로 해산된 만큼, 그 당원 전체를 반국가단체 구성원들로 간주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공동 대표로 있는 행변은 '이석기 구명' 취지의 글을 보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카터 전 대통령이 전적으로 틀린 사실에 근거해 비판을 한 것이 안타깝다"며 "그의 눈은 자신이 미국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 정지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정면 비판했다.
세월호 유가족 구속 기각되자 불만 터뜨려그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언론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자신의 트위터에 지속적으로 유가족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자신의 SNS에 "일부 유가족들의 요구가 너무 지나치다"며 "전원 의사자 인정(의사자 개념에 맞지 않는다), 피해자 형제자매까지 특례입학 인정, 유가족 평생 생활 지원 등을 요구하는데... 진상규명에 동의하는 여론을 (유가족들이) 저 무리한 요구에 동의하는 걸로 확장·해석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이어 8월에는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며 "제1야당이 그들 요구에 따라 여당과 한 합의를 번복해 수사권·기소권을 요구하는 건 자책골, 이제부터 세월호는 야당에게 더 악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적었다.
또 그는 세월호 유가족 연루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서 대리기사의 변호를 맡았다. 사건에 연루된 유가족들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재판부를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구속영장 기각 직후 그는 "여러 명이 1명을 때린 집단 구타 사건이라는 점, 국회의원과 세월호 유가족이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행동하고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점을 법원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대리기사의 진료비가 없다며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차 변호사가 세월호 특위 위원으로 지명된 뒤 지속적으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도 "극우 성향의 인사를 추천하는 것은 정부의 구조 실패와 부실 대응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추궁을 방해하겠다는 것"이라며 "진실만큼은 알고 싶다고 절규하는 가족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부적격한 인사들에 대한 추천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