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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생활을 하는 지인들이 SNS상에 올린 연말정산에 대한 이야기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에 가까웠다.
 봉급생활을 하는 지인들이 SNS상에 올린 연말정산에 대한 이야기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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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보너스'라 불리던 연말정산. 매년 새해가 밝아오면 으레 직장인들을 위한 연말정산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올해는 주제가 조금 달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면 더 절세혜택을 볼 수 있는가'에 맞춰져 있던 기사의 초점이, 올해는 대부분 줄어든 환급액에 대한 직장인들의 불만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비단 신문기사 뿐만이 아니었다. 봉급생활을 하는 지인들이 SNS상에 올린 연말정산에 대한 이야기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에 가까웠다. 필자와 비슷한 임금을 받고, 비슷한 생활비를 쓴다던 지인이 45만 원을 '토해내야' 한다고 말할 때도 나만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래에 비해 직장생활을 일찍 시작한 편이라 연말정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물여섯에 늦깎이로 다녀온 2년간의 군생활 기간에 많은 제도가 바뀌었고, 뒤늦게 돌려본 시뮬레이션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본인의 경우 작년과 거의 비슷한 조건 하에 10만 원 가량을 더 내야 했다. 서른 살, 직장생활 5년차, 연봉 3천만 원대, 미혼, 부양가족 없음, 오피스텔 월세 거주 중, 수입의 40%를 신용·체크카드·현금영수증으로 지불한, 여러모로 평범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연말정산의 특성상 개개인마다 급여와 지출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말하기 힘들다는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나와 내 주변인들의 경우 세금을 작년보다 더 납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년엔 적게나마 환급을 받았었는데, 올해는 '토해내게' 되는 경우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해마다 정부 정책에 따라, 또 수입·지출 형태에 따라 환급액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지만, 이러한 불만이 급여생활자 전반으로 번지는 것을 보면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미혼 직장인 분노 키운 연말정산의 실체

나 하나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키기 전에, 스스로의 연말정산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영세한 보육원에 내던 기부금을 연말정산에 반영하지 않았고, 오피스텔 월세도 빠져있었다. 하지만 이 둘 모두 작년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늘어난 세금부담의 이유는 되지 못했다. 기부금의 경우 보육원이 너무 영세하여 세무업무 등의 미숙으로 인해 세무처리가 제 때 이뤄지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고, 월세의 경우는 오피스텔의 특수성을 들어 전입신고 자체를 막은 부동산 계약이 문제였다.

결론적으로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자료 이외에 추가적인 공제사항은 사실상 없었다. 그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가 몇몇 카드사나 현금영수증 사용기록을 누락했다는 뉴스가 들려와 이미 회사에서 서류처리를 마친 나를 더 화나게 했지만, 금액이 미미한 수준이니 긁힌 상처쯤으로 치부하고 5월에 누락분 신고를 노려보기로 했다.

늘어난 세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주변의 지인들은 대부분 또래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독신자인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혜택이었던 근로소득공제액이 올해부터 줄어들면서 독신 등 자녀가 없는 사람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잘못된 발언쯤으로 수습되었던 싱글세가 사실상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IMF 직후보다 더 심각하다는 최악의 취업난을 뚫고 어렵게 취직하고, 회사의 막내로서 열심히 '구르며' 학자금 대출 어렵게 갚아가는 와중에 세금부담까지 늘어났으니, 그야말로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 아닐 수 없다. 늘어난 세금이 나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온전히 쓰일 것이라는 보장이 있다면 감내할 수 있겠지만, 기업 1000억 원 상속세 면제와 같은 노골적인 부자감세추진은 절세를 향한 의지를 불태울 뿐이었다.

'종소기업 취업 청년 소득세 감면제도'를 아시나요?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늘어난 세부담을 피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사회 초년생이면서 독신인 이들이 연말정산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만한 제도를 알아냈다. 바로 '중소기업 취업 청년 소득세 감면 제도'. 만 30세 미만인 중소기업 근로자 중 2012년 이후 취업한 사람들에 한하여 소득세를 50~100% 감면해주는 제도이다.

만약 소득세 100% 환급대상인 2012~2013년 취업 청년이라면 연말정산 자체를 하지 않고도 일년 동안 낸 소득세 전액 환급을 받을 수 있으며, 2014년 이후 취업 청년은 50%를 감면받게 된다. 물론 매달 월급을 받을 때 소득세를 감면 받은 사람이라면, 연말정산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없다. 이 유용한 제도의 유일한 단점은 홍보가 부족하다는 점인데, 2013년을 기준으로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감면액은 연간 720억 원이었으나 실제 환급된 금액은 그 2% 수준인 16억 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심지어 세무회계전문법인에서조차 이 제도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사업주나 담당자에겐 실질적인 이득 없이 오히려 업무 부담만 가중하는 상황이어서, 적극적인 제도 도입을 막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해당자들이 사내 연말정산 담당자에게 직접 요청하여 근무하는 기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서로 다른 거위깃털, 17만 원의 무게

연말정산 환급액이 줄면서 반발 여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당정협의에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연말정산 보완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 정부에 연말정산 보완책 주문하는 여당 연말정산 환급액이 줄면서 반발 여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당정협의에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연말정산 보완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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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얘기를 할 때 그 유명한 '거위깃털론'을 빼놓을 수가 없다. 재작년 이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3450만 원을 중산층으로 잡고 이 계층의 세부담 증가액이 연 17만 원 정도라며 '이 정도면 감내할 수 있지 않느냐'고 사족까지 달았다. 정작 그 발언의 당사자가 부동산 재테크나 절세의 달인이었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정말 그 정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3450만 원에서 17만 원은 전체 수입의 0.5%에 해당한다. 적금을 들 때도 금리 0.1%에 발걸음을 돌리고, 신용카드 만들 때도 포인트 0.1%에 가입여부가 갈리는 이 시대에, 내 수입의 0.5%를 이유 없이 가져간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달가워 할까. 게다가 싱글세의 주된 피해자들은 소비성향이 가장 강한 2030세대로, 그들에게 가한 17만 원의 증세가 그만큼의 내수시장 위축을 가져올 것이란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저 17만 원은 누군가에겐 한달치 식비이고, 누군가에겐 두어달 분의 대중교통비이며 결혼을 꿈꾸는 커플들에겐 몇 번의 데이트 비용이 될 것이다. 심지어 반지하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에겐 한 달치 월세가 될 수도 있다. 17만 원의 증세로 위와 같은 일들을 하는데 쓸 돈을 어디선가 포기해야만 하는데, 이렇게 아프고 무거운 거위깃털이 또 어디 있을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애당초 거위깃털을 뽑는 일 자체에만 골몰하지 않고 국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데에 집중했다면, 1년치 세액을 한꺼번에 물어내야 하는 지금의 방식보다 MB가 내린 간이세액율을 다시 올려 다달이 조금씩 부담하게 했어야 이치에 맞다.

자녀가 세뱃돈을 받았을 때 부모들이 그 돈을 맡아두겠다며 가져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아이들조차 그 돈이 결국 자신을 위하여 쓰일 것이란 믿음이 없다면 저항하기 마련이다. 13월의 보너스를 빼앗긴 봉급생활자들의 분노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내가 더 낸 세금이 나를 위해 쓰일 것이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증세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복지공약 중 하나였던 기초노령연금은 기존 제도를 약간 확대-보완하는 수준에서 어설프게 마무리되었고, 선거 당시 내놓았던 복지 공약들은 사실상 철회되었거나, 철회될 운명 앞에 놓여 있다. 이 모든 복지공약을 증세 없이 이행하겠다며 TV앞에서 외친 박근혜 당시 대통령후보의 발언은, 지금까지도 인터넷에서 즐겨 사용되는 놀림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흡사 한겨울 수능 성적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기분

당시 박근혜 후보가 저버린 공약은 집행을 약속했던 예산규모로 보았을 때 노인복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50대 이상 인구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이후 대부분의 공약을 철회하고 서민·중산층 증세에 골몰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공학적으로 봤을 때, 근로소득생활자가 집중되어 있는 20~40대는 당초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았던 데다 특히 20~30대가 연말정산 증세의 직격탄을 맞음으로써 쌓여있던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30세인 1986년생이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2050년에는 기금이 고갈된다는 불길한 얘기도 들려온다. 이 와중에 집권여당은 연말정산 논란을 비웃듯 한 번 부결되었던 부자감세 정책(1000억원 기업 상속세 면제 법안)을 다시 추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약도 없어지고, 세대 간의 골은 깊어지며, 능력과 노력을 통한 신분 상승엔 장벽이 쳐지고 있다. 이쯤 되면 이 나라가 가라앉는 거대한 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정부는 가라앉는 배에 앉아있던 젊은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고, 그 결과는 다들 아는 바와 같다. 세월호 사고가 단순히 교통사고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기분 탓이리라.

어찌됐건 2월이 시작되었고 연말정산 서류제출도 슬슬 마무리 단계이다. 여론의 뭇매에 떠밀려 집권여당이 소급적용 수정법안들을 남발하는 바람에 정확히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혹은 얼마를 내야 하는지는 더욱 불투명해졌지만, 모든 연말정산 서류를 다 내고 기다리는 기분은 흡사 한겨울 수능 성적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기분과 유사하다.

대충 가채점은 했지만 정확한 점수는 모르고, 또 그 점수로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마치 수능대박을 빌듯, 매일 열심히 출근하여 일하는 급여생활자들에게 13월의 보너스가 있기를 기원한다. 만약 보너스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정책의 잘못이니, 책임자에게 온당한 분노를 표출해야 하지 않을까.


태그:#연말정산, #13월의 보너스, #13월의 세금, #거위깃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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