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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 죽을 각오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나라를 죽게 한 이는 임금님이라고 했습니다. 소인 또한 그리 여기옵니다. 나리(이순신)께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백성들을 위해 살았는데, 임금님과 조정은 그런 나리에게 죄를 주었으니, 전쟁이 끝나고도 나리께 어떤 죄를 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리는 차라리 전사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조총을 맞은 거라 했습니다. 임금님이나 이 나라는 나리를 지켜주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 - 본문 243쪽 중에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 곁에서 그의 죽음을 지켰던 이매가 유성룡에게 이순신이 죽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순신의 생각과 그의 죽음을 지켜 본 민심을 아울러 이리 이야기하고 있다. 이순신의 죽음에 다른 이유가 있느냐는 유성룡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게 나라인가?"

<소설 징비록>(박경남 지음 / 북향 펴냄 / 2015.01 / 1만4000원)
 <소설 징비록>(박경남 지음 / 북향 펴냄 / 2015.01 / 1만4000원)
ⓒ 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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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죽음을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유성룡도 마찬가지다. 그러하기에 유성룡은 이처럼 역모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이매를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박경남의 <소설 징비록>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율곡 이이의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라는 한탄의 유성룡식 버전으로 읽힌다.

당시 임금인 선조는 왜란으로 위태로운 나라를 명나라에 내부(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것)하자고 했다 한다. 나라가 어려우니 자신의 나라를 남의 나라에 넘기자는 말이다. 참으로 딱한 임금이다. 유성룡은 "순신의 죽음에도 분노를 느끼는 백성들이, 주상이 명의 백성이 되겠다는 말에 뭐라 할까"라고 독백한다. 명나라는 군대를 보내왔지만 그리 힘을 다해 왜와 싸우지 않았다. 차라리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화친조약을 맺는 데만 골몰했다.

대한민국은 자치국이다. 그러나 군대는 미국에 의존한다. 내 나라 전시작전권을 자꾸 미국이 가지라고 한다. 예정되었던 논의조차 미루고 또 미룬다. 그때의 임금과 지금의 이 나라가 뭐가 다를까.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임진왜란 때의 기록인 <징비록>을 현대적 감각으로 담은 <소설 징비록>은 현재도 진행형이기에, 읽는 내내 가슴을 저미고 들어온다.

유성룡 등 충신들의 반대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내부하자'는 게 어디 한 나라의 임금이 할 말인가. 똑같이 우리 군대를 미국이 움직이도록 하는 게 어째 자치국의 모습인가. 군사주권을 말하면 배은망덕한 국민이 되는 나라, 전시작전권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 종북이 되는 나라이기에, 이순신이 차라리 죽음으로 나라를 지켰다고 말하는 이매의 논리가 솔깃하게 들린다.

죽으면서까지 나라만을 걱정하여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고 했던 이순신의 충의와 나라를 버리고 명으로 피난 가고자 했던 임금이 어찌 이리 대비되는지 모를 일이다. 나라는 임금(대통령)이 지키는 걸까? 새삼 질문하게 되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많은 이들이 '이게 나라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울어가는 배에서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선장과 선원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권력의 무능함, 그 시간 자리에 없었던 대통령, 그러는 사이에도 '가만있으라'는 방송만 철썩 같이 믿고 배 안에 손을 서로 부여잡은 채 구조를 기다리다 스러져간 학생들과 승객들,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말했다.

"아, 이게 나라인가?"

'임금은 임금 노릇, 신하는 신하 노릇을 하는 게 정치'

원래 <징비록>은 조선 중기 문신인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의 내용을 담은 기록이다.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까지 7년간의 기록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유성룡이 한가할 때 지은 책이다. 목판본 16권 7책으로 이뤄졌다. 이 책은 국보 제132호이기도 하다. 유성룡은 친히 <징비록> 서문에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매양지난 난중의 일을 생각하면 아닌 게 아니라 황송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을 알지 못해왔다. 이에 한가로운 가운데 그 듣고 본 바를 대략 서술하였으니 임진년에서 무술년에 이르기까지의 것으로 모두 약간의 분량이다. 이에 따라 장계(狀啓)·소차(疏箚)·문이(文移) 및 잡록(雜錄)을 그 뒤에 부록하였다." - 유성룡의 <징비록> 서문 중에서

박경남의 <소설 징비록>은 유성룡의 <징비록>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이매의 기억과 유성룡의 경험이 만나 <징비록>이 쓰인 것으로 말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가 읽히는 등장인물이다. 도체찰사와 영의정으로 임진왜란을 치른 문신 유성룡과 삼도수군통제사 무신 이순신의 각별한 우정과 나라사랑 사이에 이매가 있다.

이매라는 아이가 오가며 서로의 소식을 전달해 준다. 소설의 작위적 인물인데 그 의미하는 바는 크다. 원래 이매란 하회탈 중 하나다. 선비의 하인으로, 초랭이가 세습적인 종인 것과는 달리 필요에 따라 신분이 보장된 종이다. 각시탈, 초랭이탈, 중탈, 주지탈, 양반탈, 선비탈, 부네탈, 백정탈 등과 달리 언제나 웃는 모습이다.

작가는 이매를 등장시켜 항상 웃지만 웃을 수 없는 당시 현실을 꼬집는다. 유성룡은 어렸을 때 하회마을에서 이매라는 아이를 만나 친구가 된다. 이순신은 천한 아이 이매를 거둬 자신 곁에 둔다. 동명이인이다. 유성룡의 이매는 엄마를 그리워하다 부용대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순신의 이매는 총명하여 한번 들은 것은 잊지 않는다.

글로써 소식을 전하면 안 되었던 그때, 그의 기억을 통하여 이순신과 유성룡은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는다. 이순신이나 유성룡 못지않게 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한 인물이 소설 속 이매다. 하회탈과 연결시켜 유성룡이 한 말이 오늘날에도 진리인 것은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임금은 임금의 탈을 쓰고 있고, 신하는 신하의 탈, 백성은 백성의 탈을 쓰고 산다. 그래서 임금은 임금의 역할을, 신하는 신하의 역할을, 백성은 백성의 역할을 잘해야 나라가 바로 산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 노릇을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을 하고, 아비는 아비 노릇을 하고, 자식은 자식 노릇을 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 본문 87쪽 중에서

지난 일을 조심하여 환난이 없도록 해야

KBS 대하사극 <징비록> 포스터
 KBS 대하사극 <징비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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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정치가 사라진 나라에 산다. 대통령은 국민 30% 이하의 지지를 기반으로 그 자리에 있다. 연초 대국민 담화에서도 역시 불통의 이미지를 제대로 각인시켰을 뿐이다. 국민과는 동떨어져 있으면서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대통령이다. 임진왜란 때 피난하던 선조가 자꾸 겹친다.

<징비록(懲毖錄)>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는 <시경> '소비편(小毖篇)'의 "예기징이비역환(豫其懲而毖役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때는 <징비록>을 읽지 않았다. 당연히 경계하여 조심하지도 않았다.

지금 새삼스럽게 <징비록>이 인기다. KBS는 오는 14일부터 대하드라마 <징비록>을 내보낼 예정이다. 이에 발맞추어 <징비록> 출간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내가 읽은 박경남의 <소설 징비록> 외에도, <인문만화 징비록>(서해문집), <징비록>(을유문화사), <징비록>(형설출판사), <징비록>(돋을새김), 이한솔의 <소설 징비록>(푸르름), 이번영의 <소설 징비록>(나남), 이재운의 <소설 징비록>(책이있는마을) 등이 출간되었거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와 달리 이제는 <징비록>이 읽혔으면 좋겠다. 지난 일을 거울삼아 대통령은 대통령답고, 국무위원은 국무위원다우며,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다웠으면 좋겠다. 경찰은 경찰답고, 군인은 군인다워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고, 당연히 국민은 국민다워야 하고. 그래서 다시는 "이게 나라입니까?"하는 말이 회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소설 징비록>(박경남 지음 / 북향 펴냄 / 2015.01 / 1만4000원)



소설 징비록

박경남 지음, 북향(2015)


태그:#소설 징비록, #박경남, #유성용,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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