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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가족회 김정길 회장
▲ 김정길 회장 인터뷰 중인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가족회 김정길 회장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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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하면서 친구도 다 멀어졌어요. 늘 쓸쓸하고 외롭게 혼자 걸어온 셈이죠. 고향이 전남 함평인데도 이렇게 수원에 떨어져 살아 온 지 벌써 8년이 흘렀습니다. 이젠 정말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렸죠.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가족회의 그동안 일들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의 자가에서 만난 김정길 회장은 그동안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는 듯 잠시 숨을 골랐다. 그 모습에서 김정길 회장의 파란만장했던 지난날이 느껴졌다.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에 뛰어들어 오랜 시간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그간 받은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5·18 당시 첫 장례에 참석한 김정길 회장은, 시위에 몸 사리지 않고 앞장섰던 5·18의 수 많은 주인공 중 한 사람이었다. 시위 때마다 앞장서 소리를 지르다 성대 결절이 와 지금도 목소리가 탁하다. 그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5·18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이후 오랜 세월을 오직 어느 골짜기에 파묻혀 있는지 알 수 없는 행방불명자들의 명예 회복과 보상을 위해 살아왔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동생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시작했다가 주변에 많은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모든 일을 접고 그 일에 뛰어들었다. 그 세월이 36년. 이제 김정길 회장은 몸도 마음도 다 지쳤다고 한다.

"그동안 국회며 관련 부서를 300회 이상 방문을 했어요. 오죽하면 국회 등 관련 부서에서 저를 보면 피하기까지 했겠습니까? 이렇게 행방 불명자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을 했고, 그 일을 하면서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딸 아이를 잃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수감 생활과 피로, 스트레스 등으로 간암 수술을 6번이나 받았고요. 이번 달 10일에 또 입원해야 합니다. 재수술을 받아야 하거든요."

"그간 모은 자료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원"

대담을 하기 위애 준비한 많은 파일과 디스켓 등 자료
▲ 자료 대담을 하기 위애 준비한 많은 파일과 디스켓 등 자료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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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몸이 나빠지면서 그는 걱정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5톤 트럭 한 대 분량인 5·18 민주화운동 행방불명가족에 관한 자료를 정리를 다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은 정리가 됐어요. 그런데 그 부분 부분은 정리를 하지 못했죠. 이 작업은 수많은 행방불명자들의 행적과, 그들에 대한 7차 보상까지 이뤄지게 된 과정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제 머릿속에는 있는데 정리를 할 수 없는 거예요. 여기저기 연락을 해봤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이 좀 도와주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죠."

지인들에게 물었더니 수원은 시민기자들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지자체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단다. 그래서 수원시청을 찾아가 그런 사연을 이야기했다. 김정길 회장은 자신이 그동안 수집해 온 모든 자료를 제대로 정리하고 싶은 것이 원이라고 했다.

"1990년에 피해 보상에 관한 법이 제정된 후 2006년까지 5·18 피해자들이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다섯 차례나 신청 기간을 연장하는 법 개정(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운동을 벌였어요. 2010년 10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광주시 국감에선 증인으로 참석했다가 쫓겨나기도 했고요. 나중에 당시 김홍신 의원이 저를 데리고 국감장으로 들어가 법률 개정을 건의하기도 했죠."

그렇게 해결이 되지 않은 600여 명의 피해자들을 위해 뛰기 시작했고, 7년 동안의 노력으로 7차 보상이 이뤄지게 됐다고 한다. 지난 2014년 12월 9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 회의에서 처리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숨겨져 있던 많은 사람이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인터뷰 자리에 준비를 한 파일이며, 테이프 등은 그저 훑어만 봐도 엄청난 양이다. 5톤 트럭 한 대 분량이라고 하니 그동안 김정길 회장의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갔다.    

"이젠 몸도 마음도 지쳐"

2013년 보훈처에서 5·18민주 유공자 지정을 받았다
▲ 유공자증서 2013년 보훈처에서 5·18민주 유공자 지정을 받았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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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이주한 것은 딸이 세상을 뜨고 나서 사위가 수원에 와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해서에요. 그런데 막상 자료를 정리해 세상에 알리려고 하니, 제가 가진 것이 없는 거예요. 이 일을 하느라 재산도, 가족도 다 흩어졌거든요. 제 마지막 일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를 새로 쓴 광주 5·18 민주화 운동 행방불명자에 대한 모든 것을 자료로 정리를 하고 싶다는 것이죠. 자칫 역사 속으로 묻혀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봐도 자료를 내면 지원해주겠다는 대답뿐이었다고 한다. 망가져 버린 몸 때문에 마음은 바쁜데, 어디 붙들고 하소연을 할 곳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많은 관련 자료를 정리해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나라의 온전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평생을 바친 그의 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와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정길회장, #5,18민주화운동 행방불명 가족회, #대담, #수원, #자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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