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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통일신라 말의 장보고는 실제 했던 인물이지만 신화적인 대상으로까지 추앙받는 인물이다. '해신(海神)'이라는 명칭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4년 최수종의 연기가 돋보였던 KBS 드라마 <해신>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을 장악하고 동북아 해상을 경영하였던 장보고를 그려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해신의 드라마가 열풍을 일으켜 청해진이 있는 완도의 촬영 세트장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았는데 지금도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였던 곳이다.
▲ 완도 장도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였던 곳이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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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지지 않는 대영제국도 한때 세계를 재패했을 때가 있었다. 이는 바다를 장악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보고가 한때 한중일을 연결하는 바다를 장악하고 경영하였다는 것은 우리도 한때 해양국가의 깃발을 날린 때가 있었다는 것을 되새기게 한다.

장보고는 서남해 해역에 흩어져 있는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중국과 일본을 무대로  바다를 경영하였는데, 해상실크로드가 단지 중국이나 유럽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장보고는 우리나라보다 중국이나 일본의 문헌에 더 자세히 나타난다. 중국의 <번천문집>이나 <신당서>를 비롯해 일본의 <일본후기>, 옌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 등에 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을 비롯한 해안 일대에는 장보고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있어 '해신(海神)'으로서 장보고의 존재를 잘 말해주고 있다.

장보고는 완도의 청해진을 거점으로 하여 중국의 산동반도 일대, 그리고 그와 친분이 있던 일본의 구법승 옌닌과 관련된 적산선원 등을 중심으로 동북아 해역에서 활동했다. 이곳의 법화원은 820년대 초 장보고가 세운 절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나이 스무살 쯤으로 추정하지만 장보고는 일찍이 당나라 서주(徐州)에 건너가 무령군소장(武寧君小將)이 된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해적들의 인신매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1만의 군사로 해로의 요충지 장도에 진을 설치하고 청해진 대사(淸海鎭大使)가 되었다.

장보고 당시의 청해진이 복원된 성곽의 모습이다.
▲ 복원된 청해진 장보고 당시의 청해진이 복원된 성곽의 모습이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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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경영의 거점지 청해진

장보고의 거점지였던 완도는 서남해 해역의 가장 끝자락에 퍼져 있으며 많은 섬을 품고 있는 군이다. 고대로부터 서남해를 오가는 중국이나 일본의 상선과 관선들이 오갔을 해역이다. 장도는 완도의 본섬인 완도항에 인접한 작은 섬이다. 이 작은 섬에 자신들의 거점인 청해진을 설치하였다는 것이 얼른 실감이 나지 않지만, 멀리서 이 일대를 살펴보면 먼 바다로부터 여자의 자궁과도 같은 깊은 곳에 들어와 안전하게 자리 잡은 곳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장도라는 섬까지 다리가 연결되어 있지만 육지와 1백미터 가량의 거리를 둔 섬으로 육지로부터의 적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는 해자와 같은 바닷물이 흐르고 육지와도 신속하게 연결할 수 있어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점임을 알 수 있다.

장보고의 거점이었던 청해진은 1989년부터 2001년에 걸쳐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져 문헌에 나오는 많은 것들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바닷가에 설치된 방어용 목책을 비롯해 내성과 외성 등 성곽의 흔적과 우물터도 조사되었으며 중국 월주요 계통의 해무리굽 청자편, 가와편등이 출토된 바 있다. 현재의 모습은 이러한 발굴을 통해 복원되었다.

 추위를 잊은채 갯벌위에서 채취한 파래를 씻고 있다
▲ 파래 채취하는 어민들 추위를 잊은채 갯벌위에서 채취한 파래를 씻고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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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발굴을 통해 복원이 이루어진 장도는 섬으로 가는 다리가 연결되어 어느 때든 이곳을 찾을 수 있다. 겨울의 찬바람이 아직 살을 애일 듯하지만 바닥을 드러낸 갯벌에는 파래들이 드러나 있어 아지매들이 푸른 파래들을 채취하여 고르고 씻느라 정신이 없다.

바닷가 사람들은 쉬는 계절이 없다. 김농사를 하는 때가 겨울이고, 파래고 매생이를 채취하여 고르는 작업도 주로 겨울에 한다. 그래서 바닷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따라 사계절 자연으로부터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성벽이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 장도의 토성벽 성벽이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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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의 청해진 유적 중 하나인 복원된 성곽 시설들이 깔끔하게 드러나 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번 둘러보기에도 알맞다. 성곽의 입구에는 복원된 우물지와 성문이 있다. 새롭게 복원된 것들이라 세월의 때가 안 묻어 조금은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청해진의 성곽시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성문을 지나 토성 벽을 따라 오르면 망루라고 할 수 있는 고대(高臺)가 복원되어 있다. 멀리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적들을 조망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먼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일종의 망루다.
▲ 복원된 장도의 고대 먼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일종의 망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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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모신 장좌리 당제

정상부위 성벽을 따라 가다보면 정상 중앙의 평평한 곳에 당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당집은 장보고를 모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에는 송징 장군을 모셨다고 한다.

장좌리 당제는 독특한 제의 형식 때문에 현재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이곳에서 당제를 지낸다. 장도의 당집 주위에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어 신성성을 느낄 수 있다.

당집에는 장보고 대사의 그림이 걸려 있다. 예전에는 송징 장군을 주신(主神)으로 모셨으나 1982년 남도문화제에 출전하면서 청해진과 관련이 있는 장보고대사를 추배했다고 한다. 장보고의 힘이 주신을 바뀌게 한 것을 알 수 있다.

장좌리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모시며 정월 대보름에 제를 지낸다.
▲ 장보고를 모신 당집 장좌리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모시며 정월 대보름에 제를 지낸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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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당제는 장도가 섬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장도로 가는 물길이 열리는 썰물 시간을 기다려 장도에 들어가 당집에 불을 밝히고 제를 지낸 다음 물이 들면 배를 타고 빠져나온다. 예전에는 장좌리 당제의 제의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은 물론 많은 민속연구자들이 찾았지만 지금은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장도에서 앞쪽을 바라보면 멀리 바다를 향해 칼을 높이 들고 서있는 장보고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장보고 동상은 그가 바다를 항해하며 탓던 배모형의 조형물 위에 거대한 모습으로 서있다. 그러나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크고 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나라에서 최대, 동양에서 최대, 세계에서 최대 뭐 이런 것을 만들었다.

장보고 동상 전시관 안에 올라가면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TV영상물에서는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해신'이 반복되어 나오며 장보고의 옛 영화를 추억하게 한다.

바다를 향해 칼을 들고 있는 거대한 동상이다.
▲ 장보고 동상 바다를 향해 칼을 들고 있는 거대한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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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말의 서남해

8∼9세기는 동아시아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때도 매우 흥미로운 시기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가 무너지고, 지방의 토호들이 각지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쌓아가며 독자적 세력을 형성해 나가던 지방분권적 체제로 변화하던 때였다.

7세기 초에 중국대륙을 통일한 당(唐)은 율령을 정비하고 제도화하여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하였다. 당은 이러한 정비된 통치체제를 바탕으로 중국대륙 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들을 제압하고 명실상부한 동아시아 세계를 형성 이를 주도해 나갔으며, 개방적이고 세계적인 제국으로 역사를 전개시켜 나갔다.

이러한 시대에 장보고가 대망을 꿈꾸며 한중일을 연결하는 바다를 경영하였다는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에는 해금정책과 같은 바다를 멀리하는 정책에 의해 해양의 영역이 극도로 좁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장보고의 바다를 향한 의지는 동북아와 서남해역을 연결하는 해양 실크로드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태그:#장보고, #청해진, #장도, #동북아, #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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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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