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고 재미났던 산티아고 순례길과 마드리드 근교 여행을 마친 후 필자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귀국편 항공기인가? 아니다. 스페인을 떠난 필자가 닿은 곳은 북유럽의 핀란드였다. 핀에어(FINN AIR)라는 핀란드 국적기를 이용해 여행을 했는데 '스톱오버(stopover)'를 통해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 3일간 머물기로 한 것이다. 스톱오버는 '단기체류'를 말하는데 직항이 아닌 갈아타는 비행기를 탔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로, 갈아타는 공항이 위치한 국가를 잠깐 동안 여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2014년 11월 21일, 여행 19일째역시 핀란드는 산타클로스의 나라였다. 헬싱키 반타 공항에 도착했더니 세상은 설국으로 변해 있었다. 주기장은 물론 활주로에도 많은 양의 눈이 쌓여 있었지만 '이 정도 적설량'은 끄떡없다는 듯, 공항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필자는 지난 겨울의 첫눈을 고국이 아닌 낯선 핀란드에서 맞이한 셈이다.
솔직히 핀란드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후회가 막심했다. 변변한 겨울옷도 없이 러시아 모스크바보다도 더 위도가 높은 핀란드에 도착했으니 그럴 수밖에... 처음 느껴보는 북유럽의 추위에 몸이 적응이 안 됐다. 당장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귀국 비행기는 3일 후에 있었다.
'그래, 한 번 버텨 보자. 발트해 추위가 어떤지 한 번 겪어보는 거야. 우리나라 동장군도 만만치 않지만 매년 잘 버텨왔잖아!'
강대국들 사이에 낀 핀란드역사적으로 내내, 핀란드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샌드위치' 신세였다. 서쪽으로는 스웨덴, 동쪽으로는 러시아가 수백 년 동안 핀란드 땅을 압박해 왔다. 핀란드는 비교적 뒤늦은 13세기경에 유럽 문화권에 편입되는데 이때도 독자적으로 유럽 중심부와 교류했다기보다는 강대국 스웨덴의 일부 지역으로 편입됐다고 봐야 한다.
유럽권으로 편입됐지만 핀란드가 독립국가가 되기까지는 무려 75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했다. 650년간의 스웨덴 지배, 그 이후 100년간의 러시아 지배를 겪은 이후인 1917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핀란드는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고 세계에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걸로 핀란드의 시련이 종결된 것이 아니었다.
1917년의 독립이 러시아 혁명 와중에 이루어졌듯, 동쪽에 국경을 맞댄 러시아는 핀란드 근현대사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나라였다. 독립 이후에도 핀란드는 러시아와 2번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두 차례에 걸친 핀란드-소련(러시아) 간의 전쟁은 모두 2차 세계대전 중에 발발했는데 1차 전쟁은 1939년, 2차 전쟁은 1941~1944년에 일어났다. 두 번에 걸친 전쟁은 핀란드의 국토를 황폐화 시켰고, 그런 역사적 아픔 때문인지 핀란드인들은 러시아에 대해 썩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해상 요새 수오멘린나다음날 필자가 방문한 수오멘린나(Suomenlinna) 섬은 강대국들의 위세에 눌려 샌드위치 신세로 살아야했던 핀란드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수오멘린나는 헬싱키 항구에서 뱃길로 10여 분 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수도 헬싱키의 관문 역할을 하는 이곳은 1748년 스웨덴에 의해 해상 요새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핀란드를 점령한 스웨덴은 발트해에서 세력 확장을 꾀하던 러시아에 대해 큰 위협을 느꼈고, 이에 헬싱키 앞바다에 떠 있는 섬 6개를 연결해 축성했다. 또한 대포를 설치해 말 그대로 바다에 떠있는 해상 요새를 만들기에 이른다. 러시아의 팽창을 막기 위한 대규모의 작업이었던 만큼 수오멘린나 요새는 거의 4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그렇게 어렵게 요새를 만들었지만 스웨덴이 이곳을 제대로 사용한 시기는 약 2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1808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한 이후부터는 수오멘린나도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핀란드가 그렇듯 수오멘린나도 스웨덴과 러시아의 자취를 동시에 품고 있는 섬이다. 요새의 기본 골격은 스웨덴 지배 시절에 지어진 것들이지만 일부는 크림전쟁(1853~56년) 때 영국과 프랑스 함대의 공격을 받아 다시 재건됐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함대는 47시간 동안 수오멘린나를 공격했는데 그때의 함포사격으로 섬의 일부가 크게 훼손됐다고 한다.
발트해에서 DMZ를 떠올리다바다를 향해 포신을 세운 대포들에도 흰 눈이 쌓여 있었다. 그 옛날 발트해를 향해 맹렬히 불을 뿜었을 그 대포들은 이제 관광객들의 사진 속 배경에 빠지지 않고 감초처럼 등장한다. 국제역학 관계의 변화와 무기체계의 현대화로 이제 수오멘린나도 '요새'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대신 그 섬에 스며있는 역사적 가치와 발트해를 품은 아름다운 주위환경 때문에 이제는 헬싱키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야 하는 필수 관광 코스가 된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수오멘린나는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상대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세워진 철옹성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나 역사적, 문화적 현장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의 DMZ도 훌륭한 역사적, 생태적 학습의 장으로 떠오를 것이다. 현재의 DMZ은 남북한의 갈등 때문에 살벌한 철책선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나중에는 그 철책선도 관광객들의 사진 속에 빠지지 않는 감초로 등장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올 것이다.
흑야는 백야와 달리 해가 빨리지는 것을 말하는데 필자가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는 흑야 시즌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후 4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서쪽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오멘린나에서 발틱해를 바라보면서 감상하는 낙조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낯선 이국땅에서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언지 모를 감상에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싸구려라도 좋으니 와인 한 병이 필요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 리더십'의 할로넨 대통령섬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통령 궁을 지나갔다. 대통령 궁은 수오멘린나 행 여객선을 타는 선착장과 가까웠는데,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일반 건물인 줄 알았다. 딱히 삼엄한 경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방이 열려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대통령 궁에서 타르야 할로넨이라는 여성 대통령이 2000년부터 12년 동안 집무를 했고 지난 2012년에 명예롭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재임 중에 '엄마 리더십'을 펼쳤던 할로넨은 퇴임 후에도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했다. 재활용 수집함에서 쓸 만한 물건을 수거해가는 모습이 목도될 정도로 할로넨은 소탈했다.
열려 있는 핀란드의 대통령 궁과 타르야 할로넨을 떠올리자니 그저 부러움이 앞설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슨 국정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리더십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나? 그렇게 이어지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나머지 생각들은 그냥 발틱 해에 버리고(?) 왔다.
*맺음말: 필자의 여행기는 여기까지다. 이제껏 15편에 걸쳐 여행기를 작성했다. 실제 여행 일수가 22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좀 길게 늘어진 게 사실이다. 필자도 애초 10편 정도로 작성할 생각이었지만 쓰다 보니 글 욕심이 생겨 5편 정도가 더 늘어나게 됐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좀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에 스페인과 관련된 역사서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꽃보다 할배>의 영향 때문인지 스페인 여행서는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스페인 역사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존에 나왔던 책들은 절판된 지 이미 오래고, 헌책방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현지에서 보고 느낀 감흥을 귀국 후에 방문국의 역사서로 채울 수 있다면 정말 알찬 여행 '뒤풀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 역사서들이 다시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간 필자의 여행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별 재미도 없는 여행기였을 텐데 몇몇 분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그런 조언들을 채찍질 삼아 더 열심히 글을 쓸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