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국어, 수학 학원 계속 다닐래?""아니요. 싫어요.""그럼 뭐 하고 싶어? 엄마랑 아빠랑 올 때까지 혼자 있어야 하잖아.""그림 그리고 싶어요.""그림?""예, 그림 그릴래요. 그림 그리는 거 진짜 재미있어요."평소에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다. 실력이 있다기보다는, 저녁에 퇴근하면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엄마랑 아빠도 그리고 동생이랑 자기 모습도 그려서 조그만 수첩처럼 그림책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내게도 와서 공룡을 그려 달라, 호랑이를 그려 달라 요구하는 게 많다.
"그럼, 미술학원 다닐까? 거기 가면 그림도 마음껏 그릴 수 있고, 미술 선생님이 그림 그리는 법도 알려주신대""그래요? 그럼 저 미술학원 다닐래요!"학기가 시작되기 전, 아내와 나는 첫째 아들의 학업과 학원 선택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와 나의 생각이 대체로 비슷했다. 첫째 아이는 학교에서 수업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집중도가 떨어지며 학습 이해도 역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모자란 감이 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해도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여자아이들이 많아서... 미술학원 앞에서 머뭇거리는 아이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시켜주기로 했다. 태권도장은 다닌 지 1년이 넘었는데 매일매일 하루도 안 빠지고 다닌다. 조금 있으면 1품 승단 심사 준비도 해야 한다. 그리고 미술학원도 등록해주었다.
그런데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미술학원 앞에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알고 보니 미술학원에 남자 학생은 거의 없고 여자 학생들이 많아 쑥스럽고 좀 머쓱한가 보다. 퇴근을 하고 물어보았다.
"△△아, 오늘 왜 미술학원 못 들어가고 전화했어? 창피해?""네, 다 여자들이에요. 남자는 한 명도 없어요."미술 선생님 말씀도 그렇다. 학원에 들어오면 그림 삼매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밖에서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과정이 많이 창피한가보다. 그리고는 태권도장에 간다.
운동을 워낙 좋아하는데다 자신의 태권 기본동작이나 발차기 등 난도 높은 동작이 조금씩 완성되는 과정을 보며 자신감을 얻는 것 같다. 집에 오면 동생이랑 태권도 동작을 춤으6로 만든 노래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고 옆차기나 돌려 차기 시범을 보여준다.
예전보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 비교되는 과거
예전에 돌봄 교실과 보습학원에 다니며 힘들어하던 모습만 보다가 정말로 밝아진 아이의 얼굴을 보니 아빠인 나도 기쁘다. 그런데 힘들다. 아이의 에너지가 어찌나 넘쳐나는지 태권도장에서 1시간 뛰어다녔다가도, 내가 집에 들어오면 1시간은 꼬박 아이에게 잡혀서 놀아줘야 한다. 목마를 태워주고, 업어주고, 레슬링하고 칼싸움도 하고... 정말 지친다. 아이들의 운동량은 정말 가늠할 수가 없다.
1학년 때 보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졌다. 아이도 알 것이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국어나 수학문제에 빠져 살다가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만 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덜 받고 매사에 자신감이 붙은 것 아닐까? 앞으로 그렇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또 시간이 흘러서 고학년이 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아이 스스로 학업에 대한 필요성이라든지 나름대로 흥미를 느낀다면 다시 방향을 잡아줘야 할 것이다. 예능 쪽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에 맞는 대화와 상담을 병행해가며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나중에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
2학년 개학 이틀째인 3월 3일, 차에서 내려주고 혼자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여전히 작다. 어른들 틈에 끼어 있으면 사람인지 가방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래도 잘 걸어간다. 키도 좀 커야 하는데…. 아빠 어릴 적처럼 키가 작은 것에 대해 주눅 들지 말고 매사에 자신 있고 당당한 어린이가 되기를 기도한다.